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면으로 옮겼던 아흔 살짜리 집을 다시 현실에 그려내자니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이 너무나도 많다. 그럴 때마다 건축가와 건축주는 다시 머리를 맞대고 크고 작은 결정을 내린다. 오래된 서까래가 예전 모습 그대로 도열하지 않더라도 신구의 적절한 조화가 새로운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듯, 도면과 다른 부분이 생기더라도 서로 충분히 이야기를 나눈다면 만족스러운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집을 고치기 전, 건축주와 건축주는 계약관계로 묶인, 돈을 주는 쪽과 받는 쪽이 있는, 일방적인 요구와 무조건적인 수용이 있는 일종의 갑을 관계일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건축가와 건축주는 마음속에 담아왔던 집을 함께 지어내는 누구보다 평등한 동반자 관계이다. 이런 관계에서 그 무엇보다 중요한 건 서로에 대한 믿음이다. 서로가 지닌 선의와 성실에 대한 믿음, 같은 마음의 크기로 현장을 대하고 있다는 믿음.
내부 목공사가 한창인 요즘, 점점 집의 모습을 갖춰가는 현장을 바라보는 즐거움도 크지만, 서로에게 기대 마음을 맞춰가는 우리의 모습을 보는 즐거움도 그에 못지않다. 오래된 집을 한 채 고치고 싶었을 뿐인데 얻게 된 이 귀한 인연에 이전보다 더욱 감사한 마음이 드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