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적일 수 있는, 그러나 독재의 위험이 있는
출장 중 호텔 근처 한 팻말이 있었다. 국가는 부강/민주/문명/조화, 사회는 자유/평등/공정/법치, 공민(국민)은 애국/성실(맡은 바 책임을 다함)/정직(신용)/우의(사이좋음). 온갖 좋은 말이 다 쓰여 있었다. 그냥 공공 캠페인이려니 생각했는데 제목을 보니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이라고 적혀 있다. 우리는 사회주의 = 권위주의 국가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사회주의 핵심으로서 민주라.. 과연 어떤 뜻일까.
민주 집중제
바이두에서는 민주집중제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民主集中制:民主基础上的集中和集中指导下的民主相结合的制度
민주집중제 : 민주의 기초 상 집중, 집중의 지도 하 민주가 결합된 제도
알쏭달쏭한 설명이다. 해석하자면 민주는 당내 민주주의를 의미하고, 집중은 당의 결정에 대한 복종으로 이해할 수 있다. 민주집중제는 레닌이 완성한 사회주의 조직이론이다. 우선 당내 선거로 지도부를 선출하고, 당원의 회의와 지도부의 결정으로 정책이 만들어진다. 일단 결정된 사항에 대해서는 당 조직과 당원은 절대복종한다. 이런 방식으로 사뭇 상반되어 보이는 민주와 집중을 섞어 놓았다.
민주 : 당내 민주주의
당내 민주주의 관련하여 중국공산당 규약은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첫 내용이 주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在党的会议上和党报党刊上,参加关于党的政策问题的讨论。
对党的工作提出建议和倡议。
당회의와 당기관지를 통하여 당 정책 문제에 관한 토의에 참가할 수 있다.
당사업에 대하여 의견을 제출할 수 있다.
在党的会议上有根据地批评党的任何组织和任何党员,向党负责地揭发、检举党的任何组织和任何党员违法乱纪的事实,要求处分违法乱纪的党员,要求罢免或撤换不称职的干部。
근거가 있을 때에는 당회의에서 그 어떤 당 조직, 당원에 대하여서나 비판할 수 있고 법과 규율을 위반한 그 어떤 당 조직, 당원에 대하여서나 당에 그 사실을 책임적으로 적발, 고발할 수 있고 법과 규율을 위반한 당원을 책벌할 것을 요구할 수 있으며 직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간부를 해임 또는 소환할 것을 요구할 수 있다.
向党的上级组织直至中央提出请求、申诉和控告,并要求有关组织给以负责的答复。
당 중앙에 이르기까지의 당의 상급조직에 요구, 신소, 고소를 제기할 수 있으며 책임 있는 답변을 줄 것을 해당 조직에 요구할 수 있다.
또한 선거를 통한 지도부 선출도 당내 민주주의의 중요한 요소다.
行使表决权、选举权,有被选举权。
(당원은) 투표권과 선거권을 행사하며 피선거권을 가진다.
党的各级领导机关,除它们派出的代表机关和在非党组织中的党组外,都由选举产生。
당의 각급 지도기관은 그에 의하여 파출된 대표기관과 비당조직의 당조를 제외하고는 모두 선거에 의하여 선출된다.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당원은 당내 회의 등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제시할 수 있고, 규율을 위반한 당원을 신고하고 답변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대부분의 당의 지도기관은 선거로 선출되고 모든 당원은 선거권, 피선거권을 가진다.
하지만 한계점도 있다. 우선 당내 민주주의는 당원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이다. 중국공산당 당원수가 9천만 명을 넘었다는 기사가 나오고, 중국 인구가 2019년 말 14억을 돌파했다고 하니 비율로 치면 전체 인구의 6.4%만에 불과하다. 나머지 93.6%의 국민에게는 이런 권리가 없다. 당원이 아닌 일반 사람들은 전인대 대표를 통해 민의를 반영할 수 있다고 주장하겠으나 전인대는 간접선거로 국가 주석 등 국가 지도부를 뽑는다. 직선제와 간선제의 차이를 우리는 역사를 통해 안다. 그리고 전인대 간선 투표는 이미 당이 결정한 사항에 대해 추인하는 형식이다.
당원이 회의에 참여하여 의견, 규율 위반자를 신고를 할 수 있지만 결정 권한은 상급기관, 최종적으로 당 중앙에 있다. 당 지도기관 대표를 선출하더라도 대부분 상급 기관의 비준을 득해야 한다. 의견을 제출 후 반영 여부는 순순히 상위 지도부의 권한이다. 이전 중국공산당 내에서 정치 민주화에 대한 논의가 오간다는 소식도 있었지만 그 후 별다른 진보는 없는 듯하다. 당내 민주주의 수준은 이 정도 에서 멈춰서 있다.
