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ember 2022
(커버 이미지 : Idaho의 주도, 즉 State Capital인 Boise 공항의 웰컴 사인. Potato State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Idaho는 미국 전체 감자의 30%를 넘게 생산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뉴욕시티(NYC)로 표기하지 않은 "뉴욕"은 뉴욕 주(NYS)를 의미하며 대도시가 아닌 교외지역입니다.
영원히 볼 수 없다고 생각했던, 미국으로 떠나버린 나의 "MC형님"
나는 대학을 졸업한 후, 30년 가까이 살던 고향을 떠나 다른 지역의 대학원에 진학했다. 운 좋게 합격한 연구실에서 맞게 된 첫 미팅 날, 교수님은 나를 나보다 3살 많은 명찬이 형과 짝을 지어 주었다. 소위 나의 ‘사수’가 된 명찬이 형은 말수는 적지만 아는 것이 많았고, 때때로 뜬금없이 던지는 한 마디가 재치 있는, 그래서 연구실 선배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사람이었다.
연구실 사람들은 그가 이메일 서명으로 쓰는 이름 이니셜 대로 ‘MC형님’이라고 부르곤 했다. 나의 대학원 생활 내내 MC형님은 연구에서는 선생님이자, 일상에서는 친형과 다름없는 존재였다. 다른 학교, 다른 지역에서 온 나는 누구보다도 MC 형님을 의지하며 지냈다.
시간이 흘러 MC형님이, 당연히 나보다 먼저, 대학원을 졸업하고, 공부를 더 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나기로 결정했다고 알려주었다. 그가 갖고 있는 능력을 생각하면 유학은 당연한 선택일 수도 있었는데, 나는 후배로써 크게 축하해 주어야 할 순간이었음에도 웃으며 보낼 수가 없었다. 그가 없는 내가 어떻게 될지 걱정되었고, 그렇게 의지했던 MC형님을 두 번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될까 봐... MC형님도 나만큼 아쉬웠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렇게 우리는 기약 없이 헤어지게 됐다.
내 생각과 달리, 같은 분야에서 연구를 하는 그와의 인연은 다행히 완전히 끊어지지는 않았다. 논문 발표를 하러 갔던 해외 학회에서 잠시 본 적도 있었고, 어쩌다 그가 한국에 올 때면 잠깐이라도 만날 수 있었다. 스마트폰도 카톡도 없던 그 시절엔 그렇게라도 접하게 되는 소식과 인연의 이어짐은 매우 소중한 것이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 나도 대학원을 졸업하게 되고 결혼을 하고 회사 생활을 시작하게 되면서, 그와의 거리는 조금씩 멀어지게 되었다. 그 역시 미국에서 가정을 꾸려서 정착하며 살아갔고 언젠가부터 그가 한국에 온다는 소식은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어린 시절 인연이 어른이 되어 뿔뿔이 흩어지고 끝내 헤어지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때로는 선생님, 때로는 선배, 친구가 되어준 MC형님을 언젠가는 다시 만나고 싶다는 마음은 남아 있었다. 그러면서도 이젠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었다.
그런데... 나에게 미국에 무려 2년이나 머물게 될 기회가 왔으니 MC형님을 떠올리게 된 건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나는 MC형님에게 미국으로 가게 된 소식을 전하고 어디에 살고 계신지 주소도 받았다. 보이지 아이다호(Boise, Idaho)라고 한다. 지도에서 찾아보니 내가 가게 될 Albany, NY에선 꽤나 먼 곳 같다. 하지만 미국에 있는 동안, 반드시 그를 만나리라. 당연히 그래야지. 그런 생각으로 나는 미국으로 향했다.
그런데 막상 미국에 와서 보이지를 가려고 찾아보니 한국에서 막연히 생각하던 것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한국에선, 이렇게 미국에 가면 미국에 있는 친구는 쉽게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 글은 그 쉽지 않은 만남의 여정을 기록한 이야기다.
