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国共产党中央政治局常务委员会委员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
짧게 줄여서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또는 정치국 상무위원이라고 한다. 당 중심의 중국 정치구조에서 최고위 권력자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이 당뿐만이 아니라 군, 정, 감찰(기율위원회) 등 모든 권력기관을 역할을 나누어 책임진다. 덩샤오핑은 이들 간 토론과 협의로 중국의 주요 의사 결정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이른바 집단지도체제이다. 집단지도체제는 정치국 상무위원의 구성, 총서기의 성향에 따라 권위적 운영과 민주적 운영 중간을 오고 간다. 정치국 상무위원 7명이 누구이고 서로 어떤 관계인지를 이해해야 중국 정치의 큰 흐름을 이해할 수 있다.
3대 파벌 : 태자당, 공청단, 상하이방
보통 중국 정치 파벌을 태자당, 공청단, 상하이방 세 파벌로 나눈다. 하지만 이 '파벌'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강한 결속력으로 묶인 집단은 아니다. 비슷한 성장배경, 이념, 성향을 가진 사람들끼리 자연스레 좋은 관계를 맺고 복잡한 정치 환경 속 서로를 끌어주고 밀어주는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한 사람이 꼭 한 파벌에 속하는 것도 아니다. 혁명 원로의 아들이, 어려서부터 공청단에 들어간 후, 상하이에서 정치 경력을 오래 가졌다면 이론적으로 세 파벌 모두에 속할 수도 있다. 이런 극단적인 경우는 찾기 어렵지만 두 파벌에 속해있는 정치인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태자당은 보통 1세대 혁명 원로의 자제를 의미한다. 그리고 혁명 원로는 마오쩌둥을 중심으로 대장정 전후 중국공산당의 핵심을 이룬 간부들을 의미한다. 중국 정치판의 금수저라고 할 수 있다. 지주, 자본가의 기득권을 무너뜨리고 정권을 장악한 공산당 간부들의 자녀가 다시 기득권 세력이 되는 것은 참 아이러니하다. 무서운 권력의 속성이다. 부모의 직간접적 정치적 지원, 부모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의 후원 등으로 태자당은 다른 어떤 그룹보다도 유리한 위치에서 정치를 시작한다. 참고로 중국어로 태자당太子党은 중국 정치 세력뿐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유명한 정치인의 2세, 3세'를 뜻하기도 한다.
공청단은 공산주의청년단의 줄임말로 공산주의청년단 출신의 인사를 말하기도 한다. 태자당, 상하이방은 공식적인 조직이 아닌 반면 공청단은 정식적인 사회단체이다. 공산주의청년단은 공산당의 전위조직으로 14세~28세의 젊은 학생들이 가입하여 활동한다. 28세가 넘으면 간부직을 맞지 않는 이상 공청단을 떠나야 한다. 정치 파벌로 공청단 소속이라고 한다면 공청단 조직 간부 정도는 한 사람을 말한다. 공청단 단원은 18세 이후 공산당 가입하여 공산당원이 되는 경우가 많다. 중학교 때부터 성적이 좋고, 품행이 훌륭하고, 리더십이 있는 학생들은 공청단 가입을 권유받는다. 태자당, 상하이방과 같이 특별한 백그라운드가 없는 젊은 엘리트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상하이방은 장쩌민 중심의 상하이 출신의 인사를 말한다. 2002년 후진타오에서 당 서기 자리를 물려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국 상무위원에 자신의 심복을 대거 심어놓음으로써 막후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장쩌민은 당 서기 자리를 후진타오에게 넘긴 2년 후에야 중앙군사위 주석 자리를 넘겨주는 등 자신의 영향력을 포기하지 않았다. 장쩌민이 심어 놓은 인물 들 때문에 후진타오가 리더십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았다는 평이 많다. 장쩌민은 상하이 출신 인사들을 대거 베이징으로 불러들여 당과, 특히 군에 많이 포진시켰다. 시진핑과 리커창이 경쟁하고 있을 때 리커창이 되면 자신의 기득권이 침해당할 것이 두려워 무난해 보이는 시진핑을 지지하여 결국 시진핑이 당 서기가 되었다는 소문이다. 결과적으로 오판이었다. 시진핑은 왕치산의 중앙기율위원회 등을 활용하여 당정군에 있었던 장쩌민의 인맥을 뿌리 뽑고 자오러지를 통해 자신의 사람을 앉혔다. 그래서 지금 상하이방은 가장 세력이 약한 파벌로 뽑힌다.
