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지금은 말을 아낀다
나는 한때 말을 다루던 사람이었다.
언어치료사로 일하며 아이들이 말을 할 수 있도록 돕고,
그 말을 통해 사람과 사람이 다시 소통할 수 있게 만드는 일을 했다.
말은 나의 도구였고, 설명은 나의 방식이었다.
말하면 닿을 거라 믿었고, 잘 고른 단어는
상황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말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설명은 충분했지만 구조는 바뀌지 않았고,
말은 반복될수록 점점 가벼워졌다.
그때부터 나는 말을 덜 하기 시작했다.
포기해서가 아니라, 말이 아닌 기준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이 모든 변화는 대단한 결심에서 시작된 게 아니었다.
돈이 끊겼고, 생활은 불안정해졌고,
나는 그때그때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붙잡았을 뿐이다.
식당에서 일했고, 경매를 공부했고, 온라인 판매를 했고, 글을 썼고,
말이 닿지 않는 감정은 소리로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있던 게 아니라,
멈추지 않을 방법을 찾고 있었을 뿐이다.
남편에게도 그 나름의 사정은 있었다.
각자의 방식으로 버티고 있었고,
그 선택들이 항상 같은 방향을 향하지는 못했을 뿐이다.
남편이 야간 일을 시작하면서 우리는 함께 있는 시간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내가 퇴근하면 그는 출근했고,
그가 아침에 돌아올 와 잠에 들면
나는 또 혼자가 되어 있었다.
그가 일어날 때 쯤 나는 또 출근을 했다.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말없이 버티던 시간보다,
차라리 이렇게 시간이 서로 어긋나기 시작하자
집 안에 남아 있던 어색한 공기는 조금씩 옅어졌다.
눈에서 멀어지니 마음도 함께 가벼워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남편에 대한 원망도, 미움도
이전만큼 날카롭지 않게 느껴졌다.
이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살다 보면
다시 좋아질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나는 그 가능성을 굳이 서둘러 결론 내리지 않는다.
이 글은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한 기록이 아니다.
누가 옳았는지를 가리기 위한 이야기도 아니다.
다만 한 사람이 자기 삶의 기준을 다시 세우기까지의 과정이다.
나는 아직 완전히 안정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분명해진 게 하나 있다.
나는 더 이상 설명으로 버티지 않고,
선을 그을 줄 안다.
말로 소통을 돕던 사람이 말을 아끼게 되었다는 사실은
어쩌면 아이러니일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나에게 그 침묵은
후퇴가 아니라 선택이다.
이 시리즈는 문제를 해결한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
관계를 정리한 기록도 아니다.
다만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조용히 정한 사람의 이야기다.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엎드려 있지는 않은 상태.
나는 오늘도 그 자리에서 앞으로 간다.
*이 글은 한 집에 살면서 각자 살게 되었던 시간들을 기록한 연재의 일부입니다
앞선 이야기들은 아래에서 이어서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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