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대신 다른 언어가 필요해졌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선택한 기록의 방식

by 산다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해서
모든 날이 단단했던 건 아니다.


몸은 앞으로 가고 있었지만
마음은 자주 제자리로 돌아왔다.

어느 날은 이유도 없이 불안이 치밀어 올라
펑펑 울기도 했다.


잘 먹지도 않던 가공식품으로 끼니를 때운 날도 있었고,
정신은 붙잡고 있었지만 몸은 이미 지쳐 있던 순간도 있었다.


나는 무너지지 않기 위해 움직였지만, 그 과정에서
완전히 무너지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 사실을 부정하지 않기로 했다.


말은 여전히 어려웠다.
설명은 늘 오해로 돌아왔고,
대화는 구조를 바꾸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말 대신 다른 언어를 찾기 시작했다.

마침 낮에 일하던 식당이 장기 휴무에 들어가면서
낮 시간에 공백이 생겼다.

나는 그 시간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기록에 쓰기로 했다.


글을 썼다.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한 문장이 아니라,

내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
내가 나에게 확인하는 문장들이었다.


말로는 다 담기지 않는 감정들이 문장 사이에 남아 있었고,
그 여백을 그대로 두고 싶어졌다.


그러다 보니 기록은 글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들이 어느 순간부터는
소리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리듬과 음 사이에서는 굳이 정리하지 않아도
감정이 그대로 머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는 이유를 묻지 않아도 되었고,
표정을 관리하지 않아도 되었고,
다정함을 증명할 필요도 없었다.


창작은 해결책이 아니었다.
불안을 없애주지도 않았고,
현실을 가볍게 만들지도 않았다.


하지만 숨을 쉬게는 해주었다.
막막한 하루 속에서도 나를 잠시 밖으로 꺼내
다른 위치에 세워주는 시간.


그 시간 덕분에 나는 다시 하루를 견딜 수 있었다.

글과 소리는 내가 괜찮다는 증명이 아니라,
아직 버티고 있다는 신호였다.


그리고 그 신호를 나는 나 자신에게
먼저 보내고 싶었다.


나는 지금도 완전히 안정되지 않았다.
불안은 여전히 오고, 눈물은 가끔 예고 없이 쏟아진다.


그럼에도 나는 안다.

말이 닿지 않는 자리에서 다른 언어를 찾았다는 것,
그 선택 하나만으로도 나는 이미

이전과는 다른 위치에 와 있다는 걸.


이 기록은 치유의 완성이 아니라,
치유를 가능하게 만든 통로다.




*이 글은 한 집에 살면서 각자 살게 되었던 시간들을 기록한 연재의 일부입니다

앞선 이야기들은 아래에서 이어서 읽을 수 있습니다.

https://brunch.co.kr/@dudal1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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