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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주 Mar 26. 2022

Dear. 마이 프렌즈

청춘의 시기는 지금

봄날의 들판

 

어느 화창한 봄날이었다. 햇살이 창문가에 걸려있었다. 그러나 나는 봄을 즐기지 못했다. 아직 진로도 못 정했는데 무슨 놈의 과제는 그렇게 많은지. 밀려있는 과제에도 마음은 이미 다른 곳으로 가 있다는 걸 눈치채신 어머니는 어느날 문화센터에서 하는 뮤지컬 강의를 신청했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본인이 들으려고 수강신청을 했으나 가지 못하니 너라도 들으라는? 반강제적인 부탁을 하셨다. 눈치를 보다가 이어지는 후폭풍에 한두번만 수업에 참여하고 나가지 말아야지, 그렇게 생각했다.

 에이 뭐, 별거 있겠어? 

 엉겁결에 집에서 꽤 거리가 있는 문화센터까지 뮤지컬과 봉산탈춤 수업을 들으러 갔다. 첫 수업이었는데, 인원이 많았다. 나는 맨 뒷자리에 앉아 쭈뼛쭈뼛 눈치 보기에 바빴다. 은퇴자 대상의 수업이 많이 열리는 곳이었기에 젊다면 40대, 보통은 50대 이상인 부모님 뻘, 혹은 그 연배 이상이신 어르신들이 대다수였다.


 물론 예상을 못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직접 경험하는 것과 상상하는 것은 다른 법. 교실에 들어가니 역시나, 모든 이의 시선이 내게 머무르는 느낌이었다. 잠시 어디론가 숨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왕 온 거, 첫날은 들어보자고 다짐했다. 긴장된 상태로 수업이 시작되었다.      


연기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배우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이곳에 들어선 순간이 배우로 가기 위한 길의 시작입니다.

 

그날 그렇게 앉아 수업을 끝까지 다 들었다. 긴장은 어느 정도 사라지고, 한번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이 수업을 들어도 되는 것인가, 심지어는 학습 분위기를 위해서 거절당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어서 선생님께 용기를 내어 다가갔다.       


제가…이 수업을 들어도 될까요?    


 주춤하며 던진 나의 질문에 선생님은 당연히 들어도 된다고 하셨다. 그러면서도 어르신들 사이에서 꾸준히 수업을 듣는 나를 신기한 표정으로 바라보셨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선생님은 내성적으로 보이는 내가 이런 수업을 신청했다는 것에 놀라셨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3년만 더 따라다니며 다 배우고 가라며 다소 진담 같은 농담을 하시기도 했다.

 노래 부를 때마다 목에 힘이 들어가며 고음이 힘들다고 하자, 내게 선생님은 한 곡을 천 번, 아니 몇백 번이라도 불러봤냐고 물으셨다. 단순히 고음을 잘 내는 것보다 노랫말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마음을 담아서 부르는 것이 더 중요했다.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진심이란다.  

 모두가 정말 땀 흘리며 열심이었다. 젊었을 적 꿈은 뮤지컬 배우이셨으나 지금은 재연 프로에 단역으로 활동하는 분, 교사, 회사원, 합창단, 가정주부, 인생 이모작 창업준비생 등 정말 이곳에 오기까지 다들 다양한 사연을 가지고 있지만 모두가 멋진 무대를 올리겠다는 같은 꿈을 꾸며 외쳤다.      


산중에 무력 일하여 철 가는 줄 몰랐더니 꽃 피어 춘절이요, 잎 돋아 하절이라. 오동 낙엽에 추절이요, 저 건너 창송녹죽에 백설이 펄펄 휘날리니 이아니 동절이냐.(중략) 어디 한번 놀고 가려던! 낙양 동천 이화정!
    
봄날

 우리는 동작을 맞추고 노래하며 어느 때보다 즐겁고 흥이 넘쳤다. 그러면서 누구 하나 소외되는 일 없이 안부를 나누고 서툰 사람이 있으면 도와주었고, 수업할 때는 서로 누가 더 재미있는 농담을 하나, 누가 더 큰소리로 열심히 노래 부르나, 다른 사람이 부를 때 크게 손뼉을 치나 하는 식의 경쟁 아닌 경쟁을 하였다. 누군가에게 등급을 매기는, 다른 이를 넘어서야 하는 경쟁이 아니었다. 나이가 적거나 많은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높고 낮은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합쳐져 더욱 풍성한 화음이 만들어졌다.


 힘들 때마다 그 기억을 떠올린다. 지금도 ‘나의 이 나이 든 친구’들은 어딘가에서 계속 무언가를 꿈꾸며 살고 있을 것이다. 나의 ‘친애하는 친구들’이자 ‘인생 선생님들’이 펼칠, 다음 공연이 기다려진다. 앞이 보이지 않을 것만 같던 나의 봄을 설레게 만들어 준, 그리운 분들이 오늘따라 참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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