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은 기본적으로 이런저런 나무 부재(部材)를 끼워 맞춰 짓는 집이다. 상부 구조를 미리 짜 맞춘 뒤 한 번에 올릴 수 없기에 기단부터 하나씩 차근차근 쌓아 올리게 되는데, 이런 과정 중 가장 높은 곳에 있어 마지막으로 올리게 되는 게 바로 종도리. 이 종도리를 올리고 나면 집의 구조는 완성이 되는 셈이다.
바로 이 작업이 있는 날, 무사히 여기까지 온 것에 대해 감사의 마음으로 식을 열게 되는데, 이를 상량식이라 한다. 예전에는 온 동네 사람들을 모아놓고 크게 잔치를 했다고 하지만, 그건 우리의 성향에는 맞지 않는 것 같아 조촐하게 목수님들과 설계 소장님, 시공사 대표님, 그리고 부모님들을 모셨다.
상량식이 있기 몇 주 전부터 상량문에 써넣을 글을 고민하고, 호미화방에 가서는 상량문을 쓸 종이와 붓펜을 골랐다. 당일에는 우리가 평소 즐겨 사용하던 피크닉 매트 위에 작은 상을 차렸는데, 고사상에 으레 오르기 마련인 돼지머리는 없었지만, 대신 큼지막한 돼지저금통을 놓았고, 이 녀석이 가득 차면 어딘가에 기부하기로 했다. 전통과는 아주 거리가 먼 형식이었지만, 감사하는 마음만큼은 지금까지의 상량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여름날 쏟아지는 땡볕과 폭우 아래서도 묵묵히 현장을 지켜주신 목수님들, 자기 집인 양 그림을 그려주시고 끊임없이 고쳐나가시는 젤코바코리아와 선한공간연구소, 곁에서 항상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시는 부모님, 그리고 언제든 서로의 등을 믿고 맡길 수 있는 배우자까지. 모든 것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 상량문에 우리는 이런 글을 남겼다.
J)
인연이 모여 오늘에 이르렀음에 감사합니다
여기 모인 모든 삶들이 이곳에서 맞는
煙霞(연하)처럼, 저물녘까지 오래도록 아름답기를
P)
연하로 집을 삼고, 풍월로 벗을 삼아
바르게 살며, 자연스레 늙어가기를
또한 아름다운 기억으로 오래도록
이곳을 가득 채우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