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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Ah Dec 30. 2023

*복덕[福德] - 음덕과 공덕


’덕(德)‘이라 함은 올바른 ‘도(道)’ 의 길을 걸음에 쌓이게 되는 발자취 같은 것이다.


악행을 저지름은 카르마에 말려들어 긴장된 수축의 쳇바퀴를 돌게된다. 반대로 복덕을 쌓아감은 점점 상승으로 가는 커다란 완만한 확장 싸이클에 올라타게 된다. 각자 한계점이 차면 차원이 달라지는 경계선에 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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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德)’이라 함은 삶에 있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기반 토양과 같은 것이다. 식물이 자랄때 토양이 좋아야 하듯 덕이 쌓여 있음에 어떠한 어려움도 극복해 낼수 있다.


덕은 ’음덕(蔭德)‘과 ’공덕(功德)‘으로 나누며 본인 자신이 쌓아논 덕을 ’공덕‘ 이라 하는데 조상이 후손들을 위해 쌓아둔 선업은 보통 ‘음덕(蔭德)‘이라 한다. 제사를 지냄은 조상들의 음덕을 기리고 후손들과의 연계성을 강화하는것이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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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덕과 공덕


큰 복덕은 타고난 것이라 한다. 그러나 싸이클의 회전주기가 다를뿐 한생에서도 뿌린대로 거두는 ’업보(業報)‘ 의 법칙은 동일하다. 공덕은 오로지 본인의 노력으로 적립하는 것이고 음덕은 뒤에서 돌봐주는 보이지 않는 조상이 물려준 공덕을 가리킨다. 후손이 잘되길 바라고 쌓아놓은 공덕들을 그 후손들이 기질로 물려 받은 유산의 형태가 ‘음덕’ 이다. 삼국지에서 온순한 성격에 별다른 영웅기질이 없는 유비지만 관우 제갈량 조자룡등 기라성 같은 영웅들이 몰려드는 이유가 유비가 타고난 공덕과 음덕이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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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공덕의 발현됨은 본인의 축적된 자질이 뛰어난 경우가 많고 음덕이 크다함은 환경적 보살핌이 안정적인 경우가 일반적이다.


에고 입장에선 능력있고 부자집에 태어남을 음덕으로 여기기 쉬운데 꼭 그렇지는 않다. 내가 보아온 결과로 말하자면 말세기에 음덕은 도리어 일종의 울타리와 성격에 제약을 가해 잘못된 길로 가지 못하도록 욕망을 제지하는 세팅이 대부분이다. 내성적이고 얌전한 성품 또는 사회적 융통성이 없어 한길만 가도록 세팅하기도 한다. 과도한 물질적 풍요가 도리어 사람을 망치기 쉽기에 정신 차리라는 의미로 가난한 환경을 조성하는 경우도 있고 정신 못 차릴땐 후려치기도 한다.


음덕이 많은 사람은 조상이 올바른 길로 가도록 채찍질 하고 인도함으로 세상을 살아감에 잘못될 위험이 크게 줄어들지만 음덕을 빙자한 무속 종교 사기도 많다. 음덕이 많다는 말에 낚이지만 실제론 음덕이 척박하니 그런 사기에 걸려든다. 음덕이 좋아 부자집에 태어났어도 도박에 빠져 가산탕진 하는 경우도 있다. 본인의 자유의지에 따른 결과로 ‘안되면 조상탓’ 할 꺼리가 없다.


덕은 실제 인품에 그대로 드러난다. 음덕의 경우도 그러한데 안목이 있으면 쉽게 알아볼수 있다. 음덕을 타고난 경우 엄한 집안에서 내성적이고 얌전한 성격임에도 인연에 따른 스승 친구 친척 지인복을 타고난다. 세속적 성공과는 거리가 멀어 보여도 악연을 막고 좋은 인연을 이어 주는 것이 가장 큰 음덕의 작용중 하나이다. 어려운 상황에 처해도 바른길로 인도하고 도움을 주려는 인연들이 나타난다.


본인은 몰라도 음덕의 경우 ‘수호천사’  라 해서 가이드와 보호해주는 영이 항상 따라붙어 있다. 사고를 막아주는 역활을 하며 가야할길로 이끄는 가이드 역활을 한다. 가이드가 제시하는 길이 물질적 성공을 뜻하는것은 아니다. 반대로 깨달음으로 갈수있는 과제를 던져주고 채찍질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실속에선 고난과 어려움이 그런것인데 주어진 실패의 과정을 통과하며 올바른 길을 찾고 내공을 키울수 있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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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과 후손은 같은 DNA 라인을 탄다.


