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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효진 Jun 22. 2017

4.1. 새로운 환경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4. 이상한 나라를 준비하기 위한 지침

앞서 소개했던 10개의 인사이트들은 11명의 ‘미국 유학생 와이프’들을 통해 살펴본 '일을 중단하고 진로를 고민하는 기간'에 대한 해석이다. 갑자기 도착한 '이상한 나라'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이 이상한 삶을 누군가 한 번쯤은 우리의 입장에서 제대로 이해하고 설명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도대체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다들 어떻게 살고 있는 건지,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될지. 그리고 같은 길을 걷고 있거나 걸어갈 사람들이 이 시간을 좀 더 잘 통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또 다른 '미국 유학생 와이프'인 디자이너 친구를 초대해 아이디어 워크숍을 열었다. 커다란 폼보드에 그동안 찾아낸 이슈, 인사이트, 전문가들의 의견, 경험자들의 조언을 붙여놓고 위기를 기회로 바꿀 지점을 토의하고 이를 위한 아이디어를 그리고 설명했다. 만들어진 아이디어를 리서치에 참여했던 친구들과 살펴보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덧붙였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자료들을 찾았다. 우리 모두 평범하지 않은 시간을 보내며 방황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조언이 간절했기에, 정답은 아니더라도 누구나 참고할 수 있는 참고서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싱가포르 출신 디자이너 친구와 함께 한 아이디어 워크샵 © 남효진

그렇게 만들고 다듬은 '이상한 나라를 준비하기 위한 지침'이 여기에 있다. '이상한 나라'를 준비하는 당신, 새로운 환경에서 살며, 진로를 고민하며, 일하지 않는 기간을 살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가족과 부대끼며, 정말 어떻게 살아야 할까?


4.1. 새로운 환경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세계화 Globalization를 통해 사람들은 자신들이 자라온 본래의 문화뿐만 아니라 새로 경험하는 다른 문화에 적응하게 된다. 서로 다른 문화에서 사는 삶은 심리적 기능과 행복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연구자들은 말한다. 다양한 문화적 관점을 가지면 아량이 늘어나고 편견도 줄어든다. 또 융통성, 혁신, 창조성과 의사결정의 수준이 높아진다(연구 링크).


그렇지만 새로운 문화와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변화와 스트레스를 피할 수 없다. 퀸즈대학교 Queen's University의 심리학과 석좌교수인 존 베리 John W. Berry에 따르면, 사람들이 문화적응 acculturation을 위해 활용하는 전략에는 4가지 패턴이 있다(연구 링크). 자신의 문화를 마지못해 포기하고 새로운 문화를 채용하는 ‘동화 assimilation’, 자신의 본래 문화만을 고수하는 ‘분리 separation’, 본래의 문화와 새로운 문화 모두에 거리를 두는 ‘소외 marginalization’, 그리고 자신의 본래 문화를 유지하는 동시에 새로운 문화적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통합 integration’이다. 사람들이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며 문제를 만나면 스트레스를 겪는데, ‘통합’ 전략을 택하는 사람들의 스트레스가 가장 적은 반면 ‘소외’ 전략을 택하는 사람들의 스트레스가 가장 높다.


몰입에 대한 연구로 유명한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Mihaly Csikszentmihalyi는 그의 책 <창의성의 즐거움>에서 말한 바 있다. “세상이 나에게 말해주는 것에 마음을 열자. 삶은 경험의 흐름이나 다름없다. 그 속에서 더 멀리 더 깊이 헤엄쳐갈수록 우리의 삶은 풍요로워진다.” 리서치를 통해 찾은 인사이트를 바탕으로, 사람들을 소극적으로 만들고 주저하게 만들고 좁은 세상에 갇히게 만들 수 있는 ‘새로운 환경’이 또 다른 기회가 되고 삶이 풍요로워지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아래와 같은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새로운 언어와 환경에 대한 두려움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새로운 환경에서의 걱정과 두려움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것들을 배우며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새로운 환경에서 좁은 세상에 머무르지 않고 더 큰 세상을 만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집에 갇히지 않고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매일의 경험을 즐기고 이를 통해 무언가를 성취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도전하고 성장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불확실한 시간을 즐기고 다양한 가능성을 시도할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에서 출발해, 새로운 환경에서 다시 나로 살아가기 위한 행동지침과 아이디어를 만들었다. 익숙한 환경에서 산다면 굳이 필요 없는 조언일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환경에서라면, 겁먹고 뒤로 물러나지 않고, 누구 때문인 삶이 아니라 나의 삶을 살고, 집과 가족이라는 좁은 세계에 갇히지 않기 위한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지침 1. 새로운 환경에 직면하고 직접 경험하기


