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영화 다른 시선(11) - 영화 <첨밀밀>
“야아, 서울 다 왔다, 서울!”
이 외침으로 객차 안은 왁자지껄하고 떠들썩해졌다. 그러나 차창으로 몰린 사람들은 이내 잠잠해졌다. 그 조용함에는 낯설고 큰 도시에 대한 두려움과 설렘, 긴장과 같은 것들이 번져나고 있었다.
- 조정래 소설 <한강> 중에서 -
다소 남루하고 촌스러운 옷차림의 수많은 사람들이 주섬주섬 자신들의 보따리를 챙겨 서울역에 내립니다. 그들의 상기된 표정으로 보아 이제 막 시골로부터 상경한 사람들로 보이네요.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 여러 사연을 가지고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 그들 앞에는 어떤 미래가 펼쳐지게 될까요?
영화 <첨밀밀>의 남자 주인공 소군 또한 돈을 벌기 위해 고향을 떠나 홍콩까지 오게 되는데요, 영화의 첫 장면에는 그 날짜가 1986년 3월 1일이라 적혀 있네요. 왜 하필 홍콩이고 1986년인 걸까요?
홍콩은 경제사적으로 큰 파고를 겪은 도시입니다. 흥망과 성쇠가 현재까지도 반복되고 있는 곳이라 할 수 있죠. 영화 <첨밀밀>은 소군과 이요의 로맨스가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중간중간 비치는 홍콩의 경제 변화를 눈여겨보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재미를 얻을 수 있는 영화기도 합니다. 자, 그러면 그 변화의 흐름을 한번 쫓아가 볼까요?
영국의 식민지였던 홍콩은 과거 섬유 산업과 전자제품 조립으로 1970년 초반까지 큰 경제성장을 이루었지만, 대만 같은 후발주자의 분발과 중국 대륙으로의 제조업 이전으로 인해 홍콩의 경제는 나빠지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1979년 중국의 수장이었던 덩샤오핑에 의해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이 시행되며 새로운 반전 스토리가 쓰이게 되는데, 과거 제조업의 메카였던 홍콩이 금융 서비스업을 주력 산업으로 정착시키며 아시아의 금융허브로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이후 홍콩은 눈부신 발전을 이루게 됩니다. 영화의 첫 장면으로 등장하는 1986년은 아시아의 금융 허브로 성장한 홍콩이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하던 해라 할 수 있죠. 소군은 이런 홍콩을 보며 성공을 꿈꾸게 되고, 결국 고향을 떠나 홍콩에 첫 발을 딛게 됩니다.
여자 주인공 이요 또한 소군과 같은 꿈을 가지고 고향을 떠나온 시골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고향인 광저우가 홍콩과 지역적으로 가까운 덕분에 광둥어를 할 수 있었고, 이 장점으로 인해 보다 빨리 홍콩에 자리 잡을 수 있었죠. 그녀는 맥도널드, 영어 학원 등에서 일하며 열심히 돈을 모아 갑니다. 더불어 투자에도 뛰어드는데 당시 홍콩은 금융허브로써 세계 각국의 투자가 활발했고 그로 인해 주식, 부동산이 급등하던 시기였기 때문이었죠. 똑똑한 이요는 소위 재테크를 했던 겁니다. 그녀는 이러한 홍콩의 경제환경 변화에 대해 소군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요즘에는 할머니들도 주식이랑 외환 거래로 돈 벌어요. 주식은 홍콩의 상품이에요. 중동의 기름이나 두리안처럼요. 홍콩에서 부자 되려면 주식을 사야 해요. (중략) 오늘 항셍지수가 3,600을 달성했어요. 친구들이 연말쯤에는 4,500 이상 오른대요. 사야 할 때에요. 몇 년 후에는 내 아파트 사려고 줄 설 거예요. 홍콩에 내 거 하나, 중국에 엄마 거 하나. 가능하겠어요? 홍콩에선 열심히 하면 뭐든 가능하다고요.”
하지만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 법. 이재(理財)에 밝던 이요도 홍콩 전반을 휩쓴 경제 한파에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주식의 폭락으로 그녀는 큰 손실을 입게 됩니다. 한때 가뿐히 3만 달러를 넘겼던 그녀의 통장에는 채 이제 89.91달러밖에 남지 않았네요. 1987년 10월의 일인데요, 대체 홍콩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녀를 이토록 큰 상심에 빠뜨린 걸까요?
