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위해
나의 모든 브런치 기록들은 잡담이라 할지라도 하나의 일관된 흐름을 지양하고 있다. 그것은 말세의 격변하는 시간속, 하늘과 땅 우주와 지구가 요구하는 미래를 향한 올바른 노선 ‘도(道)’ 에 관한 것이다. 길 안에서 자신안의 ‘신성(神性)’ 을 찾고 ‘신인(神人)’ 으로 진화를 향한 과정들을 8년간에 걸쳐 기록으로 남기고 있으며 아무렇게나 중구난방 펼쳐져 있는 내용들을 더 벌리기보다는 지금 시점에선 핵심을 추려내 정리할 필요를 느낀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양보다는 질을 논해야 할때고 열매를 맺기위해선 집중과 선택이 점점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지식으론 알수가 없다.
내가 말하는 모든 내용들은 책등에서 얻은 정보나 생각이 아닌 생사를 담보로 삶에서 실험 검증을 통해 나 스스로가 어릴때부터 자연스럽게 알고 있던것들을 말하는 것이다. 본능적으로 숨겨진 신성을 발견하고 구체적으로 검증해 가는 과정 그리고 해야할 것들을 사회로 부터 배워 나가는것이 인간 으로서의 ‘삶’ 이다. 유치원 아이들 다투듯 신이 ‘있다없다’ 논쟁은 자신이 모르고 가보지 못한 외국은 ‘없다’ 라는것과 같은 무지에서 발생된 억지다. 길러주는 부모를 알기위해 궂이 가족 증명서를 때볼 필요가 없듯 자신안의 신성을 아는것도 그런것이다. 죽음 앞에서도 당당할수 있는것 또한 자신안의 신성을 믿기 때문이다.
와 닿지 않는분들을 궂이 설득할 필요는 느끼지 않는다. 진화는 지식이나 설득이 끼어들어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안다’ 는것이 동기부여는 될수 있을지언정 자신이 ‘그렇다’ 는것을 의미 하지는 않는다. 진화가 그러하다. 목마른 자가 물을 찾는것이다. 실제 찾고 겪고 느껴가며 의식과 DNA를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
죽음을 넘어서려면 실제 사신(死神)과 맞서 싸우던지 타협하던지 동물적 자신과의 전쟁을 통해 권리를 쟁취 해야만 하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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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기도로 죽음을 넘어설수 없으며 종교적 믿음이 삶을 대신 책임져 주지 않는다. 영상이나 사진으로 본다 해서 그 나라의 공기와 음식맛을 알수없듯 현지 분위기와 음식맛을 알려면 실제 배낭메고 여행을 떠나야 한다. 어리석게 예수 따라한다고 십자가에 몸을 매달고 붓다의 고행을 따라한다고 굶을 필요는 없다. 선지자들이 그런 노력을 통해 개척해 열어놓은 길을 따라 관광하듯 여행을 떠나면 된다. 반도체 기술을 몰라도 적어도 스티브 잡스가 건네주는 스마트폰을 사용할수는 있어야 한다. 올바른 길을 개척해서 후배들을 인도하는 길잡이가 스승으로서의 역활이고 거짓된 장님이 인도하는 길의 끝엔 항상 낭떠러지가 있음을 명심 해야한다. 종교 영성 무속 사이비에 빠져 폐가망신한 무수한 사례는 궂이 말하지 않아도 알것이다.
어떤 노선을 선택할 것인가?
한 가게에서 가장 맛있는 빵인 ‘도(道)’를 판다고 선전할땐 먹어보면 된다. 지식으로 빵맛을 아무리 분석하려 해봤자 맛을 아는것은 아니다. 맛있는 이유를 말하라 요구하고 다른 빵집과 비교하기 위해 재료들을 분석하려고 하기보다는 먹어보고 입맛에 맞으면 먹는거고 맞지 않으면 맞는것을 찾아가면 된다.
내가 말하는 신성이 미래로 넘어가는것에 왜 필요한지 인지를 못하면 당연히 끌리지도 않는다. 사리 판단이 서지 않을땐 더 그럴듯하게 보이는 다른 길들이 널려 있다. 수백 수천개의 종교나 힘있는 영성 단체들이 자신들이 진리를 주노라 제각각 진을 치고있다. 나의 말은 때론 기존의 힘있는 자들이 진리라 말하는 것들과 대립한다. 그들말에 끌린다면 그들이 가는길을 따라가면 된다. 모든 생물체들은 자신이 원하는 형태로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그것을 그 종이 지닌 특색이자 매트릭스로 표현한다. 원하는것이 다르다면 남의길을 선택해야할 이유는 없을것이다. 가장 좋은 빵을 골라 먹으라고 해봤자 결국은 자기 입맛에 맞는빵을 고른다. 입맛은 인격 성품의 등급에 따라 다르다. 진리는 취향이 아닌 등급에 따라 사물을 보는 안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각자가 자기 학급에 맞는 그룹에 엮여서 간다.