싱가포르를 떠나기 전 미국행을 준비하면서 그동안 같이 일했던 네덜란드 출신의 동료에게 조언을 구했다. 네덜란드에서 태어나고 자란 동료는 같은 네덜란드인인 남자 친구가 싱가포르에 직업을 구하자 서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결혼을 한 후 함께 싱가포르에 왔다. 신분 상으로 Dependent(부양가족)에 해당해서 싱가포르에 온 후 일을 찾는 데 쉽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Dependent임에도 싱가포르에서 일을 할 수 있는 합법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회사를 만들고 그 회사를 통해 다른 회사들과 일하고 있었다. 미래의 Dependent에게 주는 동료의 조언은 간단했다. “의존적으로 살지 마 Don’t be dependent” 짧지만 강한 조언이었다.


새로운 환경이 익숙하지 않다고 집안으로 숨거나 자꾸 다른 사람을 의지하면 새로운 환경은 계속 어렵다. 배우자 때문에 왔다는 이유로 배우자에게 책임을 미룰 수도 있다. 운전이 무서우면 계속 조수석에만 앉을 수 있다. 그러나 의지하면 할수록 나는 여권에 표시된 대로 Dependent('부양가족' 또는 '의존하는 사람'이란 의미도 있음)로 살아가게 된다. 언어가 힘들고 사회 시스템이 낯설다는 이유로 배우자가 계속 나서면, 그 옆의 나는 세상을 경험하고 주도할 기회를 자꾸 놓친다. 태도에도 관성의 법칙이 적용해, 한번 뒤로 물러나면 계속 의지하게 된다. 새로운 삶을 살고 경험하고자 한다면 결단해야 한다. 용감하게 내 삶을 다시 시작하겠다고, 새로운 환경에 주눅 들지 않겠다고.


지침 2.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야 하는 나만의 이유 만들기


유시민 작가는 그의 책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운동에 참여하고 정치를 하던 시절을 회상하며 말한다. “운동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학생운동에서 청년운동, 노동운동, 시민운동, 정치운동까지 몸과 마음이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때가 없었다. ‘하고 싶다’는 욕망보다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이끌려 사는 인생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걸치고 나들이를 가는 것과 비슷했다. 어떻게 걸어도 어색했다.”


도망치고 싶은 곳에서 다른 사람을 위해 의무감에 이끌려 사는 삶은 어색하고 힘들다. 배우자를 위해 해외 이주를 한 경우에 새로운 환경은 내가 꼭 여기에서 살아야 하는 강력한 동인이 되지 못한다. 배우자의 학교나 직장 때문에 해외로 이주하는 경우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주도권을 갖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런데 새로 도착한 나라에서 새로운 공부와 일로 스트레스를 받는 남편과 불확실한 진로로 고민하는 와이프가 다투면 “이럴 거면 돌아가라”나 “이럴 거면 돌아가겠다”는 말이 쉽게 나온다. 나 스스로 이곳에 있어야 하는 이유가 없으면 이곳에서 고민하고 애쓰는 시간이 상대방의 말 한마디에 빛을 잃는다. 그렇지 않기 위해,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야 하는 나만의 이유를  갖는 것은 중요하다.


