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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Ah Nov 05. 2023

‘에고(Ego)’ 의 본질[本質]


Step1. 너 자신을 알라 - 소크라테스


영성 공부의 목적


‘영성’ 공부는 에고가 신에게 부여받은 육체를 통해 삶에서 신성이 원하는 ’도리(道理)‘ 를 따르고 자연의 ‘법(法)‘을 배워가는 과정이다. 자연의 법칙 ‘도(道)’ 안에서 보다 고차원 존재로 향해가는 ‘순리(順理)’ 를 따르는 여행이다. 


처음부터 정확하게 목적지와 노선을 알고 출발해야 탈선하지 않는다. 목적과 개념부터 ‘정도(正道)’가 아닌 엉터리라면 이미 답은 정해진것이다. 첫 단추가 어긋나거나 허술해 잘못된 아집에 한번 빠지게 되면 줄줄이 엉망이 되고 어김없이 마의 유혹과 ‘욕망’ 이라는 함정에 빠져 허우적 대게 된다.


자각(自覺)


모든 영성 공부의 첫 단계는 바로 자기 자신이라 믿는 ‘에고’ 를 정확히 아는 ‘자각(自覺)’ 으로 부터 시작된다. 자각에서 출발해 ‘각성’ 까지의 여정이 영성공부의 1 단계다.


*나의 지난 8년간 모든 기록들이 자각에서 출발해 각성까지 인도하는 (시대가 요구하는) 실체적 체감 안내서이며 (시기가 차감에) 마무리 정리를 통해 지도를 만드는것이 현 집필의도 이다.


에고를 명확히 알게되면 인간종에 대한 총괄적 이해를 하게되고 왜 신성을 찾고 말세기 끝자락에서 진화를 선택해야만 하는지 체감으로 이해하게 된다.


https://brunch.co.kr/@yemaya/221


올바른 노선


자각이 부족한 에고를 유혹할 테스트와 함정이 무수히 설치된것이 인생이고 삶이다. 한번 어긋나면 제자리로 돌아오기 까지 얼마나 많은 혼란속에서 뒤통수 맞으며 뺑뺑이를 돌지 모른다. 잘못 행함에 따른 인과의 ‘카르마(Karma)’가 옭아매기 때문이다.


https://brunch.co.kr/@yemaya/1807


인간 에고의 본질과 성질을 먼저 알아야 통제가 되고 제대로 된 길을 구분하는 안목을 통해 탈선없이 공부를 할수있다. 욕망을 다루는법, 카르마를 구분하고 다루는법, 신성을 찾기전 인간 생활속에서 부대끼는 준비 과정들도 만만치 않다.


자각없이 출발한 영성은 아이가 람보 흉내놀이를 하는것과 같다. 무기 다루는 법을 모른채 전쟁터에 나선셈이고 아무런 장비없이 밀림오지나 사막을 횡단 하려는 것과 같은 무모함이다. 아이가 실제 총칼들고 전쟁터 나가면 누군가 다치고 자신도 무사할수가 없다.


https://brunch.co.kr/@yemaya/983


인간 세상에 제대로 된 스승 찾기가 모래사장 바늘 찾기만큼 어렵기에 체험과 미혹의 경계선을 모르면 수많은 종교영성 다단계 사기에 걸려들고 인생 망치는 일이 비일비재다. 먹잇감이 있기에 사냥꾼이 몰려든다. 단지 현재의 삶이 힘들어서 도피처로 영성을 택하려 한다면 차라리 복권을 사는것이 확률에서 나으리라 본다. 그런 사람들 끌어모아 흥행한 다단계 종교들의 권세가 현재의 말세다.


유치원 아이가 대학교재 본다고 물리학을 이해할수 있는것이 아니다. 각 종교마다 성자가 남긴 악보들은 있다고 하는데 제자들이 연주하는 소리를 들어본적이 없다. 악기 다루는 법은 무시하고 악보(경전) 외우기만 하기 때문이다. 악기 다루는 법을 모르면 어떤 명곡 악보를 쥐어줘도 연주를 하지 못한다. 악보를 아무리 봐도 무슨 음악인지 알수가 없다.신성을 찾기 이전에 에고의 본질, 신성과 육체와의 관계를 명확히 파악하고 에고에게 부여된 임무가 무엇인지 부터 자각하며 제대로 악기 다루는 법 (인간의 삶을 통한 인격수양)부터 배워야 한다.