미국 동부 사람이 서부에 사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가야 하는 길
내가 미국에 와서 서부 소도시로의 여행이 굉장히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후, MC형님과 이메일로는 가끔 연락하며 지내긴 했다. 그런 사정이야 서로 알고 있는 것이라 막연히 '다음에 봐요' 정도로만 인사하며 몇 달을 지냈었다. 그러다 미국에 온 지 1년이 되었을 때쯤, 그제야 MC형님을 직접 만나봐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누군가 먼저 움직여야 한다면 이제껏 도움 받았던 내가 먼저 가야지.
형님을 만나면, 내가 이제껏 헤쳐왔던 가짜 이민자로서의 삶을 이야기하고 싶기도 하고 MC형님의 진짜 이민자 얘기도 듣고 싶다. 그리고 어쩌면 나 역시 주재원 생활을 마치고 진짜 이민자가 되어 미국에 아예 살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내가 잘하고 있는지', '어떻게 하면 진정한 이직/정착이 가능할지'도 물어보고 싶다.
뉴욕에서 아이다호까지 가는 방법을 실제로 계획해 보니 역시나 간단하지 않다. 미국 항공 교통편은 대도시 위주로 짜여있기 때문에 대형 공항이 없는 내가 사는 곳, 'Albany, NY'나 형님이 사는 곳, 'Boise, ID'를 직접 연결하는 노선은 당연히 없어서 시간과 비용을 적잖이 들여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어쨌든 휴가 사용을 최소화하면서 하루 이내의 이동 시간이 드는 노선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 가는 편 : 뉴욕 Albany에서 금요일 오후 2시에 출발 -> 미시간 Detroit 1차 경유 -> 유타 Salt Lake City에서 2차 경유 -> 최종 아이다호 Boise에 밤 12시 넘어서 도착 (뉴욕 시간 오전 2시)
- 오는 편 : 아이다호 Boise에서 낮에 출발 -> 조지아 Atlanta 경유 -> 뉴욕 Albany 밤에 도착
두 도시 간 거리는 3,450km, 한국 서울에서 베트남 호찌민 정도 거리쯤 되고 시차도 2시간이나 난다. 거리가 먼 것만이 아니라 비행기를 세 번이나 갈아타야 하니 미국 국내 여행이지만 웬만한 해외여행 급이다. 다행히도 평일 낮 출발의 왕복 $500 정도 저렴한 티켓을 구하긴 했지만 그 때문에 오후 반차를 써야 하는 작은 아쉬움이 있다. 아내와 세은이를 집에 두고 나 혼자만 가는 것인데도 비행기, 호텔, 렌터카 비용이 적지 않은 데다, 연차와 주말을 통으로 써야 하는 것도 좀 부담은 된다. 이쯤 되니 이렇게까지 하는 게 맞나 싶기도 하다.
오직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먼 길을 가요, "Because he's my friend, brother and guru."
일정이 정해지고 모든 준비를 다 마쳤고 MC 형님과 약속까지 정했으니 이제는 정말 가기만 하면 된다. 이번 여행에 관광은 전혀 없고 오로지 MC형님과의 만남, 그것도 단 하루의 만남을 위한 것이다. 내가 지금껏 살면서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이렇게까지 해 본 적이 있던가? 음... 40 중반 넘도록 그래 본 적은 없긴 하다. 그렇다면 이번 기회에 이렇게 해보는 게 맞겠다는 생각도 든다. 더 늙으면 힘이 없어서 못한다. 그리고 한국 가면 여기는 다시 못 온다. 그러니 이번에 가서 돈도 많이 쓰고 시간도 많이 쓰자. 형님과의 추억을 만나러 가자. 이렇게 까지 해서라도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마음이 나에게 있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니까.
내 생각을 들은 아내도 그게 좋겠다며 떠난 사이 세은이와 집은 걱정 말라고 힘을 보태주었다. 그러면서 환하게 웃는 얼굴은 남편 없이 홀로 지내는 것이 좋아서였을 수도 있겠지만... 뭐든 어떠랴.
