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교명이 두레학교에서 새음학교로 변경되었습니다.
2018년 6월 새음학교 학부모 모임날이었다. 새음학교는 한 달에 한 번씩 학부모 모임을 한다. 원래 이런 건 귀찮기 마련이다. 학교에서 학부모를 저녁 시간에 부르는 건, 마치 회사 임원이 지가 퇴근 안 시켜놓고 우리 직원들 너무 운동을 안 한다며 주말에 자기랑 같이 등산을 가자고 하는 것만큼 신종 갑질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난 대학 다닐 때 이 수업이 도움이 안 된다 싶으면 수업 잘 안 들어가기로 유명했다. 1/3 이상 결석하면 F니까 숫자 관리 잘해서 항상 아슬아슬하게 비켜갔다. 그런 수업의 숙제는 당연히 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리고 한심했다. 그렇다고 좋아하는 수업을 더 열심히 한 것도 아닌데. 어쨌든 그런 대학 생활을 하다 보니, 내 학부 때와 대학원 시절 학점을 알게 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날 전보다 더 좋아했다. 이런 인간적인 녀석을 봤냐며. 삶에 자신감을 잃어가는 사람들 모두 나에게 오라. 내 학점을 듣고 육성으로 같이 한 번 웃게 해드릴 테니.
이런 DNA가 아직 남아 있을 터라, 학부모 모임이 신종 갑질이면 내가 갈 리가 없다. 부모교육 참석률을 통신표에 반영한다고 하더라도 난 안 간다. 윽, 또 구석기인 인증하는 단어가 무심코 나왔다. 통신표라. 말이 나온 김에 실과 수업도 듣고 친구들과 '앞으로 나란히'도 한 번 해보고 싶어 지네.
그런데 나의 학부모 교육 참석률은 동급 최강이다. 여기서 동급은 아버지들을 말한다. 평일 저녁 7시라 참석하기 힘든 분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난 아이유가 같이 노래방을 가자고 하는 정도의 중요한 선약이 아니면 무조건 학부모 교육에 참석한다. 처음에는 와이프가 다른 아빠들 다 온다고 해서 나가기 시작했는데, 몇 번 간 후 깨달았다. 뻥이었다. 한 반 12명 정도 중 2~3명의 아버지들만 참석했다. 그런데 요즘은 와이프가 가자는 말을 안 해도 내가 알아서 간다. 이 시간이 정말 좋기 때문이다. 할렐루야.
학부모 교육은 다양한 형태로 진행된다. 교육에 도움이 되는 좋은 강연도 듣고, 책을 한 권 읽어와서 이야기도 나누고, 아이들의 수업을 참관하기도 한다. 12학년까지 전체 학부모가 모이기도 하고, 반별로 모이기도 한다. 학부모 교육과는 별개지만 한 학년 전체 학부모들과 아이들이 등산을 가기도 하고 캠핑을 떠나기도 한다. 그만큼 사이가 좋다. 난 나름 샤이하여 캠핑급의 엑스트라 활동은 아직 안 하는 편이지만, 학부모 모임만큼은 열성 어머니들만큼 출석률이 좋은 편이다.
이번 달은 특이하게 학부모들이 학생으로 돌아가 직접 수업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아이들이 배우는 수업을 그대로 들어봄으로써 두레학교의 교육을 직접 경험해보는 시간이었다. 수업 리스트가 공개되었고, 학부모들은 직접 듣고 싶은 수업을 선택했다. 이것도 나름 수강신청이 치열해서 조금 늦게 들어갔더니 듣고 싶은 수업들은 이미 정원 초과였다. 결국 난 중학교 화학 수업과 초등 6학년 수학 수업을 신청했다.
내가 학창 시절 가장 싫어하던 화학, 그리고 재미없는 과목을 선정한다면 전세계인들을 뭉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수학이라니. 하지만 이런 수업마저 재미있었다.
원래 화학은 주기율표부터 달달 외운 후 CaCl2 같은 결합식을 배우고 각각의 성질들을 외우는 것이 너무 재미없었다. 산소 원자 하나랑 수소 원자 두 개로 물 분자가 구성되는 건 감동적이지도 않았고 궁금하지도 않았다. 전문용어로 안물안궁. 괜히 자전축이 23.5도 기울어져 공부해야할 것들이 많아진 지구과학도 싫어했지만, 단연 화학을 제일 싫어했다.
그런데 새음학교 수업은 달랐다. 이름을 모르는 물질 네 가지를 받아서 조원들끼리 성질을 찾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색깔도 보고, 쪼개도 보고, 물에도 넣어보고, 불도 붙여보고. 용감한 어머니 한 분은 맛까지 보셨는데, 선생님께서 맛은 보면 안 된다고 하시면서도 119를 부르지 않을걸 보면 청산가리류는 아닌 듯했다. 그러면서 조별로 물질에 대해 발견한 특성들을 발표한 후 정리했다. 대부분 비슷한 결과물들이 나왔다. 그 과정이 끝나고 나니 선생님께서 어떤 물질인지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 물질들의 성질은 우리가 이미 발견한 내용들로 모두 설명이 가능했다. 주기율표를 1족, 2족 등으로 나눈 이유와 각 족들의 성질 등. 그리고 학교에서 실험하기 힘든 내용들은 유튜브로 추가로 보여주셨다. 아, 화학이 원래 재미있는 과목이었구나.
두 번째 시간은 초등 6학년 수학이었다. 원주율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원주율, 원주의 길이와 지름의 비율, 3.141592를 못 외우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두레 수업에서는 원주율을 먼저 가르쳐주지 않고 직접 찾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선행학습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수업이었다.