집중 : 당 결정에의 복종
당내 민주주의에 있어 한계가 보인다면 집중, 결정에의 복종 부분은 아주 강력하다.
다음은 중국공산당 규약 중 민주집중제의 원칙 부분이다. 핵심인 부분만 옮긴다.
党员个人服从党的组织,少数服从多数,下级组织服从上级组织,全党各个组织和全体党员服从党的全国代表大会和中央委员会。
당원 개인은 당 조직에 복종하며 소수는 다수에 복종하며 하급 조직은 상급 조직에 복종하며 전당의 매개 조직과 전체 당원은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와 중앙위원회에 복종한다.
당원은 당 조직, 다수, 상급 조직에 복종해야 한다. 당 조직의 최정점에는 당 200명 남짓의 중앙위원회가 있다. 중앙위원회 전체 회의는 1년 한 번이니 실제로는 중앙위원회 정치국 25명 그중에서도 7명의 상무위원, 그중에서도 당서기 1명의 결정이 곧 당 중앙의 결정이라 할 수 있다. 결국 당 중앙의 소수 권력자의 지시에 절대복종해야 한다. 권력은 고도로 집중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 판사는 개개인의 하나의 독립된 헌법 기관으로 자율적으로 판단하다. 하지만 행정부 소속된 공무원인 검사는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전국 검사가 하나의 통일된 조직체로 움직인다는 ‘검사동일체’ 원칙을 따른다. 노무현 정부 때 검찰청법에서 명시적인 문구는 제외되었지만 내부 통일성, 일관성을 강조하는 문화는 여전하다. 중국공산당의 집중제는 '검사동일체'의 원칙과 같이 전체 조직이 당 중앙의 명령에 따라 하나의 몸처럼 움직임을 말한다. 어찌 보면 CEO 혹은 재벌 오너의 명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기업과도 같다.
결론 : 효율이 높지만, 부패와 독재의 위험이 있는 제도
결과적으로 민주집중제는 민주와 집중의 결합이지만 민주보다는 집중에 방점이 찍혀 있다. 중국과 같은 대국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강력한 통제력이 필수라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사실 중국은 서양식 민주주의는 분열과 대립만 조장하며, 공공의 선을 위해 정책이 결정되지 않고 소수의 이해집단 간 경쟁으로 정책이 결정된다고 비판한다. 중국은 장쩌민의 삼개대표론 이후 중국공산당이 자본가를 포함 전 인민을 대표하고, 각계 계층의 의견을 취합하여 공산당이 최종 결정하는 협상민주주의라는 뜻이다. (중국어로 협상协商은 한국말로는 협의에 가깝다)
독재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이 있는 한국 사람들은 인정하기 어렵겠지만 민주집중제는 잘만 운영하면 우수한 국가 운영 방식이 될 수도 있다. 놀랍게도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멍청한' 다수의 지배보다 소수의 엘리트의 지배가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 자신의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500명의 시민 배심원 앞에서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사형 판결을 받는 광경을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다. 인권, 정치 발전 등을 희생시키기는 했지만 한국도 경제발전 속도가 가장 빨랐을 때가 박정희 대통령 개발 독재 시대였다. 삼성그룹도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임원을 결정하고, 집단지도체제로 의사결정을 하여 글로벌 초일류 기업이 된 건 아니다. 통찰력 있고 과감한 결단력을 가진 리더 한 명과 보좌 그룹, 결정을 일사불란하게 이행하는 충성스러운 조직이 있기 때문에 세계 일류의 경쟁력을 가진다.
가장 큰 문제는 민주집중제에서 민주는 빠지고 집중만 남을 경우다. 민주집중제 운영시 실질적 민주주의 수준은 권력자 성향에 따라 달라진다. 제도를 존중하고 다양한 의견을 받아들이면 결정 속도는 좀 늦더라도 충분히 민주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반대라면 사실상의 독재로 전락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가장 극단적인 형태가 삼대 세습 중인 북한이다. 후진타오는 당내 '무기명 투표를 진행했을 정도로' 역대 최고지도자 중 가장 민주적인 지도자로 평가된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것이 절대 사실이다. 권력의 유혹을 이겨내기 위한 동력을 지도자 개인의 도덕성에 의존하는 구조는 불안정하다. 공산당 선배들도 이를 잘 알고 있는지 민주집중제 6개 원칙 중 마지막 원칙을 개인숭배 금지로 정했다. 중국공산당이 말하는 민주집중제, 덩샤오핑이 고안한 집단지도체제가 설계 의도대로 잘 작동할지는 앞으로의 중국을 보면 알 수 있을테다.
党禁止任何形式的个人崇拜。要保证党的领导人的活动处于党和人民的监督之下
당은 어떤 형태의 개인숭배도 금지한다. 당 지도자들의 활동은 당과 인민의 감독하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중국공산당 규약 제2장 제10조 6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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