내가 'Boise에 가서 친구 만나고 바로 돌아올 거예요'라고 하니 회사 미국 동료들도, 옆집 Mark도, Owen도 이건 미친 여행이란다. 그러면서 다들 하나같이 누구를 만나길래 그 먼 곳을 혼자 가냐고 묻는다.
'그는 나의 친구이자 형님이고 선생님이에요. 내가 미국에 왔으니 그를 만나러 가야 해요.'
떠나는 날이다. 오전 근무만 하고 바로 공항에 가야 해서 배낭 하나에 모든 짐을 챙겨서 출근을 했다. 디트로이트나 솔트레이크에서의 경유시간이 충분하지 않기도 하고 혼자 가는데 많은 짐은 필요 없었다. 동부 시간으로 오후 2시 뉴욕 알바니를 출발해서, 다행히 아무 탈 없이 미시간 디트로이트에 내렸고, 밤이 되어 유타 솔트레이크에 도착했다. 이렇게 경유 대기 시간이 짧은 경우 부치는 짐이 없다는 건 정말 유용했다.
마운틴 시간(EST 대비 +2h) 밤 12시가 넘어서 최종 목적지인 아이다호 보이지에 도착했다. 이동 시간만 무려 12시간이었다. 긴 이동에 몸이 피곤할까 봐 공항에서 멀지 않은 곳에 호텔을 미리 예약했는데, 역시 내 예상대로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긴장이 풀리면서 침대에 쓰러지듯 엎어졌다.
'이 형 만나려고 내가 여기까지 이러고 왔어. 정말 미쳤나 봐.' 혼자 웃음이 나왔다.
드디어 만난 나의 MC형님 그리고 조용하고 작은 도시 Boise
다음날 점심이 다 되어 호텔로 MC형님이 나를 보러 찾아왔다. 다소 변한 모습이지만 여전한 그의 웃음을 보았고 몇 년 인지도 모를 기다림 끝에 나는 그를 꽉 안아줄 수 있었다.
나는 그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았다. 내가 그동안 한국에서 살아온 이야기만이 아니라, 미국에 와서 가짜 이민자로 살아남기 위해 해야 했던 일들을 진짜 이민자인 그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우리는 호텔방으로 돌아가서 내가 미리 준비한 미국 생활 PPT(여행기, 1년 결산 등)를 보면서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눴다.
자료를 다 보고 난 뒤, 그는 내가 이뤄낸 것은 너무도 틀림없이, 1년 차 이민자가 해낸 것이라고 볼 수 없는 대단한 성과라고 말해주었다. 특히 미국 이웃들과 대인관계를 쌓은 건 요즘 세상엔 존재하지 않는 동화 같은 얘기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만약 가짜 이민자가 아니라 진짜 이민자가 되어 미국에 돌아오겠다면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여기서 이렇게 까지 해 놓고, 이걸 다 놓고 한국에 빈손으로 돌아가지 말아"
나는 20여 년 전 연구실 석사 신입 때처럼 그에게 이런 식의 칭찬을 듣게 되어 참으로 기뻤다. 호텔방에서 그렇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형님에게 잔뜩 쏟아낸 뒤 우리는 Boise 시내 구경을 나섰다.
MC 형님은 보이지 시내엔 잘 나와보지 않아서 아는 게 많지 않다고 했다. 그렇다. 그의 말은 진실이었을 것이다. 뉴욕 알바니에서의 삶도 그러했듯, 이민자들은 자기 동네를 일부러 챙겨서 공부하려고 특별히 노력하지 않으면 정보를 얻기엔 쉽지 않은 게 당연하다. 어쩌면 그만큼 형님이 보이지에서 여유 없이 살았다는 걸 방증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기에 더욱 나는 그와 함께 시내에 가 보고 싶었다.