모든 생물체는 조상의 내리물림에 의한 동일한 계통의 DNA 육체를 지니게 되는데 전생과 상관없이 육체적 라인에 의한 현생의 카테고리에 묶인다. 민족이 정해지고 국가로 나뉘며 지역으로 갈리고 가계로 구분된다.

일정 시간이 되면 올챙이가 개구리로 변모하듯, 모든 종들은 수많은 선조들의 경험속에서 DNA 를 통해 지식과 카르마 들을 압축해 전수하면서 자손을 통해 종의 생명을 바톤터치로 이어 나가게 된다. 본능은 죽음의 환경 위험 요소를 알고있고 생존을 위해 진화 하려는 의지로 각 종의 평균 수명까지 DNA 프로그래밍을 따른다. 하루살이 몸으로 오래 산다는것이 관찰자 입장에서 얼마나 잔인한 일인지 생각해보라. 환경이 착박할수록 삶을 최대한 빨리 끝내고 빠른 순환으로 진화를 향하도록 만든다.


암수의 개체적 유전자 요소들은 자식들의 DNA 속에 그 특성들을 이어 나가게 되는데 육체를 지닌 어떤 생명도 자신의 DNA 속에 숨쉬는 부모와의 연결선을 끊지 못한다. 모든 천라지망이 그런 육체적 영적 족보 체계로 복잡하게 얽혀 있으며 조상과 후손은 피라미드 체계처럼 한 일가 라인으로 이어져 있다. 개인은 민족의 카르마 조상의 카르마들의 카테고리 라인에서 좋건 싫건 태생적 영향을 받게된다.


https://brunch.co.kr/@yemaya/1192​​


연줄


핏줄이라 함은 하나의 라인에 줄줄이 고대부터 이어져 온 DNA 라인을 말하는것이고 연줄은 카르마의 줄기까지 포함한다.


한국인들은 특히나 자신들 후손을 통해 다시 환생의 바탕이 되는 육체를 얻는 핏줄 연줄 우선을 가장 중시해 왔다. 모든 가문이 살아선 자손을 낳아 대를 이음이 1순위 임무이고 대가 끈김을 멸문지화로 여겨 가장 두려워했다. 가문의 음덕(유산)과 더불어 카르마(빚) 까지 이어간다.


말세기를 맞아 인간계 보다도 조상 귀신들이 더 안달나고 난리난 이유가 직계 자손이 대가 끊기게 되면 자신들의 환생을 위한 친숙한 가계 라인이 끊어짐에 따른것이다. 후손들이 교회 나간다고 제사를 폐기하고 남의나라 조상들을 섬기려 들때 환생라인이 무너지고 가계 조상들이 떠돌이 신세로 전락하는 경우가 생긴다.


남의 가계에 줄을 잇고 의식이 양자가 되면 직계 조상으로 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가계 음덕라인도 끊어지는 경우가 많다. 안되면 조상탓에 복덕은 없고 카르마의 고통만 밀려오는 삶에서 직계 조상들을 잡귀나 악마로 취급하는 경우가 많은데 눈앞의 현실적 이득이냐 영적 유산상속의 포기냐 선택이다.


현실에서도 유산보다 부모빛이 많을경우 상속포기를 하기도 한다. 양자로 얻는 음덕이 더 크다고 장담하다가 자신도 비빌 언덕 없이 떠도는 길양이들 처럼 낭패 당할수 있다. 조상신들의 가호가 사라짐에 오로지 독자적 공덕을 쌓아가며 살아 남아야 하는데 물질적 성공만 쫒는 현 세태를 보면 독자적으로 영적 자수성가의 확률이 그리 크지 않다고 본다.


https://brunch.co.kr/@yemaya/1438​​


* 환생 시스템에서 후손의 존재는 정당 정치의 공천권과 비슷하다. 말세기엔 후손을 통해 현실에 환생 자리를 확보하려는 조상들의 바램이 치열해진다. 대가 끊김은 인간세계에 출마 하려는 DNA 라인의 공천권이 사라진다고 볼수있다. 환생에 있어 독자출마의 길만큼 어려운 셈이된다.


수호령 수호천사


음덕의 실체적 존재로써 영혼에 딸린 수호령을 서양에선 천사로 표현한다. 대부분이 조상 선령신들이 관여하며 후손들 보살피는 작용을 한다. 수호천사들의 도움을 일반인들은 단순 ‘행운’으로만 여긴다. 존재를 인지하지 못하는 일반적 시각에선 그들의 도움들이 신기한 우연으로 받아 들여진다. 돌아가신 부모님이나 조부모가 꿈을 통해 후손에게 예지적 조언을 하는 경우도 흔하다.