시자쥔(習家軍) : 시진핑을 중심으로 한 그룹
예전에는 태자당, 공청단, 상하이방 세 파벌을 중심으로 중국 정치를 설명했다면 현재는 시진핑과의 관련성이 점점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앞서 설명했듯이 세 파벌의 구분은 명확하지 않으며 시진핑은 태자당에 속하지만 리커창을 견제하려는 장쩌민의 후원을 받았다. 시진핑이 2007년 짧게나마 상하이시에서 근무한 경력도 상하이방의 지원에 도움이 되었다. 리커창, 왕양은 다른 백그라운드 없이 공청단 소속으로 분류된다. 리잔수는 작은할아버지가 산둥성 부성장을 하는 등 태자당으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허베이성에서 시진핑과 같이 근무하며 맺은 관계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여 순식간에 서열 3위에 올랐다 평가된다. 자오러지는 할아버지, 아버지가 시진핑의 아버지 시중쉰의 동료, 부하였고 본인도 시진핑에 충성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 시진핑 그룹으로 불린다. 자오러지가 시중쉰의 묘를 보완 및 보존하고 기념관을 지었으며, 시진핑이 하방 시 생활했던 토굴 보존 공사를 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한정은 공청단 간부를 하기는 했지만 파벌로는 장쩌민의 상하이방에 속한다. 하지만 모나지 않은 성격으로 시진핑이 상하이 당 서기였을 때 보좌한 경험이 상무위원이 되는데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평가된다. 왕후닝은 유일하게 지방정부 근무 경험이 없는 순수 학자 출신으로 중앙정치연구실 주임 역할을 한 시진핑의 책사라고 할 수 있다. 일대일로 등 시진핑의 주요 정책을 설계한 인물이다. 장쩌민, 후진타오를 거쳐 시진핑의 책사 역할까지 하면서 역대 권력의 브레인이라 불린다.
이런 방식으로 보자면 상무위원 7명 중 시진핑 본인을 제외하고 4명이 어떻게든 시진핑과의 연관성이 있다. 특정 정치적 배경이 없는 왕후닝을 포함해서 말이다. 공통분모가 없는 사람은 공청단 출신의 리커창과 왕양뿐이라 할 수 있다. 왕후닝이 들어가면서 차기 대권주자로 평가받던 후춘화(공청단)가 상무위원 진입에 실패했다. 시진핑의 권력이 점차 공고해질 것이 짐작 가능하다.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의 직함은 당직과 국가직으로 나누어진다. 모든 권력 조직에는 당 조직이 중첩적으로 존재하니 입법, 행정기관과 같이 중요한 국가기관에 당 조직이 빠질 수 없다.
우선 시진핑은 당의 일인자 총서기이자, 군의 일인자 중앙군사위 주석이다. 또한 국가조직의 일인자인 국가 주석이자, 당 중앙군사위와 동일한 국가 중앙군사위의 주석이다. 당, 국가, 군 삼관왕에 오른 절대 일인자라고 할 수 있다. 리커창은 국무원 총리이자 국무원 내 당 조직 서기이다. 행정, 주로 경제를 책임진다. 서열 2위 리잔수는 입법 기관인 전인대를 책임지고, 서열 4위 왕양은 정치 자문기구인 정치협상회의를 담당한다. 책사 왕후닝은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의 사무처이자, 집행기관인 중앙서기처를 맡아 시진핑의 머리이자 손의 역할을 한다. 자오러지는 서열 6위이지만 당 간부의 부정부채를 조사 및 감찰하는 중앙 기율검사위원회 서기를 맞는다. 그의 칼 끝이 어디를 향하느냐에 고위 간부들의 목이 달렸다. 한정은 국무원의 이인자인 부총리를 맡는다. 2022년까지 중국은 이들 7명이 주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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