09화, 노후에 할 일이 당신의 삶의 질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제가 운영하고 있는 경제/경영/인문의 균형 찾기 프로그램 <에코라이후 기본과정>은 1년간 26권 정도의 경제도서 읽기와 함께 매월 1회씩, 총 12회의 오프 수업으로 진행됩니다. 이 오프 중 6회는 경제, 특히 개인의 자산관리와 투자에 대한 내용을 집중적으로 다루며, 나머지 6회는 경영(성공에 대한 재정의와 미래의 할 일 찾기)과 인문(자본주의 시대 행복에 대한 정의와 행복 찾기)에 관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죠. 경영에 대한 내용 중에는 <65세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이란 주제도 있는데, 저는 이 테마 수업을 진행하기 전에 아래와 같이 과제 작성 방법을 공지해 두었죠.
Step 1> 자신의 강점(잘 하는 것) 3가지를 적고, 그 이유를 설명하세요.
Step 2> 자신이 좋아하는 일 3가지를 적고, 그 이유를 설명하세요.
Step 3> 3가지(강점) × 3가지(좋아하는 일)를 매칭 할 경우 9가지가 나올 텐데, 각각에 대해 이름을 붙여보세요. 그 이름이 기존의 직업명이어도 괜찮고, 자신이 스스로 창직(創職)을 해도 상관없습니다.
예시) 가르치는 것 × 독서 --- 독서지도사, 상상하기 × 여행 --- (꿈의) 여행기획자
Step 4> 9가지 중 자신이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하나 고르고,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하세요.
위 테마를 선정한 배경은 이렇습니다.
65세 정도가 되면, 우리는 대부분 현역에서 은퇴, 경제적 활동을 접을 가능성이 큽니다. 더 일을 하고 싶어도 노인을 위한 일자리가 마땅치 않거나 혹은 자신 만의 전문적 일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은퇴를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되죠. 만일 현역에 있는 동안 노후를 경제적 걱정 없이 지낼 수 있을 정도의 자산을 축적했다면, 은퇴를 하게 될지라도 미래가 큰 걱정으로 다가오지 않을 겁니다. 그럴 경우 그동안 해보지 못했던 경험을 쌓거나 취미활동, 혹은 타인을 위한 봉사활동에 자신의 여유 시간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우리의 노후는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몸도 마음도 고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릴 수도 있게 될 것입니다.
저는 예전 칼럼(‘불황을 이기는 경제학에 대한 A/S’)을 통해 현역에 있는 동안 노후에 年 2,400만 원 정도를 벌 수 있는 자신 만의 경제적 시스템을 구축하자고 주장했었습니다. 연금으로 1,200만 원, 자산 투자를 통해 600만 원 그리고 일을 통해 600만 원(50만 원/월)을 벌자고요.
이 <65세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이란 테마가 바로 월 50만 원, 연간으로 600만 원을 마련하기 위한, 즉 노후에 할 일을 찾기 위한 첫 번째 시도라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노후의 일에는 전제사항 하나를 조건으로 두었습니다. 현역이 아닌 노후의 일이니만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중심으로, 잘 하는 일을 덧붙임으로써 자신의 인생에 있어 보람 있고 의미 있는 일을 하자는 것이었죠.
처음 하는 시도인만큼 모든 회원들이 이구동성으로 쉽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당연했습니다. 사실 미래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거기에 더해 미래에 자신이 할 직업을 찾아보라 주문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명은 이번 과제를 통해 나쁘지 않은 결과를 얻은 듯 보입니다.