아이다호 주 청사 주변인 보이지 다운타운은 여느 미국 도시답게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가득하다. 이 작은 도시의 최대 쇼핑몰 거리임에 틀림없을 Grove Plaza에는 한국식 컵밥 식당이 있어서 놀랍기도 했다. (여기는 한인이 그리 많지 않은 곳으로 가장 가까운 한인마트는 6시간이나 떨어져 있다.) 산책할 겸 찾은 보이지 주립대학 캠퍼스는 강변 공원이 있어서 산책하기 좋았다. 고도가 높고 비가 많지 않아서 큰 나무가 별로 없는 곳인데 강가는 숲이 우거진 게 약간 동부 느낌도 난다.
저녁 먹기 전에, 나는 MC 형님에게 보통 사람들이 사는 곳을 데려다 달라고 했다. 내가 MC형님만을 보러 여기까지 온 건 맞는데 여기는 동종 업계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이니 부동산 임장을 온 것이기도 하다고 하니, 형님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혹시 아는가 여기로 이직하게 될지. "그래 가보자. 너답다."
MC형님이 데려간 곳은 중산층 사람들이 많이 산다는 East Boise의 Barber Valley라는 곳이다. 시내에서는 조금 떨어진 곳으로, 지대 높은 산에 둘러싸여 큰 나무는 없고 다닥다닥 붙은 집들은 앞마당이 작다. 넓은 마당과 큰 나무가 많은 내가 사는 뉴욕 알바니와 크게 비교되는 모습이다. Zillow를 통해 보니 놀랍게도 우리 동네와 집 값 차이가 크지 않아서 외딴곳 소도시 치고는 물가가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건 이유가 있었다. 글 말미에 설명)
혹시 모를 이직을 대비한 임장(?)까지 마치고 나서, 형님 사는 동네(Meridian, ID) 근처에 있는 태국 식당에서 저녁을 함께 했다. 우리는 함께 식사하며 억울한 이민자 신세, 오늘의 추억과 지난 시간에 대한 회상으로 하루뿐인 시간이 어느덧 다 지났음을 아쉬워했다. 이제 몇 시간 뒤면 다시 헤어져 또다시 언제 만날지 기약할 수 없다. 아쉬움이 많다. 그래도 가야 한다. 우리는 각자 가야 하는 길이 있다.
식사 중에 들을 수 있었던 형님의 적응기는 '진짜 이민'은 결코 만만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갖게 해 주었다. 나 혼자 잘하기도 어려운데 가족을 짊어지고 하려면 어려움은 더욱 크게 된다. 형님은 그 모든 걸 감수하고 이제는 나름대로 만족하며 지내신다 하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고 나에게도 희망이 보이는 것 같다.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기 직전인 내년 봄쯤에는 진짜 이민을 도전할지, 한국에서 살아갈지 마음의 결정을 하겠다고 했다. 그때까지는 최선을 다해 미국 사람으로 살아보고 마지막 순간에 돌아보고 싶다고...
식사를 마치고 내가 여기까지 왔으니 식사비도 내고 싶다고 하자 MC형님은 손사래를 치며,
"네가 날 보러 여기까지 왔는데, 내가 밥조차 사주지 않는다면 얼마나 서운할 일이냐. 너 온다고 해서 그 꼴 보기 싫은 골프 치는 사람들 모임 안 가게 해준 것도 참 고마운 일인데."
모든 걸 다 버리고 이민 온 사람들이 겪는 외로움. 너무나 넓은 곳이라 누군가를 만나러 가기에 쉽지 않은 미국 땅. 그렇기 때문에 가족 때문에라도 어쩔 수 없이 참석하는 한인 커뮤니티. 말하지 않아도 다 이해가 된다.
평소 불편함을 숨기고 억지로 나가던 모임을 빠지면서 '뉴욕 사는 후배가 날 보러 온대서 이번 주는 안돼.'라는 핑계를 댔을 때 MC 형님이 어떤 표정이었을 지도 상상이 된다. 그 먼 곳에서 누군가 나를 보러 돈과 시간을 써서 왔다는 것. 그걸 자랑하는 우쭐함.