지침 3. 내 세상을 넓히기


영국 선데이 타임즈 Sunday Times의 패션 기자였던 브리짓 키난 Brigid Keenan은 외교관인 남편을 따라 10개국을 이동하며 살았던 경험에 대해 “한번 살면서 10번 다시 태어난 것 같았다”라고 표현했다(기사 링크). 나라를 이동하게 될 때마다, 자신이 너무 약하고 발가벗겨진 것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심지어 한겨울 카자흐스탄에 도착했을 때는 집에 갇혀서 하루 종일 어서 주인이 와서 산책시켜주기를 기다리는 큰 개가 된 기분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나 역시 서울을 떠나 밀라노, 싱가포르, 애틀랜타에 도착한 후 익숙해지기 전까지 매번 보호막을 잃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치마를 입지 못했고 굽 있는 구두를 벗고 튼튼한 운동화와 걷기 편한 단화만 신었다.

 

새로운 나라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 한편엔 그 나라에 대한 무지와 그로 인한 두려움이 함께 한다. 그래서 새로운 환경에서의 집은 내가 친숙하고 안전하다고 느끼는 첫 번째 공간이 된다. 그러나 외출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사람에게 집은 안식처지만, 갈 곳이 없고 밖이 익숙하지 않아 집 안에만 머무르는 사람에게 집은 감옥이다. 집에 갇히지 않고 새로운 환경에 직면하고 적응하기 위해서는, 내가 경험하고 아는 공간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 내가 가보고 경험해서 아는 세상을 넓히고, 내가 마음 편하게 찾아갈 수 있는 장소들을 늘려야 한다. 내 세상이 넓어지면 좁은 집 안에 갇히지 않는다.


새로운 환경에서 잘 지내기 위한 아이디어

1. 일상에서 쉽게 달성하고 성장할 수 있는 목표


새로운 환경에서 살면서 먼저 시도해볼 수 있는 목표들 © 남효진

새로운 환경은 사실 많은 것을 포함한다. 새로운 언어로 의사소통하기, 다양한 문화의 사람들을 만나기, 낯선 길을 걷기, 익숙하지 않은 장소에 머무르기, 해보지 않은 경험을 하기, 공격적인 운전자들 사이에서 운전하기, 등. 해보기 전에는 알 수 없지만 해보고 나면 새로운 인연을 만날 수 있고 할 수 있는 일들이 늘어나고 행동반경이 넓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시간에 두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환경으로 자신을 데려가기 위한 목표가 필요하다. 현관문을 열고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아래와 같이 생활에 밀접하게 관련된 목표들을 세울 수 있다.


매일 운전하기: 운전이 무섭다면, 운전을 하기 위한 계획이 도움이 된다.

좋아하는 카페 리스트 만들기: 도시 곳곳의 괜찮은 카페들을 발굴해두었다가 혼자서 또는 친구와 같이 방문할 수 있다.

산책 코스 개발하기: 국립공원, 주립공원, 도시 내 산책코스들을 다니면서 걷고 싶고 바람 쐬고 싶을 때 찾아갈 수 있는 목록을 만들 수 있다.  

마음에 드는 슈퍼마켓 찾기: 도시 내의 다양한 슈퍼마켓들을 탐방하며 보다 자주 이용하고 싶은 곳들이 어디인지 정할 수 있다.

가족과 친구들을 위한 투어 프로그램 개발하기: 머지않아 내가 사는 도시를 방문할 가족과 친구들을 위해 도시 안과 주변에 함께 방문할 수 있는 곳들을 미리 경험하고 나만의 투어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


새로운 환경에서 잘 지내기 위한 아이디어

2. 두려움과 소심함을 이길 수 있는 나만의 주문


'회피의 악순환 (왼쪽)'을 이기기 위한 나만의 주문 활용 © 남효진

사람들은 불안하면 자신을 불안하게 만들 수 있는 장소나 상황을 피하고, 이러한 문제들을 통제하기 위해 자신의 행동을 바꾼다. 문제에 직면하기보다 회피하는 쪽으로 행동해 전문가들이 말하는 소위 ‘회피의 악순환 The vicious circle of avoidance (그림 왼쪽)’에 빠지게 된다. 반복적으로 불안하고 무서운 상황을 피하면 생활도 제한이 되고 자신감도 줄어들고 기분도 나빠진다. 대책이 필요하다.