아마도 경제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독자분이라면 ‘블랙먼데이(검은 월요일)’라는 용어를 들어본 적이 있을 텐데요, 1987년 10월 19일 월요일 전 세계 금융시장의 중심인 미국 뉴욕시장의 주가는 하루 만에 무려 22.6% 폭락하는 충격적인 일이 벌어집니다. 주가가 20% 넘게 떨어지면 대부분 개별 주식의 경우 최소 30~50% 하락한다고 봐야 합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엄청난 날벼락이 아닐 수 없죠.
게다가 미국의 폭락은 미국 자체로만 그치지 않습니다. 고요한 호수에 돌을 던지면 점점 파장이 커져 나가듯 미국의 주가 폭락은 다른 국가들에 더 큰 충격으로 전달됩니다. 미국이 1의 대미지를 입었다면 다른 국가들은 최소 1.5~2배의 손실을 받게 되죠. 홍콩도 예외는 아니었고, 그 충격은 개인 투자자인 이요의 자산까지 집어삼키게 된 겁니다.
(블랙먼데이 전후를 상징하는 영화의 한 장면)
블랙먼데이가 발생한 원인에 대해서는 미국의 무역적자, 세제 개혁안, 과도하게 오른 주가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안 심리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가장 신빙성 있는 것은 미국, 독일, 일본 등 세계 주요 국가들이 합의한 금리 정책을 독일이 깨뜨림으로써 전 세계의 경제가 불안해질 것을 우려한 투자자들의 투매 확산 때문이었다고 하네요.
경제 흐름은 호황과 불황이 반복됩니다. 영원한 호황, 끝나지 않는 불황은 존재하지 않죠. 87년의 악몽이 지나고 90년에는 전 세계적인 호황이 찾아오고 그 훈풍은 홍콩까지 불어옵니다. 돈을 다 잃고 어쩔 수 없이 마사지사로 일해야 했던 이요는 우연히 조폭 두목을 만나 경제적 지원을 받게 되고 꽃집, 웨딩드레스샵과 부동산 투자까지 병행하며 큰돈을 벌게 되죠.
이후 무대는 미국으로 넘어갑니다. 조폭 두목의 사망으로 인해 홀로서기에 나서게 된 이요는 중국인 해외 여행객들을 위한 가이드를 새로운 직업으로 택합니다. 이때가 1995년으로 당시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적극적인 개방정책으로 인해 매년 두 자릿수를 기록할 정도로 뜨거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경제적 여유가 생긴 많은 중국인들이 앞다투어 미국뿐 아니라 유럽, 일본, 한국으로 해외여행을 떠나던 시기였죠.
영화 <첨밀밀>은 경제를 주제로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따라가다 보면 홍콩과 전 세계의 경제적 흐름을 엿볼 수 있는 다소 특이한 영화라 할 수 있습니다. 돈과 투자가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가를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죠. 확실히 돈이 없으면 삶이 힘들어지게 됩니다. 우리는 돈이 중심이 되는 자본주의 사회를 살고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돈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할 수 없다는 것을 영화는 확실히 보여주고 있네요. 두 주인공의 질긴 인연의 끈이 결국은 등려군의 사망 소식 덕분(?)에 우연히 이어지는 것을 보면 말이죠.
영화 <첨밀밀>에 주제가를 빼놓을 수 없겠죠? 영화 전편에 흐르는 등려군의 노래 '월량대표아적심'은 이 영화를 바로 떠올리게 하는 마법의 스위치와도 같은 노래 아닐까 싶네요. 오랫 만에 한번 들어보시죠!^^
https://www.youtube.com/watch?v=-n_Kw19q2bM
※ 이 글은 2022년에 출간될 책 <같은 영화 다른 시선(가제)>의 초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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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밸런스 컨설턴트(Life Balance Consultant) 차칸양이 개인 재무컨설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평소 자산관리나 재무설계 그리고 노후 대비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은데 그 방법을 몰라 실행하지 못했던 분들, 투자를 하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거나 겁부터 나시는 분들 혹은 실패하신 분들,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함으로써 경제 플랜을 세워야 하는 새내기 직장인들, 퇴직을 앞두고 경제를 비롯한 삶에 대한 고민이 많으신 분들 등 경제와 관련된 조언과 해법을 드립니다. 또한 컨설팅을 진행하더라도 절대 펀드, 보험상품 등에 대한 가입 권유를 드리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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