내가 MC 형님에게 자랑거리가 되었다는 것도 기쁜 일이고 내가 형님에게 그 정도의 사람이라는 것은 오히려 나에게 큰 자부심이다. 좌충우돌 이민자인 우리 서로에게 이번 만남이 좋은 추억으로 남았음을 확신한다. 결국 이날 저녁은 형님이 샀다.
아쉽지만, 비행기를 세 번 타고 찾아와 성사된 우리의 만남은 끝이 나고 언제가 될지 모르는 그 '언젠가'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마침내' 헤어졌다.
짧은 만남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
MC 형님을 만나기 위해 12시간 걸려서 온 Boise, 그 이유가 아니었다면 이 작고 아담한 도시에 올 일은 없었겠지. 아쉽지만 오늘은 뉴욕으로 돌아가야 한다.
비행기는 오후 출발이라 아침에 약간의 시간이 있다. 호텔을 나와 공항으로 가기 전, 보이지의 랜드마크, 오래된 기차역인 보이지 디포(Boise Depot)에 잠깐 들렀다. 단순 기차역이 아니라 철도 박물관도 겸하는 보이지 역 입구엔 간단한 역사 설명이 적혀있다. 설명을 다 보지 않아도, 해발 840미터인 이 고지대(한국으로 치면 태백시 정도)에 기차역을 세우는 건 얼마나 고된 공사였을지 짐작이 된다. 역 내에 전시된 오래된 사진들, 야외에 전시된 증기 기관차가 그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100년 전에 기차역을 지어야 할 정도였으니 보이지가 나름대로 교통의 요지이긴 했나 보다.
큰 종이 있는 역 바로 옆 높은 시계탑은 무료 전망대가 되어 가족 단위 방문객이 찾고 있다. 전망대에 오르면 보이지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보이지는 한 주의 주도인데도 다운타운이 꽤나 아담하다. 이곳에서 몇 장의 사진을 남기는 것으로 나의 보이지 방문을 완전히 마쳤다. 다시 차를 타고 시내를 벗어나 공항으로 향한다.
보이지 공항에 도착해 MC 형님과 작별의 통화를 나누고 다시 뉴욕행 비행기를 탄다. 돌아가는 길은 비행기 두 번의 여정이라 올 때보다는 조금 수월하지만 어쨌든 시차 2시간을 건너 결국 밤늦게까지 이동하는 길이다.
다시 Albany 집에 돌아오니, 주재원 생활 마지막 겨울을 장식하는 듯 눈이 잔뜩 쌓여있었다. 아내는 나 없는 사이 헤이니네 가족을 우리 집에 불러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한다. 결국 모두에게 행복한 주말이었다.
나에게도, MC형님에게도. 의미 있는 시간이었던 지난 주말을 오래 기억해야겠다.
언젠가 또다시 만나게 될 날을 기대하며. 형님 잘 지내요.
Fondly,
C. Parker
Boise, Idaho 임장 결과 보고
Albany, NY와 Boise, Idaho를 비교해 보니 미국에선 지역적 차이가 생활 전반에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아주 확실히 실감했다.
