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로 볼 때는 적당히 괜찮아 보였는데 막상 집을 털고 나니 성한 기둥도 거의 없었고, 날림 공사로 인해 지붕 속 가구(架構) 마저 엉망이었다. 차라리 모두 헐어내고 새로 짓는 것이 편할 상황.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차분하게 집을 세워나가시던 목수님들의 경이로운 작업 일부를 사진으로 담았다.
건축가가 아무리 설계를 철저하게 해도, 어떤 결정은 결국 현장에서 해야한다. 종이 위에 그려진 선과 숫자를 넘어 흙 위에 서있는 돌과 기둥을 논하던 날. 오랜 시간 동안 체득된 지식을 바탕으로, 도면 안에만 존재하던 집을 조금씩 현실로 끌어내는 모습이다.
땅속에 묻혀있던 초석 위에 새로운 기둥이 올라서고, 그 위에는 깎아낸 나무가 곱게 내려앉았다. 예전 같았더라면 여기까지 보고 말았겠지만, 이제는 사진 뒤에 숨어있는 목수님들의 끝없는 대패질이 함께 보인다.
적당히 거칠게 마감된 옛 초석을 살리고 싶었다. 그랭이 공법은 기둥을 세울 때 그 밑면을 초석의 윗면에 맞춰 적당히 다듬어 바로 설 수 있게 하는 작업이다. 품이 많이 드는 작업이지만 덕분에 멋진 초석 위에 보다 단단히 기둥이 올라서게 되었다.
여러 이유로 기둥은 하단부터 썩는다. 새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1938년에 세워진 집을 이어가는 것이기에, 가능하면 고재는 최대한 보전하고자 했다. 동바리 작업에서는 아래쪽의 썩은 부분을 잘라내고, 신재를 이어 붙여 하나의 기둥을 만들어내게 된다. 젊은 나무와 나이 든 나무 사이의 어색한 차이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희석될 것이다. '
네모반듯한 나무토막이 목수 님의 작업에 따라 점차 필요한 형태의 부재의 변해간다. 특정 사용자의 필요나 요구에 따라 맞춤 제작되는 제품에 비스포크(bespoke)라는 수식어를 붙이곤 하는데,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현장의 부재들은 모두 비스포크이다.
어떤 이유에서였는지는 모르지만 옥색으로 칠이 되어있던 옛 부재와, 그 위에 놓인 손때 묻은 공구들. 90여 년의 시간을 뛰어넘은 이들의 만남이 왜인지 너무나도 자연스럽다.
필슨(Filson)이라던가 레드윙(Redwing)과 같이 일을 기반에 둔 브랜드를 꽤나 좋아한다. 속칭 “워크웨어(workwear)”라고 불리는 이런 제품들은 대체로 튼튼하고, 실용적이기 때문. 그런데 이런 물건들을 “진짜” 일하는 분들이 입고 계시니 그 멋짐이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시끄러운 공구 소음과 자욱한 나무 분진 속에서 튼튼한 셔츠를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걸치고 일에 몰두하는 모습. 그리고 바쁜 와중에도 한편에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는 공구들. 목수는 대체 얼마나 멋진 직업인 걸까.
목수님들은 현장에서 우리 집을 "우리(당신들의 집)" 집이라 부른다(비단 목수님들뿐만이 아니라, 건축가님도, 시공사 대표님도 이렇게 지칭하신다). 처음 이 단어를 들었을 때는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또 왠지 내 집에 대한 소유권을 빼앗기는 것 같아서 적지 않게 당황스러웠는데, 일하시는 모습을 보다 보니 그제야 어떤 의미인지 와닿는다. 집을 짓는건 워낙 어렵고 힘든 일이기에 "우리 집"이 아니고서야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일이라는 것. 어느 정도 경험치가 쌓인 지금, 나도 이제는 이 "우리" 집이라는 단어에 온 마음을 다해, 전적으로 동의한다. 언젠가 집이 모두 지어지고 난 뒤에도 이 과정을 함께했던 모든 우리가 몇 번이고 마당에서 기쁘게 모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