그중 한 명은 ‘외국인 전문 문화 해설사’를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안동 문화와 역사에 대해 관심이 많고, 실제 해설사 자격증도 가지고 있으며 또한 사람을 만나 이야기하는 것도 좋아하기 때문에 부족한 외국어만 열심히 공부하면, 충분히 외국인 전문 문화 해설사로 활동할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시간을 두고 충분히 준비만 한다면, 이 일을 통해 월 50만 원이 아니라 그 이상도 충분히 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다른 한 명은 현재 직장을 다니며 아마추어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데, 사랑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마도 자라오며 수많은 소설책을 읽어왔기 때문일 겁니다. 그녀는 무대를 기반으로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어 합니다. 글을 통해 시나리오 작가로서, 연극을 통해 배우로서 그리고 어느 정도의 연륜이 쌓이면 연출가로서 세상에 사랑을 외치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한 남자 멤버(30대 중반)는 변호사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 일보다는 몸을 만드는 헬스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매일 하루에 거의 2시간은 꼬박 헬스에 투자하고 있죠. 그는 대단한 장점 하나를 가지고 있습니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그를 좋아할 뿐 아니라 매우 신뢰한다는 겁니다. 아마도 그의 시원시원한 성격이 나이드신 분들에게 더 맞기 때문으로 보여집니다. 우린 그의 써치 결과를 토대로 그에게 미래의 직업으로 '중/노년 전문 헬스 트레이너'를 권했습니다. 헬스를 가르치면서, 법적인 문제에 대한 조언까지 동시에 관리를 해드리는 거죠. 그의 경력과 성격, 그리고 헬스에 대한 열정까지 합쳐진다면 그는 꽤나 유능하고 인기있는 '중/노년 전문 헬스 트레이너'가 될 것으로 보여집니다.
여러 회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직 다듬어지진 않았지만 조금 더 자신의 성향과 욕망에 부합하는 일을 찾을 수 있다면, 그리고 남은 시간 동안 열심히 노력하여 그 일과 관련된 전문성을 쌓을 수 있다면 충분히 그 일을 통해 노후에 경제적 문제의 해결과 함께 일의 보람과 의미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한 회원의 발표를 들으며 저의 이런 ‘확고한’ 생각에 균열이 가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녀는 노후의 일로 한, 두 가지 정도를 꼽았습니다. 고양이를 좋아하고 실제로 키우고 있기 때문에 고양이를 상대로 한 ‘애니멀 커뮤니케이터(Animal Communicator)’와 건강하게 운동하는 법을 알려주는 ‘건강 트레이너’ 였죠.
저는 그 일을 위해 준비할 사항들을 정리, 중장기적인 계획을 짜 보자고 조언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뭔가 아쉬움을 비추더군요. 사실 이 일들을 정말로 하고 싶은 건 아니라고요. 경제적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노후의 일을 찾아보고 있지만,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살고 싶다고요. 망치로 머리를 강하게 한 대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옆에서 한마디 더 듣고는 그대로 KO 되고 말았습니다. 꼭 일을 해야만 한다는 사고방식은 남성 독자적 사고에 의한 것일 수 있다고요.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반드시 일을 해야 한다? 아마도 인생 선배들, 특히 남자 선배들이 현역에서 은퇴함과 동시에 금방 늙기 때문에, 일은 꼭 가지는 것이 좋다고 계속해서 들어왔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덕분에 생각을 다시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노후에 반드시 일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 내지 책임감을 가질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 또한 중요하기 때문이죠. 아무리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라 할지라도 돈(적더라도)을 벌어야 한다는 책임감에 어깨가 눌려지는 순간, 그 일은 부담감 가득한 일로 변모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일은 선택의 조건이 되어야 하는 게 맞을 듯싶습니다. 또한 스스로 정해 놓은 ‘자유’의 범위 안에서 ‘일’을 포함시킨다면, 그 일은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보다 자유스러운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만 자유를 선택할 경우 여전히 경제적 문제는 남게 됩니다. 이때는 본인의 선택에 대해 2가지를 고민해야만 합니다. 하나는 총 2,400만 원 중 600만 원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 1,800만 원(월 150만 원)으로 사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연금과 자산 투자(혹은 다른 방법)로만 2,400만 원을 만드는 방법을 찾는 것입니다. 전자는 절약을 통해 자유를 얻는 것이고, 후자는 자유를 위해 투자방법을 공부하는 것입니다. 선택은 당신의 몫이 될 것입니다.
노후를 살아가는 방법은 많습니다. 하지만 경제적 문제에 대한 대안없이 자유롭게 노후를 살아가기란 쉽지 않습니다. 제가 제시한 방법은 노후를 살아가는 수많은 방법 중 극히 일부분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다양한 방법론에 대해서는 그리고 자신에 가장 잘 맞는 방법에 대해서는 각자 스스로 고민해야 합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자본주의 시대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만큼 경제적 문제의 해결 없이 잘 살아가기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10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