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템포가 무엇보다 중요한 나는, 어디에 살 건 음악을 하고, 책을 읽고, 식물과 고양이를 돌본다. 한옥이라는 상대적으로 드문 형태의 건물에 살아보아도 마찬가지다. 내 생활은 크게 달라진 것도, 달라질 것도 없다. 그런데 그런 나의 생활과는 다르게 마음에는 큰 변화가 있었다.
어떻게 지어졌는지 몰랐던 그동안의 집들과는 다르게 이 집은 몇 번인가의 풍한서습 속에서 고초를 겪는 걸 바로 곁에서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 모진 환경 속에서도 우리 집이네 자기 집이네 하며 노력해 주시는 너무나도 많은 귀한 분들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아직은 어색하고 설은 공간임에도 결과물에서 어디 하나 못난 곳을 찾을 수가 없다. 또한 그러다 보니 이곳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어, 자꾸만 마음가짐을 바르게 고쳐먹게 된다.
나는 뭐든지 혼자서도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어떤 풍파에도 쉽사리 흔들리지 않는 강한 사람이라고 자부해 왔다. 그런데 집을 고치던 와중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어려움에 연거푸 처하게 되자, 나의 마음은 쉴 새 없이 숨을 곳 만을 찾았다. 그런 순간마다 나의 배우자는 지치지도 않고 내게 용기를 줬다. 혼자였더라면 아마 중간에 몇 번이고 그만두지 않았을까. "歲寒然後 (세한연후) 知松柏之後彫也 (지송백지후조야)"- 날씨가 추워진 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나중에 시드는 것을 안다. 큰 어려움 속에서도 송백의 지조와 푸르름을 잃지 않고 내내 앞장서 걸어준 그에게, 한량없이 감사한 마음뿐이다.
집을 지으면 십 년은 늙는다는 말이 있다. 설계도 시공도 내가 직접 하는 것이 아니기에 이 말에 도무지 공감을 할 수가 없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어쩌면 이 말은, 집을 지으면 조금은 성장할 수 있다는 걸 겸손히 에둘러 말한 게 아닐까 한다. 내 입으로 "성장했다"라고 자평하자니 적잖이 민망하지만, 분명 3년 전 보다는 고마움을 아는, 더 나은 사람이 되지 않았으려나.
지금 느끼는 이런 마음을 잊지 않는다면 비슷한 생활 일지라도 더 잘 살아낼 수 있을듯싶다. 분에 넘치는 이 집에서, 그 어느 때보다 잘 살아가 보고 싶다.
시작.
2022.04.12. 시공계약: 서울한옥 by 젤코바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