대부분 영성공부가 인간 본성을 무시하고 준비도 안된채 신만 찾으려다 계속 고꾸라지고 헛발질만 하게된다. 악기를 다루지 못하니 악보가 있어도 연주를 못하는 것이다. 대부분이 자격미달로 각성까지 밟지 못한채 생을 마치고 수그러 든다. 시작점인 자각부터 혼란속에서 시간 다 보내기 때문이다.


자각의 첫 단계는 ‘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의 말부터 시작된다.


Ego 란?


‘에고(Ego)’ 라 함은 ‘나’ 라고 하는 각각의 독립된 개체성 자아를 말한다. ‘영혼’과는 다른 개념이다.


곤충들과 동물들은 ‘나’ 라고 하는 개체성 자아보다 집단의식체를 따르며 육체 본능 위주로 살아간다. 식물이나 바이러스등 단세포 생명체들에게 개체별 에고는 존재하지 않으며 고등생명체 일수록 생각을 통해 육체를 기반으로 삼는 ‘나’ 라고 자각하는 개체성 에고가 독립적으로 발전한다.


* 수억마리의 남성 정충이나 암세포들이 육체안에서 목적을 갖고 살아 움직인다 해서 수억개의 영혼과 에고가 있는것이 아니다.


인간의 에고는 [육체에 종속된 자아] 로 유아기를 거치며 서서히 모양새를 갖추기 시작하는데 <환경>과 부모로 부터 물려받은 <DNA> 적 성향이 영향을 끼친다. 성선설 성악설과 같은 철학적 논쟁을 불러 일으키는 두축 기둥이라 하겠다.


https://brunch.co.kr/@yemaya/821​​


‘성선설’ 과 ‘성악설’은 귀걸이로 볼수도 있고 코걸이로 쓸수도 있다. 어떤 사회속에 놓여지냐에 따라 에고의 성향이 집단에 끌려가고 개개인 성향들이 모여 집단의식을 이루기에 인간을 ‘사회적 동물’ 이라 말한다.


에고의 본성


모든 생명체들의 본성엔 신성의 씨앗을 품고있다. 에고의 타고난 ‘본성(本性)’ 은 ‘감성 이성 지성’세가지 기본성질로 구분해 나눌수 있다. 육체적 환경과 타고난 DNA 구성에 이 성질들이 있기에 독자적 에고가 형성되고 성장해 갈수있다. 개별적으론 각자의 카르마가 영향을 끼친다.


에고가 성장해가는 과정에서 ‘감성(感性)’과 ‘이성(理性)’ 두가지 속성을 사용해 생각을 발달시켜 가게 되는데 비율에 따라 에고의 성격과 성향이 정해지게 된다. 두 가지를 적절히 조율하고 배합해 사용하는 성질을 ‘지성(知性)’ 이라 한다. 감성과 이성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지성이 사리판단 능력을 갖춤이 곧 에고의 ‘품격(品格)’이 된다. 나이가 들수록 에고에게는 성격이나 개성보다 ‘성품’ 과 ‘인품’ 이 중요해진다.


소아적 깨달음 ‘아집’


에고는 나이를 먹을수록 지식과 경험을 통해 생각의 결집을 강화하게 된다. 어떤 새로운 것도 받아들이지 않을만큼 완고한 형태로 나름 ‘깨달음’ 으로 굳어진 생각을 ‘아집’  이라고 하는데, 흔히들 영성공부를 시도함에 있어 ‘에고를 버리라’ 는 말은 잘못된 표현이다. 에고가 무엇인지 명확히 모르기에 벌리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인간의 육체가 정상적 활동을 하는한- 에고는 결코 버릴수도 없으며 사라지지 않는다.


