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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하당 Jun 13. 2022

옛 기와 이야기

바닥면을 이루는 넓은 기와를 암키와, 그 위에 올라앉은 작은 기와를 수키와라 한다. 지붕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인 방수의 대부분을 전자가 담당하는 동안 후자는 그 위에서 하는 일 없이 멋만 내고 있는 모양새인데, 가만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암키와 사이의 틈을 막아주는 것도, 외부로부터의 충격이나 와공(瓦工)들의 무게를 오롯이 받아내는 것도, 그 와중에 아름다운 곡선을 그려내야 하는 것도 모두 수키와의 몫이니 말이다. 비록 수키와가 조명을 조금 더 받기는 하지만, 이 둘은 어디까지나 불가분의 관계인 셈. 

옛 기와지붕(2022), Olympus OM-1/Kodak Portra 160

암키와와 수키와 외에도, 기와는 그 쓰임에 따라 착고막이, 막새, 망와 등으로 더 세세하게 나뉘는데, 내게는- 그리고 오늘날 한옥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아마 누구라도- 다른 기준이 하나 더 있다. 바로 기와가 만들어진 시기이다. 정확한 연대를 특정할 수는 없어도,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낸 새 기와와는 달리, 기왓장마다 닿아있는 제와장(製瓦匠)의 손길을 느낄 수 있는 시대의 기와를 옛 기와(고와, 古瓦)라고 지칭해본다.  

손으로 빚어낸(2022), Pentax MX/Kentmere 400

아마 쓰인 흙이 무엇이냐, 어떤 두께로 와통(기와 흙을 둘러 붙이는 원기둥 모양의 틀)에 흙을 붙였느냐, 구워진 가마가 어디냐 등에 따라 똑같은 기와가 한 장이 없고, 수키와 위에 제와장의 개성을 담은 다양한 무늬가 새겨져 있기 때문일까. 옛 기와에서는 품질의 균질성과 대량생산을 특징으로 하는 산업화 이후의 제품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일종의 개인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거친 표면과 다채로운 무늬가 은은하게 반사해 내는 햇빛, 다양한 색이 묘하게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부드러운 색감, 강박적인 정렬과 반복이 아닌 불규칙 속의 질서. 어쩌면 나는 이런 지붕에서, 아무리 열심히 정돈하더라도 굴곡이 생길 수밖에 없고, 군데군데 얼룩이 지기 마련인 삶의 모습을 찾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불규칙한 질서(2022), Pentax MX/Kentmere 400

이토록 아름다운 옛 기와에는 모양이 제각각이라 방수 성능이 떨어진다던가, 땔감조차 부족하던 시절 마구잡이로 구워냈기 때문에 소성(燒成) 온도가 적절치 않아 내구도가 약하다라던가, 가지런하지 못하고 얼룩덜룩해 보기 흉하다는 등의 비판이 따라붙곤 한다. 기능적인 장점 앞에  결국 우리는 지붕 전체를 신와로 대체하기로 결정했지만, 그렇다고 옛 기와의 여정이 여기서 멈추는 것은  아니다. 나보다 아름다움의 가치를 더 무겁게 여기는 누군가의 집에 건네져 또 모진 비바람을 막아줄 것이고, 우리 집에서는 화단에서, 또 집안 구석구석에서 그 아름다움을 뽐내게 될 테니 말이다.

이토록 다채로운 아름다움(2022), Pentax MX/Kentmere 400

나이가 조금씩 들어가고 있다는 인식이 생기고 나서부터는, 시간의 시험을 견뎌낸다는 게 얼마나 조마조마하고 어려운 일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완벽한 부작위 속에서도 속절없이 흘러가는 게 시간이지만, 그 도도한 흐름 속에서도 묵묵히 자리를 지켜낸 다는 것. 오랜 풍파 속에서 닳고 깨져도 버텨내고 있다는 것은 설혹 놀라울만한 업적 같은 것이 없더라도 존중받을만한 것 아닐까. 오래된  물건을 바라볼 때 내 마음속에 피어나는 일종의 애틋함과 경이로움도 그 연장선 상에 있다.


2021.05.21. 삼청동 한옥 매매 계약

2021.09.06. 설계계약: 선한공간연구소

2021.10.08. 기본설계 시작

2021.12.03. 기본설계 종료

2021.12.21. 실시설계 시작

2022.04.12. 시공계약: 서울한옥 by 젤코바코리아

2022.04.22. 실시설계 종료

2022.04.23. 공사 시작

2022.05.21. 철거 공사 전 긴급회의

2022.05.22. 지붕 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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