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여긴 서쪽으로 풍경이 열려 있어서 좋아. 여름이면 창밖으로 벚나무 그늘이 드리우는데 그것도 정말 예쁘고. 그리고 단지 가운데 저건 놀이터야. 저기서 애들이 뺑글뺑글 자전거도 타고, 하루 종일 떠들고 놀아서 낮 시간이 활기차(가끔 너무 시끄럽기도 하지만). 또, 단지 밖으로 나서면 단독주택이 많아 골목길도 아기자기하니 재미있고. 아, 교대 운동장도 마음대로 쓸 수 있어. 게다가 근처에 커피를 꽤나 잘 볶는 가게도 있다고."
교대에 살던 시절 누군가가 내게 이 아파트가 어떻냐고 물어오면 들려주던 대답이다. 하지만 그렇게 낭만적인(?) 이야기를 하던 시기를 지나 전세로 살던 "우리 집"이 하루가 다르게 비싸지게 되자 점차 한숨이 늘어갔다. 7억에 팔리던 게 12억에 나오고, 14억에 나오고, 그것도 모자라 이것도 저렴하게 나온 거라는 말을 듣던 순간 머릿속은 '아, 역시 집은 "사는 곳"이 아니라 "사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으로 가득. 아마 이때부터 '이 집은 벽돌이 예쁘네'라던가, '이 아파트에는 정말 키가 큰 나무가 많구나!' 같은 생각 대신 여기는 10억, 저기는 15억 하지 않았나 싶다.
"이 집 얼마에 샀어요?"
북촌에 작은 터를 하나 마련한 뒤 대체 몇 번이나 이 질문을 받았는지 모른다. 어디 사는지도 모를 동네(?) 사람도, 지나가던 관광객도 아무렇지 않게 던져대는 이 지긋지긋한 질문. 실거래 조회만 해봐도 금방 알아낼 수 있는(북촌에 집이 몇 채나 있다고) 간단한 정보를 굳이 물어보는 무성의함 때문에, 아니면 타인과의 경계를 존중하지 않은 예의 없음 때문에 나는 하릴없이 매번 기분이 상했었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 보니, 어쩌면 그런 질문이 싫었던 진짜 이유는, 언젠가부터 10억, 15억 하며 골목을 돌아다니던 내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인 것 같다.
세상 모든 게 투자의 투자의 대상이 되는 시대라고는 해도, 집에는 낭만이 충분히 담겨 있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하루 종일 힘들게 시달린 몸과 마음을 뉘는 공간이 0이 잔뜩 붙어있는 숫자로 정의되는 대신, 좀 더 개인적이고, 아름다운 방식으로 묘사되었으면. 그러다 보면 사람들도 이 집을 얼마에 샀냐고 묻는 대신, 마당에 심어둔 꽃을 궁금해하거나, 가끔씩 놀러 오는 동네 고양이들의 호구 조사를 한다거나 할 텐데. 또 그렇게 되면 나도 저 집은 이번에 5억이 올랐네, 와 이제 20억이네 하는 대신 다시 키가 큰 나무를 보며 감탄하고, 예쁜 벽돌을 한참씩이나 들여다보게 될 텐데.
닿을 수 없는 목표라도 나는 그런 꿈을 꿔보고 싶다. 내 마음속 집의 모습에서 수많은 0이 모조리 사라지는 그날까지.
2022.04.12. 시공계약: 서울한옥 by 젤코바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