에고에게 에고를 버리란 말은 빙의나 정신이상, 식물인간 또는 몸을 벗고 죽으란 말이다. 모순된 선문답으로 시간낭비 하는것을 영성 공부라고 생각해선 안된다. 그들이 버리라고 말하는 에고란 에고의 생각이 고착화된 ‘고집’ 과 ‘아집’ 을 말한다. ’고정관념‘ 이라고도 한다. 고정관념 에는 에고가 자기 자신이라고 믿는 외형적인 요소(나이 직위 성별) 들도 포함된다. 의식확장을 하라는 성자의 말 뜻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함에 말의 모순에 따른 혼란이 발생한다. 에고가 에고를 버리겠다고 평생을 미친짓을 해가며 방황하는 경우도 생긴다.


https://brunch.co.kr/@yemaya/266​​


자신은 에고를 없애고 깨달아서 항상 행복한 ‘대자유인’ 이라는 깨달음 강박증 환자를 실제 본적도 있다. 모르니 (깨달으면) 아마도 그럴것이라고 생각해 자신을 봐달라고 연기하려다 스스로 강박증 환자가 된것이다. 그렇게 인생 망치고 아집으로 사기꾼 아니면 폐인된 경우가 영성계에 무수히 널렸다. 바른길을 제시하는 스승과 만날 자격과 인연이 없어서다.


* 나를 가르치겠다고 설쳐대는 그런 허깨비 같은 자들에게 (젊었던 시절의) 나는 짧은 말 한마디로 그들이 가진 최후의 믿음과 희망을 근본부터 짓밟는 악마와 같은 존재가 되어 버린다. 근본없는 허상과 거짓은 입김만으로도 한순간 무너진다. 에고는 그만큼 무너지기 쉬운 허약한 존재이다.


https://brunch.co.kr/@yemaya/1638​​​​


에고의 고집과 자존심


새술은 새부대에 담으란 말은 새로운 지식을 원할땐 아집과 집착, 이전의 고정 관념들을 버리라는 말이다. 고집은 아집이 틀린것을 알아도 바꾸려 하지 않는 성질로 에고는 그것을 ‘자존심’ 이라고 착각한다. 자존심은 스스로를 존중하는 마음이지만 고집은 단순히 남에게 얕보이거나 지지 않겠다란 동물적 자기 보호 본능이다.


https://brunch.co.kr/@yemaya/966


에고는 스스로를 자각하기 전까지는 자신이 육체의 주인이라 착각한다. 실제로는 나이 성별 건강 외모등 육체가 부여한 성질대로 살아가야 하는것이 에고에게 부여된 제한이자 운명이다. 육체라는 용기에서 파생된 의식이기 때문에 육체를 지배하지 못하며 반대로 육체의 지배를 받을수 밖에 없다. 늙고 병들어 가는 육체를 통제하지 못하며 육체의 상태에 따라 감정의 지배를 받는다.


https://brunch.co.kr/@yemaya/129​​


육체에 부과된 정해진 시간(수명) 동안 육체를 활용해 체험을 습득하는 과정에서 육체를 보살피고 관리하는 관리자 로서의 역활이 에고의 기본 업무이다. 대체적으로 육체의 상태에 따라 기분의 상태도 정해진다. 육체가 배고플땐 먹여주고 아프지 않게 돌봐 주어야 하는 일심 ‘공동체’다.


에고의 주인 ’존재‘ 아이엠


에고와 육체를 관할하는 실제를 일컬어 ‘아이엠’ 이라 일반적으로 칭한다. 불교 용어로는 ‘진아’ 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며 내면의 신성을 발견했다는 불교식 용어가 ‘견성’ 이다. 진아와 합체해 육체를 지닌 아이엠 상태를 보통 ‘현존’ 이라 한다. ‘각성’ 을 했다는 말이다.


https://brunch.co.kr/@yemaya/897


https://brunch.co.kr/@yemaya/1198


존재 자체인 ‘나’ 아이엠이 인간의 육체를 기반으로 부가적으로 파생된 의식이 ‘에고’ 이다.


