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장마
...제가 비 오는 날을 참 좋아했거든요- 비가 오면 세상의 듣기 싫은 소리도, 마음속 잡음도 모두 그 소리에 잠겨버리니까요. 그런데 건축주 입장이 되고 나니 장마 지나서까지 연일 내리는 비가 그렇게 미울 수가 없네요. 나무가 설탕으로 만들어진 것도 아닌데 이미 다 까맣게 썩어 녹아 없어졌을 것 같고, 지금 이 비가 영원히 내려 공사도 영원히 못하게 될 것만 같아요...
- 시공사 대표님, 설계 소장님과의 대화 中
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후, 하루에도 서너 번씩은 일기 예보를 확인한다(잘 맞지도 않는데!). 장마 기간을 지나 이제 무더위와 태풍만 넘어가면 되겠다 생각할 무렵, 놀랍게도 "다시" 찾아온 장마.
우장막을 설치하고, 비닐을 덮고, 약품을 뿌려대 봐야 뽀얗던 나무에는 이미 청(곰팡이)이 시퍼렇게 올라왔고, 비가 내리면 일을 못하니 일정도 늦어지고 있다. 게다가 이렇게 습한 계절에 짜 맞춘 나무는 겨울이 되면 갈라지고 터지고 할 텐데... 공사가 무탈하게 진행되느냐에 비하면 물론 모두 하찮은 문제들이겠지만, 아무튼 이런 이유로 내 마음은 내리는 비에 속절없이 녹아내리는 중.
어쩌겠나, 세상만사 마음대로 되는 일 워낙 한 개도 없는 거지.
멀리 볼 수 없을 때는 가깝게 보자. 가깝게도 볼 수 없다면 책을 읽고, 책마저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마음속을 들여다보자. 그렇게 함으로 이 행복한 과정 뒤에 숨어있는 작은 불행이 불필요하게 자라는 걸 잘 막아보자. 내리는 비는 어쩌지 못할지라도, 내 마음은 내 마음대로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