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공사가 거의 끝나가는 시점에서 뒤를 돌아보니, 어느덧 설계 2주년이다. 내가 과연 선한공간연구소에 바랐던 건 무엇인지 예전 기록을 뒤적여 보았다.
"밝지만 외향적이지 않은, 단정하면서도 배려심이 느껴지는 집"
"빛이나 바람, 그 안에 사는 사람의 동선과 미감, 그리고 생활방식을 건축물에 녹여내는 것"
- 건축주의 마음
그리고 여기까지 읽자 문득, 선한공간연구소의 지향점은 무엇일까 하여 (이제야) 홈페이지를 찾아보았다.
양쪽 모두 모호하다면 모호할 수 있는 얘기를 하고 있지만 어쩐지 서로 잘 어울리는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걸지 모르겠으나) 50여 차례가 훌쩍 넘는 미팅 중 뭔가가 삐걱거린다거나 불쾌하다는 느낌을 받은 기억은 딱히 없었다.
하나의 건축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기 위해서 필요한 건 너무나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건축가와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다거나, 어떤 식으로든 기본적인 신뢰가 무너지는 상황이 있었다면, 그 종착점이 어디건 마음이 정말 많이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우리 집을 만난 것도, 사택에 살 수 있게 된 것도, 젤코바 코리아(서울한옥)라는 좋은 시공사를 만난 것도, 어느 것 하나 기연이 아닌 것이 없으나 그래도 그중 최고는 선한공간연구소를 만난 것이라고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다.
생업으로 바쁜 와중에도 건축주들이 허둥지둥 차린 밥상 앞에 모여 앉아, 즐겁게 식사를 하고는 밤늦게까지 머리를 맞대고 집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시간들. 그 시간 동안 나는 집이 무엇인지, 내가 어떤 공간을 원하는지, 그리고 나아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을 정말 원 없이 해볼 수 있었다. 그래서 집이 다 지어져 가는 것은 기쁘지만, 한편으로는 아쉽다. 이 시간이 얼마나 그리워질까. 하염없이 행복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