육체를 갈아탈땐 또다른 에고가 만들어 진다. 에고 입장에서 ‘환생’ 이라는 개념이다. 전혀다른 개별 인격체를 ‘전생’ 으로 하나의 연결체로 이어지게 만드는 연속성의 ‘나‘ 를 존재하는 나 (IAM) 이라 내가 말한다.


https://brunch.co.kr/@yemaya/1172​​

https://brunch.co.kr/@yemaya/921​​


신성의 ’나‘ 와 육체에 한정된 일회성 의식인 ‘에고’ 는 작가와 캐릭터 주종 관계이자 운명과 육체를 운영하는 동반 파트너라 할수 있다. 신성을 찾는다 함은 실제 존재 주체인 나와 에고간의 단절된 연결선을 ‘복구’ 한다는 의미다. 연결선을 회복하기 전까지 에고는 체험 데이터를 수집하는 1회성 소모품에 불과하다. 인생 황혼에서 스스로 허무함을 느끼는건 오로지 스스로 1회용 의식임을 감지한 ‘에고’ 만의 전유물이다.


https://brunch.co.kr/@yemaya/1962


에고에게 주어진  ‘자유의지’


인간이 스스로를 돌아보고 노선을 선택할수 있는 지능을 ‘자유의지’ 라 한다. 다른 동물들과 달리 인간에게만 주어진 특권이자 신이 부여한 선물이 곧 ‘자유의지’  이다. 동물들은 철저하게 생존 본능만을 따르지만 인간은 자유의지를 사용해 스스로 진로를 결정할수 있다. 아담과 이브에게 무작정 벌을주려고 에덴동산에서 쫒아낸것이 아니다. 신이 될수도 있는길과 동물로 살아가는 길 위 아래를 모두 열어두고 스스로 선택하도록 허용한것이 곧 ‘자유의지’ 이다.


https://brunch.co.kr/@yemaya/770


상식을 역행해 고통을 즐거움으로 삼는 변종을 택할수도 있다. S&M적 성향과 육체가 먹는것을 거부하는 ‘거식증’ 이 단편적 예다. 에고의 자유의지 만이 할수있는 ‘본능’에 대한 반항이라 할수 있다. 때론 신념에 함몰돼 고행을 스스로 자청 하기도 한다. 그만큼 미숙한 종에겐 선택이란 것이 때론 위험하기도 한것이다.


중세 유럽에선 권력을 지닌 종교가 자신들 노선이 아니라 의심되는 자들(주로 여성과 과학자들) 을 무조건 악으로 규정해 살해 한것이 마녀사냥의 역사다.  인간들 스스로 자유의지를 갖지 못하게 막는것이 신의 뜻이라고 주장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도 하기에 인종의 진화엔 사회도 같이 따라 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말세기 에고는 자유의지를 사용해 무엇을 체험하고 무엇을 향해갈지 스스로 선택할수 있다. 신이 인간에게만 허락하고 부여한 신성이란 선물을 받아들지 육체적 쾌락을 추구함에만 이끌려 동물적 존재로 살아갈지를 스스로 정한다.


https://brunch.co.kr/@yemaya/995


신성으로 or 동물적 존재로


육체가 노쇠해 갈수록 에고는 육체의 죽음과 함께 자신도 소멸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울함과 두려움에 빠진다. 육체가 곧 자신이라는 고정관념이 아집이 될때 에고는 육체 본능에 더 집착하게 되고 육체적 탐욕 추구에 매달릴수록 동물적 존재로 추락한다.


생명체에게 있어 만족과 안락함은 변화를 거부하고 퇴행 하려는 성질을 지닌다. 먹이사슬 에서 약자일수록 일반적으로 수명이 짧다. 모든 생명체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반복 경험함 으로써 한계를 넘어서길 갈망하게 되고 조금씩 진화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게 된다. 스스로의 동물적 한계를 절감한 현 인류의 갈망이 그러하다. 말세기를 맞아 생존을 위한 진화의 시기가 도래하고 임계치가 다 찼다고 볼수있다.


온갖 종교 영성 사기질이 만연해진 근본원인은 에고와 신성의 명확한 개념을 혼돈함에 무엇을 해야할지 모름에서 야기된 것이다. 성인들의 말을 엉뚱하게 해석해 자신들 이득 방향으로 끌고가려는 ‘아전인수’ 식 기르침이 만연해 온갖 사회문제들을 일으킨다. 더 나아가 민족간 전쟁과 인종청소까지도 벌어지고 있는 말세기다. 이제 공부할 시간이 다 찼고 시대적 한계와 벽을 마주섬에 각자 선택한 대로 종의 갈라짐이 시작되는 과정에 들어섰다. 정리와 마무리가 중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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