- 집값과 세금 : 우선 가장 놀랐던 부분은 집값이다. 뉴욕주, 그것도 뉴욕시티나 보스턴 같은 대도시권에서 아주 멀지는 않은 Albany와 시골 이미지인 Idaho의 소도시 Boise(+Meridian)의 집값이 Boise 쪽이 오히려 약간 비싼 편이었다는 것은 언뜻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유를 찾아보니, Idaho는 세금 부담이 전체적으로 낮아서 부동산 가격은 상대적으로 높게 형성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주마다 세율과 행정 조세가 크게 달라서 정확한 셈은 어렵지만, 이런 경우 집값과 세금의 우열은 합산하면 상쇄되니, 세은이 정도의 초등학생 아이가 있는 가정이라면 전체 지출 관점에선 Albany와 Boise는 아마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주택의 형태 : 같은 규모의 집이라도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대지(lot, 주택+마당)의 크기 차이가 있었다. Albany 교외의 마당 면적은 Boise의 비슷한 주택 면적으로 비교하면 약 50% 이상 더 넓다. 이는 단순한 경제 또는 도시계획 차이라기보다는 Boise의 물 부족으로 인해 넓은 잔디 마당을 유지하기 어려운 환경 때문이다. 강우량이 많은 Albany에서는 넓은 마당이 자연스럽지만, 건조한 Boise에서는 물을 지속적으로 공급하기 어려우니 넓은 잔디밭은 비효율적이다.
두 곳 다 겨울이 춥고 눈이 오는 기후여서 지하실과 높은 지붕을 갖는 집들이 대부분이다. 5대호에서 멀지 않은 Albany는 추운 데다 눈도 많이 오지만 Boise는 그 정도는 아니라고 한다.
- 날씨와 기후 : Albany가 울창한 숲, 사계절 내내 충분한 비, 긴 겨울에 많은 눈 등 대표적인 동부 기후라면, Boise는 고지대의 분지 지형이어서 강우량이 적으며 큰 나무는 많지 않고 건조한 평원으로 된 지역이다.
이런 환경 차이는 농산물에서도 드러난다. Albany를 위시한 뉴욕의 북부는 사과로 유명하고 그 외 다양한 밭작물의 생산이 많은 반면, Boise는 “미국 감자의 고향”이라는 이미지에 걸맞게 감자 생산이 압도적으로 많다. 지역 기후와 토양 특성이 만드는 전형적인 차이다. 아마도 이러한 기후 또는 농사 환경 차이가 아이들의 야외 활동에도 영향을 줄 것 같았다. Albany에선 사과 따기나 다양한 밭농사 체험 등을 할 수 있었는데 Boise에서는 어떤 게 있을지, 아이들은 어떤 것을 보고 자라는지 궁금했다.
- 교육 및 직장 : 돈이 많은 New York은 주 전체적으로 공교육 재정이 탄탄하고 외국인 학생 수도 많다. 그래서인지 공립학교에서도 외국 학생에 대한 영어 교육 프로그램이 일정 수준의 체계를 갖췄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Idaho는 그에 비하면 아무래도 돈이나 학생 수가 부족할 테니 New York 수준으로 '주 차원'으로 뭔가를 기대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하지만 Boise 주변은 대기업에 다니는 높은 수입의 사람들이 많으니 동네에 특화된 수준 높은 교육 프로그램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
미국에선 직장을 구할 때 주별 특성 및 생활비를 고려한(COLA, Cost-Of-Living Adjustment) 급여계약을 하게 되는데 Idaho에 비해 New York은 세금(소득세, 재산세, 학교세)도 많이 내고 훨씬 소비적인 곳이라서 동일 조건이라면 임금이 높은 편이다. Albany 쪽이 수입이 많더라도 지출 역시 많은 것이니,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비슷한 수준으로 삶을 유지하는데 드는 실질 구매력은 미국 어디나 비슷하다고 가정하고 구직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이번 임장을 통해...
두 도시 모두 나름의 장단점이 있고, 환경과 기후, 도시 정책, 생활방식까지 비교해 보면 엇비슷하고 우열을 가리기 어려워 보이는 게 꽤 흥미로운 것 같다. 큰 틀에서 보면 가족 단위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총비용이 결국 비슷하고, 지리적 조건이 일상에 영향을 꽤나 크게 준다는 것도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이었다.
두 곳 중에 굳이 고르라면... 나는 Albany에 한 표를 주고 싶다. 다른 모든 것을 떠나 Owen/Jean, Mark/Sarah 같은 사람들이 있는 동네 커뮤니티의 가치가 계산으로 따질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