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여름, 엉겁결에 시작되었던 단독 주택에서의 생활. 가을과 겨울, 그리고 어느 때보다 화창했던 봄날을 지나 다시 여름의 한복판에 섰다. 사진으로 돌아보는 지난 시간.
작년 여름의 시작 무렵 마당에 자리를 잡았던 장미는 씩씩하게 겨울을 이겨냈고, 지난여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성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가을에 파종했던 수레국화 역시 봄이 되자 무사히 피어났고, 노지에서 월동이 가능할까 걱정했던 문빔이나 라벤더 같은 친구들도 다행히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땀 흘리며 일하는 것의 즐거움(생계와 무관하게), 풀과 나무가 비를 만나는 소리, 수레국화가 보여주는 선선한 바람, 그리고 계절의 변화 속에서 느껴지는 생생한 시간의 흐름. 지난 1년간 정원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은 이런 것들이 아닐까.
집 근처에 자리를 잡은 길냥이가 새끼를 낳아 이 녀석들 보는 재미도 있었다. 꽃이 피었다 하면 쳐서 떨어뜨리고, 파를 심어놓으면 뽑아놓고, 정원은 화장실로 사용하는 등 곤란한 상황도 있었지만, 이 녀석들의 천진난만함 앞에서 그런 게 뭐 대수일까. 금비, 은비, 까비, 억울이, 장군이, 그리고 꼬리(꼬리만큼은 여전히 집 근처에 살고 있다). 이제는 독립해 터를 떠나가 버린 이들이 잘 살고 있을지 때때로 궁금하다(개는 윗집 마당에 사는 깜돌이. 꼬박꼬박 인사는 하고 지냈는데도 따로 밥을 안 챙겨줘서 그런지 여전히 적대적이다).
가을에는 마당을 하나 가득 채우던 낙엽을 모으고, 겨울에는 소복이 쌓인 눈을 쓸었다. 마당 구석에 잘 쌓아뒀던 낙엽은 봄이 되어 다시 마당으로 돌아갔고, 겨우내 넉넉하게 내렸던 눈은 봄꽃이 되었으니, 봄이나 여름보다 오히려 더 바빴던 가을과 겨울의 시간은 즐거움과 성취감으로 돌아온 셈.
이사를 오고 난 뒤 가장 많은 고생을 했던 건 아마 빠위 아닐까. 외부인 출입 금지라는 푯말이 있음에도 심심치 않게 집 앞까지 올라오는 등산객들, 남의 집 마당을 넘어 창문 코앞까지 서슴지 않고 다가서던 캣맘들.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규칙이나 예의조차 갖추지 못한 사람들 때문에 포치에 나가 따듯한 햇볕을 쬐는 데까지 거의 한 달이 걸렸으니. 그래도 그런 시간을 모두 지나 이제는 편안하게 이곳을 즐겨주니 참 다행이고 또 고마운 일이다.
서울이 좋을지, 다른 동네가 좋을지, 아파트가 좋을지, 빌라가 좋을지, 정원이 있는 게 좋을지, 없는 게 좋을지... 암만 머릿속으로 상상해 봐야 직접 겪어보지 않고서는 답을 찾을 수 없는 문제다. 나도 살아 보기 전에는 몰랐지, 손바닥만 한 마당이 딸린 집을 이렇게나 좋아할 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