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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마지막 지령: 개를 풀어 혁명을 완성하라

[방구석5분혁신.소설읽기]

[방구석5분혁신=안병민] 여기 한 딸이 있다. 그녀는 아버지의 장례식을 슬픔의 제의가 아닌, 한 판의 찬란한 혁명으로 만들 것을 '도모'한다. 예소연의 소설 '그 개와 혁명'은 영리하고 통쾌한 작품이다. 이 소설은 죽음이라는 가장 정적인 공간을 가장 역동적인 무대로 전복시킨다. 소설은 한 시대의 거대했던 이념과 언어가, 어떻게 지극히 개인적인 복수극이자 애정 표현으로 변모할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그려낸다. 단순한 가족 서사를 넘어서는 탁월한 현실 탐구다.

장례식장은 주인공 수민에게 거대한 연극 무대다. 그녀의 손에 들린 수첩은 아버지 태수씨의 '지령'이 담긴 각본이다. 수민은 상주 완장을 차고 조문객을 맞는다. 그리고 아버지의 목소리를 빌려 뜬금없고 날카로운 한마디를 던진다. 이 '지령'들은 엄숙한 공간에 균열을 낸다. 감춰진 진실을 폭로하고, 웃음과 동시에 당혹감을 자아낸다. 소설 초반에 묘사된 '데칼코마니' 병원 복도는 예측 가능한 질서를 상징한다. 하지만 수민이 벌이는 장례식은 다르다. 그곳은 어떤 논리로도 예측 불가능한, 생생한 혼돈 그 자체다.


이 혼돈의 중심에 아버지 태수 씨가 있다. 그는 화염병을 던지던 '민주85' 세대다. 동시에 딸에게는 가부장적인 질문을 던지는 모순적인 인물이다. 그는 혁명을 외쳤지만, 가사 노동은 외면했다. 노동의 가치를 논하면서도 여성혐오적 유튜브를 즐겨 봤다. 소설은 그를 미화하거나 단죄하지 않는다. 대신 거대 담론의 시대가 저문 뒤, 한 명의 생활인으로 남은 세대의 복잡한 초상을 담담히 그려낸다. 그의 혁명이 이념 투쟁이었다면, 딸의 혁명은 생활 투쟁이다. 남성에게만 허락된 상주 자리를 꿰차고, '고삼녀(고학력 30대 여성. "좋은 대학까지 나와서 고작 그런 일을 하냐"는 식의 비아냥이 담겨 있다.)'라 비아냥대는 세상에 맞선다.


'그 개와 혁명'의 진짜 매력은 무거운 주제를 블랙코미디로 풀어내는 데 있다. 과거, 엄마는 남편을 무시하던 지인의 정수리를 숟가락으로 때리며 가족의 자존심을 지킨 적이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딸 수민은 그 통쾌한 기질을 이어받는다. 그녀는 조문 온 바로 그 지인에게 다가가 '짝퉁 옷'에 대한 복수를 속삭인다. 이런 장면들은 슬픔 속에서 터져 나오는 통렬한 웃음이다. 슬픔에 대한 모독이 아니다. 오히려 "한 트럭의 미움 속에서 미미한 사랑을 발견하는" 가족만이 할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애도 방식이다. 이들은 슬픔에 잠식당하지 않는다. 고인과의 기억을 무기 삼아 삶을 긍정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마침내 서사의 정점에서 '그 개', 유자가 등장한다. 이 마지막 혁명은 주인공 수민 혼자만의 계획이 아니었다. '장례식 프로젝트'의 핵심 인물은 바로 동생 수진이었다. 체계적으로 간병을 주도하고, 언니와 함께 아버지의 '지령'을 기록하며 이 모든 것을 기획한 숨은 연출가였다. 자매가 함께 도모한 마지막 지령에 따라, 유자는 장례식장을 뒤집어 놓는다. 유자는 이념, 논리,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순수한 생명력의 상징이다. 화환을 물어뜯고 장례식장을 난장판으로 만든다. 이 모습이야말로 태수 씨가 원했던 '훼방'의 완성이자, 모든 질서를 무너뜨리는 가장 완벽한 혁명인 셈이다.


'그 개와 혁명'은 한 세대의 끝을 알린다. 동시에 다음 세대가 그 유산을 어떻게 계승하고 싸워나갈지 보여주는 명민한 선언문이다. 아버지 세대가 '천하를 이롭게 하려' 거대한 혁명을 꿈꿨다면, '고삼녀'라는 낙인 속에서 일상의 부조리를 견뎌야 하는 딸들의 투쟁은 지극히 개인적이다. 도가 철학자 양주는 말했다. "사람들마다 다 천하를 이롭게 하려 하지 않으면 천하는 다스려진다." 딸들은 세상을 구하려 들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아버지를 가장 그다운 방식으로 애도하고, 낡은 관습에 통쾌한 '훼방'을 놓으려 했을 뿐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가장 심오한 혁명이 시작된다.


거창한 이념이 아니라, 침묵하는 방 안에 개 한 마리를 풀어놓는 용기. 그리고 그 아름다운 아수라장을 보며 함께 웃어주는 것. 소설은 결국 세상을 구하는 것은 거대한 담론이 아니라, 자신의 세계를 지키려는 지극히 개인적인 행위라는 역설을 눈부시게 증명해낸다. 맞다, 이념과 명분이 아니라 '지금 여기', 실재를 살아야 한다. ⓒ혁신가이드안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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