신성이 말하는 하지마! 만류에 대해 일반인들은 ’양심이 찔린다‘ 라는 표현을 쓴다. 양심을 저버리는 횟수가 잦을수록 신성과의 관계는 멀어지고 연결 감각은 무뎌져 간다. 결국 감이 막혀 아예 신호를 감지를 못하게 됨에 소시오패스나 싸이코패스로 변이되게 된다. 수호령과의 차단도 마찬가지다. (부모의 잔소리 정도로 치부하고) 양심을 거부할수록 수호령과 소통의 통로가 막히게 되며 단절로 가게 된다. 에고의 독단적 질주가 성공으로 가는길처럼 보이나 망해가는 낭떠러지 길을 골라가는 경우를 흔하게 볼수있다.


가장 큰 선업 ‘공덕[功德]’


농담처럼 내뱉는 말중에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하는  말이 진실일 경우도 있다. 덕중에서도 가장 큰 덕이 바로 공공을 위해 선업을 쌓는 ’공덕[功德]‘이다. 음덕과 공덕은 그 모양새에 있어 성격이 다르다.


공덕 : 공로(功勞)와 인덕. 여러 사람을 위(爲)하여 착한 일을 많이 한 힘.


전쟁영웅으로 비록 전생에선 비극적 결말을 맞았을지라도 그 정신만큼은 공덕으로 보상을 받는다. 음덕이 탈선을 막는 방어차원의 보이지 않는 덕 이라면 공덕은 남보다 뛰어난 재능과 리더적 기질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부잣집에 태어나거나 음성의 DNA 를 지닌 부모밑에서도 양성의 좋은 DNA 를 물려받는다. 가난한 집에 태어나도 개천에서 용이 나오는 형태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다. 어떠한 삶을 선택하던 쌓아놓은 공덕에 의한 인품이 추락하는 경우는 흔치않다.


* 같은 집안 태생이지만 형제간에도 DNA 성향이 갈리는것은 공덕의 차이다. 수호전에서 미천한 가문에 바보형을 둔 영웅 호걸 타입 무송의 경우가 대표적 잘남 공덕의 발현이다. 바보형을 암살한 형수 반금련과 정부를 처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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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과 짐승의 길, 인간의 선택


인간은 자유의지를 지님에 동물적 본능만을 따르는 존재가 아니다. 스스로가 짐승의 길로 추락할지 신성을 쫒아 상승할지를 결정 지을수 있는 선택권을 부여받은 중간자적 존재이다. 선업을 쌓아감은 상승노선을 가는것이고 악행을 행할수록 카르마의 굴레속으로 끌려가게 된다. 말세기는 그 모든 인류역사의 최종 갈림길의 종결라인에 서 있음을 의미한다.


인간 몸 하나는 무수히 많은 수십생이 지난 데이터들의 종합 집합체 이다. 한명 개개인의 DNA 와 운명에 수많은 조상들의 성질들이 응축 되어있음에 혼자만의 문제가 아닌 가계의 가운과 국운이 함께 동반된다. 자신의 선택과 행동에 대해 ‘나하나 죽으면 모든것이 끝난다’ 는 식으로 결코 가볍게 여길 사안이 아님을 숙지해야만 한다.


죽은자들은  모두 누군가의 조상, 할아버지 할머니들이고  또한 자신들의 전생의 찌꺼기가 남긴 데이터들이다. 그 귀신들이 모두 현세의 인간과 함께하며 무량한 세월의 데이터가 합산돼 최종 결산되는 시기다. 줄줄이 매달린 연줄이 앞에서 끊어지면 뒤로 수많은 연줄이 전부 날라간다. 변화하는 자연의 흐름을 보면서 억울하다는 온갖 만법의 소소한 변명들이 통할수 있는 여유가 없음을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


https://brunch.co.kr/@yemaya/670


*예수의 전기를 보면 십자가에 예수와 함께 매달린 죄인이 생의 마지막 순간 예수의 천국에 동참할수 있을지를 묻는다. 예수는 기꺼이 그러하리라 말한다.


증명할수 없는 단편적 현상의 가부에 대해 내막과 진실 여부를 따질건 없다. 이론적으론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인간의 선악에 대한 독자적 판단이 열사적 사명감을 지닌 성인인 예수를 십자가에 매다는 중죄인 이라고 낙인찍기도 한다.


예수와 역사적인 순간 한 공간에 옆자리에 매달린 우연자체가 운명적 공덕이 작용함이고 주변에 끼치는 예수의 파장이 강하다면 상황에 맞춰 동일한 파장대의 동조와 공감이 묻어감이 가능할수도 있음을 충분히 추론할수 있다. 예수의 파장에 감응하고 공감할수 있다는것도 어느정도 격이 받쳐 주어야만 가능하다. 공덕과 음덕의 숨겨진 힘이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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