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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가특별한교육 Aug 23. 2023

아동 학대 신고 당한 어느 교사의 이야기

특집 | 학교공동체를 살리는 교권

서이초 선생님의 안타까운 죽음을 계기로 '이대로는 안된다'는 여론이 분출했습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교사들이 겪는 고충에 대해서 잘 공감하지 못하는 목소리도 들려옵니다.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 대처 방법도 분명해집니다. 아동학대 신고를 겪었던 도내 한 초등학교 선생님의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서 공유합니다.



저는 올해 여섯 번째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그 중 6학년 아이들을 만난 건 이번이 네 번째입니다. 올해 아이들까지 어느덧 100 여 명 정도 되는 아이들의 초등학생 마지막 시절을 함께 했습니다. 6학년은 많은 선생님들이 희망하지 않는 기피 학년입니다. 하지만, 한 아이의 인생에서 소중한 시간인 초등학생의 마지막 1년을 함께 보내며 서로 가르치고 배울 수 있다는 것은 매년 저에게 참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제게 ◯◯이는 그런 아이들 중 한 명이었습니다. ◯◯이가 제게 “씨◯년아” “지◯하지마” 등과 같은 비속어를 매일 내뱉고, 리코더나 신발을 던지거나 빗자루로 위협을 하는 등 물리적인 폭력을 하려고 했을 때에도 제게는 교육적으로 ◯◯이를 아주 조금이나마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3월에 저는 저희 반 아이들이 다른 반 아이들보다 유독 조용하고 차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가 날 무시했다며, 날 비웃었다며 교실의 물건을 보이는 대로 잡아들고 아이들에게 달려들 때도, 며칠 전이나 몇 주 전에 있었던 일이 갑자기 화가 난다며 수업 중에 일어나 소리 지르고 욕을 할 때도 아이들은 같이 싸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내가 미안해 ◯◯아” 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여학생이 제게 ◯◯이가 무섭다며 울음을 터뜨렸을 때, 남학생이 용기가 나지 않아서 ◯◯이에게 하지 말라고 말하지 못했다며 오히려 스스로를 질책할 때, 그 때 아이들의 마음을 깨닫지 못한 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1차 교권보호위원회가 열린 뒤 ◯◯이는 10일간 출석이 정지되었습니다. 이 짧은 기간 동안, 내가 한 달 넘게 봤던 아이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저희 반 아이들은 바뀌어갔습니다. 조용한 줄 만 알았던 아이들이, 작은 것에도 숨이 넘어갈 듯, 함께 웃었습니다. 조금 지나쳐서 혼이 나기도 했지만 그마저도 너무 사랑스러운 장난꾸러기 아이들이었습니다. 그제야 저는  열세 살 아이들이, 그저 ◯◯이와 같은 반이라는 이유 하나로 얼마나 마음 졸이며 힘든 새 학기를 보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4월 마지막 주가 되어 ◯◯이가 돌아왔을 때 저는 ◯◯이와 긴 시간, 참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출석정지 기간동안 ◯◯이가 아주 조금이라도 학교에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랐습니다. 하지만 5월 중순이 채 되지 않아 저희 반은 또다시 3월 그 조용했던 반으로 돌아갔습니다. 저는 ◯◯이가 화가 날 때마다 “그러면 출석정지 시키던가요. 어차피 선생님 저 어떻게 못하잖아요! 와 같은 얘기를 들어야만 했습니다.


◯◯이가 저와 아이들에게 언어적·물리적 폭력을 가해도 ◯◯이의 수업권 보장을 위해 교실에서 분리시킬 수 없었습니다. 정서적 학대라는 이유로 언성을 높이지도, 신체적으로 제지할 수도 없었습니다. ◯◯이는 그것을 알고 있었고 시간이 갈수록 더욱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는데 거리낌이 없어져 갔습니다.

 

5월의 끝자락, 여느 날처럼 ◯◯이가 던지는 물건과 비속어를 보고 들으며 저는 ◯◯이를 포함한 우리 반 아이들이 지금처럼 앞으로의 날들을 함께 살아가는 건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렇게 긴 고민 끝에 2차 교권위를 다시 신청하였고 다음날 아침, 저는 ◯◯이의 아버지께 아동학대 신고를 했다는 장문의 문자와 전화를 받았습니다. ◯◯이가 화날 걸 알면 선생님이 어르고 달랬어야지, 그냥 ◯◯이 전학 보내고 싶었던 것 아니냐, 그러니까 왜 여자 선생님을 담임으로 했냐, 등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작년부터 일 년 반 가까운 시간동안 저희 학교에서 수많은 선생님들이 ◯◯이와 ◯◯이의 가정을 위해 노력한 결과가 ◯◯ 아버지에게는 ‘아동학대’였고 ◯◯이에게는 내가 이렇게 말하고 행동해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3개월 이상의 신경과 치료가 필요하다는 의사선생님의 소견을 받고, 생리불순이나 이명 등의 신체적 이상 증세를 겪으면서도, 제 자신을 돌보는 것을 가장 마지막으로 미룬 채 ◯◯이에게 쏟은 노력의 결과이기도 하였습니다.


아이들이 자신의 말과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음을 이해하고 책임감을 가지기를, 모든 아이들이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서 맺는 관계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제가 너무 욕심을 낸 것일까요. 교사로서 저는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지켜내지 못했습니다. 얼마나 더 많은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희생되어야 하는 걸까요. 정당한 교육 활동을 보장 받는 그 날을 고대하며 오늘도 저는 저의 말과 행동을 스스로 검열하며 아이들을 만나러 갑니다.



매거진 여름호 목차

여는 글_모두가 특별한 교육, 여름
1. 시론
2. 특집 : 학교 공동체를 살리는 교권
3. 학교이야기
4. 인터뷰_최이선 건축사
5. 책 이야기
6. 스케치_강원교육 평가와 전망 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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