모두가 고대 수학자가 되어 보기로 했다. 그래서 직접 길이를 재 보았다. 훌라후프, 컵, 냄비, 시계 등 주변의 동그란 물체를 찾아서 끈으로 둘레의 길이를 재고 지름을 어렴풋하게 재보았다. 길이를 재는 방법도 조별로 다양하게 나왔는데, 이 과정 속에서부터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그리고 원의 둘레와 지름을 칠판에 쭈욱 써놓고 나눠 보았다. 3.25 ~ 3.2 ~ 3.1 ~ 3.15 등 실험을 계속할수록 숫자들이 우리가 아는 원주율과 비슷해졌다. 이런 재미있는 참여 시간을 거친 후, 수업이 끝날 때 그 유명한 3.141592를 알려주었다. 원주율 값을 외우는 것이 중요한게 아니라, 고대 수학자들이 이 숫자를 알기 위해 어떻게 접근을 했는지 경험을 해보며, 원주율은 단순히 3.14가 아니라 원의 둘레와 지름의 비율이라는 개념 자체를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중등 화학이건 초등 수학이건, 두레의 교육은 원리와 개념부터 충실하게 가르친다. 그리고 개념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개념을 익힌 후에는 응용문제들을 최대한 많이 풀어본다. 그래서 새음학교의 숙제는 조금 많은 편이다. 그래도 다른 학원을 다니지 않기도 하고, 매일 일과가 끝나고 마지막 시간은 숙제를 하는 시간을 학교에서 부여해주기 때문에 집에서 숙제했냐며 소리 칠 일이 없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수업을 참관한 학부모들의 반응도 한결같았다. 우리 아이들 참 좋은 교육을 받고 있구나.
원래도 알고 있었지만 직접 학생이 되어 보니 이런 교육을 받고 있는 아이들이 부러웠다. 나도 학창 시절에 과학을 이렇게 재미있게 배웠으면, 지금쯤 나사 칠판에 달 궤도 공식을 적고 있진 않을까. NASA 사무실 칠판에 무언가를 그리고 있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멋있었다. 뭘 그리고 있을까. 자세히 보니 야근하며 피자 누가 쏠 건지 사다리를 그리고 있었다. 뭔들. NASA 칠판인데 어떠리.
뿌듯한 마음으로 교실을 나오는데, 한 학부모께서 말을 걸어왔다.
"혹시 지우 아버지 아니세요?"
"네... 맞는데요..."
"아, 맞구나. 저희 아이가 얼마 전 중도 입학을 했거든요. 올리신 글을 보고 중도 입학을 결심했어요."
와우, 이렇게 감사한 일이.
내 글을 보고 이 중요한 의사결정을? 물론 큰 결정을 한 후 마지막 실행 버튼을 누르기 전에 내 글을 보고 마음의 위안을 얻으셨을 정도겠지. 그래도 자식 교육이라는 이 중요한 의사결정에 조금이나마 영향을 끼쳤다니 감사할 따름이다.
만약 내가 새음학교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면, 이런 인사가 오히려 부담스러웠을 것 같다. 한 아이와 그 가정에 교육만큼 중요한 이슈도 없을 텐데, 내가 뭐라고 글 몇 줄로 그런 영향력을 미쳐도 되나? 그런데 나의 대답은 "정말 잘 결정하셨습니다."였다. 나에겐 아이를 4년째 보내면서 학교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그래서 인사를 받았을 때 너무 뿌듯했다. 내가 처음 대안학교 대안 아빠 글을 쓸 때의 목표가 '단 한 가정이라도 내 글로 인해 두레 학교로 오는 아이를 만들자'였다. 그렇게라도 학교로부터 우리 가족이 얻은 것들을 보답하고 싶었다.
며칠 전에 '대안학교 대안아빠 #10' 글에 댓글이 하나 올라왔다. 지우가 여전히 학교에 다니고 있냐고, 글이 끊겨서 불안하다고. 아, 그럴 수도 있겠다. 기독교 대안학교를 보낼지 말지 고민하는 부모님들을 새음으로 안내하기 위한 글이었는데, 거의 1년째 글이 끊겼으니. 4년쯤 보내니 기독교 대안 학교의 문제점들이 나타나서 대안 교육을 포기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 다시 '대안학교 대안 아빠' 글을 이어가기로 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지우는 현재 4학년을 아주 잘 다니고 있으며, 우리 가족들의 학교에 대한 만족도는 해가 거듭될수록 커져가고 있다. 둘째 지아가 6살인데 내후년에 당연히 새음학교에 보낼 계획이다. 그것만으로도 많은 것들이 설명될 것 같다. 첫째를 보낼 때는 이전 글들에도 밝혔다시피 많은 고민들이 있었는데, 지금 둘째는 다른 옵션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극단적인 예로 하늘에서 20억 원이 툭 떨어져서 나에게 강남의 아파트 한 채가 생긴다고 해도, 새음 학교 때문에 강남으로 가지 않고 계속 남양주 - 구리 근처에서 살 생각이다. 새음 학교는 우리 가족에게, 그리고 다른 새음 아이들의 가족들에게 그런 곳이다.
사족) 그래도 20억이 툭 떨어지면 좋긴 할 것 같다. 이사만 안 간다는 말이지, 주시면 기쁘게 받겠습니다.
사족2) 제가 그동안 '대안학교 대안교육' 글이 뜸했던 이유는, 부끄럽지만 책이 한 권 나왔습니다. '하와이 패밀리'라는 여행 에세이입니다. 지은이가 손창우인데, 제 이름은 김창우가 아니라 손창우 맞습니다. 혹시 대안 학교를 보내고 있는 부모와 아이의 모습이 궁금하시다면 참고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네, 대놓고 광고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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