간단한 방법은 나만의 주문을 사용하는 것이다. 말에는 힘이 있다. 간단하고 짧은 문장이 에너지를 주고 용기를 준다.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기억하고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문장 하나는 그 사람에게 주문이 된다. 주문을 통해 두려운 마음과 부정적인 생각을 객관적이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꿀 수 있다. 스포츠 심리닥터 조너선 페이더 Jonathan Fader는 주문이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바꾸기 위해 활용할 수 있는 도구”라고 말한다. 또 “간단하고, 객관적이고, 긍정적인 주문은 자신과 주변 환경에 대한 인식에 도움이 되지 않는 잡념들을 지워버리는 지우개”와 같다고도 얘기한다.


내 첫 주문은 운전을 위한 것이다. 한국에서 몇 년에 한 번 운전을 하다 미국에 와서 다시 운전을 시작하며 두려움이 상당했다. 한국의 고속도로에서는 볼 수 없는 거대하고 긴 트럭들 옆을 달릴 땐 아무리 정신을 차려도 긴 트럭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미리 알려주지 않고 양쪽 차선에서 갑자기 끼어드는 남부의 거친 운전자들과 한 번에 3~4개 차선을 연이어 가로질러 길을 가야 하는 도로 구조도 겁이 났다. 자신이 없다는 이유로 운전을 주저하고 무서워하다 어느 날 남편을 보며 생각했다. ‘이 친구가 운전을 하는 것은 자신이 있어서가 아니라 필요해서구나..!’ 내가 운전을 하는 데 자신감은 충분조건이 아니라는 단순한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그렇지만 주문을 만들고 활용하는 것은 새로운 환경에서 잘 지내기 위한 시작일 뿐이다. 나와 언어교환을 하는 20대 초반의 미국인 친구는 슈퍼마켓에 가고 싶으면 반사적으로 차키를 찾아 운전을 해서 슈퍼마켓에 다녀온다는 말을 했다. 카페를 가고 슈퍼마켓을 가고 공원에 가는 의사결정을 할 때마다 운전을 할지 말지 한 단계 더 고민한 다음에야 외출을 결정하는 나와는 생각의 흐름이 전혀 달랐다. 그래서 나도 운전을 피하지 않기 위해 나만의 주문을 사용하고 있다, "운전은 필요해서 하는 것!" 그녀처럼 내게도 운전이 당연해지고 주문도 필요 없어지는 날, 그때는 내가 사는 곳이 내게 더 이상 낯설고 두려운 환경이 아닐 것이라 믿는다.




'이상한 나라를 준비하는 참고서' 목차 및 이전 글 보기  

'이상한 나라를 준비하는 참고서' 소개
1. 배경

    1.1. 우리 안의 ‘미국 유학생 와이프’

    1.2. 기대와 다른 현실

    1.3. 이상한 나라를 만드는 요인들
2. 다양한 경로와 이슈들

    2.1. 새로운 진로를 찾는 거대한 고민

    2.2. 현재 직장과 새로운 가능성 사이에서 고민과 저울질

    2.3. 나의 일을 계속 이어가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격동기

    2.4. 정해진 계획 안에서 살며 여유를 즐기는 시간

    2.5. 육아에 집중하며 향후 진로의 방향성 고민

3. 11명의 ‘미국 유학생 와이프’들에게서 찾은 인사이트

    3.1. 준비와 실행

        3.1.1. 새로운 가능성을 위한 결심

        3.1.2. 좋은 하루를 위한 노력

    3.2. 진로

        3.2.1. 진로 재설정        

        3.2.2. 진로에 대한 불안

        3.2.3. 해외에서의 신분, 면허, 언어의 제한

        3.2.4. 비우고 채우는 시간

    3.3. 가족

        3.3.1. 부부, 동반자 혹은 희생자

        3.3.2. 가족, 후원자 또는 상사

    3.4. 주위 사람들

        3.4.1. 친구, 선배, 선무당

        3.4.2. 편견과 나
4. 이상한 나라를 준비하기 위한 지침

        4.1. 새로운 환경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월요일, 목요일마다 업로드 예정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인터뷰 참가자들의 이름은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대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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