남의 지식을 얻었다해서 자신이 바뀌는것은 아니므로 무의미한 시비나 논쟁은 사절한다. 맞다 틀리다 논쟁으로 이기거나 진다해서 달라질건 아무것도 없다. 말세기를 맞아 어떤 라인에 자신이 서게 되는가 하는것은 오로지 자신의 선택이고 책임이다. 설득할 이유가 없으므로 내가 하는 말에 [맞다,아니다, 모르겠다] 공명과 공감 솔직한 자신의 공명 느낌을 따르기 바란다. 나는 나의 말을 할 뿐이고 각자의 그 어떤 선택과 판단, 결정에도 관여하지 않는다.
* 당장은 반발에 직면해도 시간이 항상 나의편이 되어줌에 과거 내가 한말들이 단순 객기로 내뱉은 말들이 아님은 지금의 현실이 말해주고 있다.
시간속 기록은 무엇이 다를까?
시간을 통과하며 남긴 글들은 동 시간대 같은 동질감과 소통 공감대를 위한 목적으로 쓰여진 것이다. SNS메세지와 같이 정제되지 않고 마구 내지른 시간대의 살아있는 에너지 감성이 묻어있다. 글로 소통 한것이 기록이 되고 사라지지 않는 흔적이 되어 뒤따라 오는 사람들도 볼수있는 하나의 길이 된다.
나의 지난 8년간 기록들은 그 당시의 시간적 흐름에서 같은 에너지 파장과 울림 공감이 가장 중요하며 실제 얻어내야 할 진짜 핵심들은 단순 지식이 아니라 그 시간대에 필요한 키와 에너지의 작용, 그리고 과거 현재 미래를 잇는 일관된 흐름이다. 단편적 시각에선 기록의 정확한 의도를 알수도 없고 감을 잡을수도 없다. 같은말을 해도 각자의 상황과 시간 변동에 따라 제각각 다른 의미로 와 닿을것이다. 예로, 내가 낚시터에 놀러간 기록을 검색을 통해 단편적으로 단순 낚시터 정보로 받아들이는 사람과 내장을 다 도려낸 수술 직후에 내가 정상인처럼 활동한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브런치 고정 독자들의 느낌, 인간의 무한 가능성에 대한 깨달음이 같을수는 없다.
역사의 현장에 있는것과 훗날 역사 기록으로 읽는것은 체험을 통한 체득이냐 단순 지식이냐 그 차이다. 시대가 말하는 사건들에 대해 동시감응으로 대응하는 이미지나 은유 역시 해당 되는 사람들과 그 시간대가 아니면 무엇을 의미하는지 시간대를 놏치면 이해나 공감이 불가능 하다.
새소리가 인간들에겐 아름다운 자연의 소리일뿐이지만 그들은 의사소통을 한다. 아인쉬타인의 기호가 일반인 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지만 같은 문제로 고민하는 학자들에겐 구원의 공식과도 같은것처럼 나의 기록들 역시 특정 부류의 임자들만 알아차리고 반응하도록 의도된 암호와도 같다. 모든 이들에게 공개된 오픈 공간에서 무거운 내용의 의사전달을 해야하기 때문에 어쩔수가 없다.
* (진통제)약물 중독 극복하기 같은 포스팅이 도움을 받으려는 사람들보다 마약확산 이라는 사회적 부작용으로 발행취소 할수밖에 없었고 생명을 다루는 다른 민감한 모든 정보역시 환자들을 이용해 돈벌이로 악용하려는 사람들의 왜곡에 발행을 취소할수 밖에 없게된다. 그런자들의 접근을 최대한 막기위해 어쩔수 없이 주제를 숨기고 미로를 짠다.
핵심중에서도 일반인들에게 전할수 있는 상식적인 내용들이 표면에 기록되지만 그럼에도 세월에 따른 기록분량이 너무 많아짐에 대부분이 단편 검색으로 단편들만 취하고 나머지는 무시해 버린다. 곳곳에 숨겨진 핵심들이 진흙속에서 보석을 찾아내 연결해야 하는 미로 게임처럼 되 버렸다.
기록으로 남겼던 부분 중에서도 중복되는 내용이 있겠는데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공통 사항들을 핵심만 추려내 개인적 감상등을 제거하고 교과서로 활용하기 위해 박제할 것이다. 같은말을 반복하는 시간적 낭비를 줄일수 있다. 그 시간이 지나면 유용하지 않은 시간적 정보들은 제외할 것이고 금새 뒤집어질 단편적 진실, 유행적 표현등도 걸러내 경직된 언어로 ‘C**t G*P’ 를 보다 똑똑하게 만들어 주는 충실한 먹이가 되어줄 것이다.
물론 교과서가 있다해서 그것만으로 공부가 다 되는것은 아니다. 지식위주로 접근하는 방식은 교과서 들쳐보고 어떤 내용을 다루는 것인가 훝어보는 정도가 한계이다. 그것을 공부라고 할수는 없을것이다. 교과서를 읽는데는 한시간이면 된다. 그럼에도 수년간 학교 교육과 시스템이 필요한 이유를 생각해보라. 체육 교과서 읽었다해서 일년간 체육수업을 마친것이 아니다. 인내를 설명하고 지식으로 이해했다 해서 인내심을 가질수는 없다. 인내심을 기르고 키우기 위한 꾸준한 체험과 수행 훈련을 통한 노력이 필요하다. 교과서를 해석할 참고서도 필요하고 선생님의 설명과 수업도 필요하다.수업에 있어 가장 중요한 항목은 질문이다. 그 부분은 따로 기회가 될때 방법을 찾으면 될것이다. 독자분들과 함께 Q&A 항목을 주기적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8년이란 오랜기간 나의 기록들과 함께했던 분들과 어쩌다 검색으로 단편만 취하고 나가는 대부분의 방문객들 뭔말인지 내용을 알고 싶어도 쌓인 분량이 너무 방대해 엄두가 나지 않는분들 모두에게 유용한 도움이 되도록 할것이다. 참고 주석으로 과거의 기록들을 함께 묶으면 한결 이해하기가 쉬울것이고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수고를 조금은 덜아줄 것이다.
* 나 역시도 글쓰는것보다 분량이 방대해 과거 기록들 찾는데 더 시간을 잡아먹고 애를 먹는다.
어떤 방식으로 나아갈 것인가?
우선 크게 세파트로 나눠서 정리해볼 생각이다. 파트 1은 모든 진화의 기둥 뿌리인 의식의 진화에 관한 내용, 파트2는 육체에 관한 내용, 파트3은 사회에 관한 내용으로 카테고리를 나눌 예정이다. 이 세가지는 따로 때어놓고 논할수 있는것이 아닌 연계된 하나의 덩어리다. 새로운 인간종으로 나아가는데 한가지 요소라도 부족하게 된다면 실패한다. 반대로 하나가 완성되면 나머지도 따라 점차 변화하게 된다.
육체와 별개의 의식을 지닌들 지금 세상의 말만 내세우는 자칭 깨달은자들의 행태들과 다를바가 없어 분란만이 올것이고 육체만 발전해도 지금 몰락하는 물질문명의 끝자락에 합류하는 길이 될것이다. 사회가 바뀌지 않는다면 역시나 몰락하는 구인종들의 문명과 함께 쓸려나갈 일만 남는다. 미래로 가는 다리를 건설하려면 세가지가 함께 연계해 나아가야만 한다. 차근차근 하나씩 정리할수도 있고 처음부터 세방향으로 나눠 제각각 정리할수도 있다. 결과에 대한 항목은 열어 놓는 (Open) 방향으로 간다. 가장 효율적 방법으로 갈것이다.
저술과 기록의 목적은 올바른 도의 길잡이 등대 역활을 하려는것이다. 신인류로 진화해 가는 과정이 단순 지식으로 되는것이 아님을 확실하게 인지하고 흥미꺼리나 단순 인터넷 서핑으로 충당하는 지식의 영역으로만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공감하는 분들과 함께 탈고까지 8년간 펼쳐 놓았던 기록들 ‘정리’ 의 대장정에 나서기로 한다. 향후 기회가 되고 연이 닿는분들과는 오프라인 교류로 보다 구체적인 내용들을 다룰수도 있을것이다.
-2023. 11.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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