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호學의 시작
<우리는 세계를 만든다>를 쓴 이후에 <제정신이라는 착각>에서 배운 내용이 다른 일들에 밀려서 망각의 강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더 늦기 전에 <월말김어준> 박문호 박사님 강의 중심으로 <제정신이라는 착각>에서 배울 만한 내용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박문호 박사님의 <월말김어준> 강의에서는 우리의 인지 능력에 대해 ‘오류가 있는 사진기’ 비유를 중심으로 설명합니다. 하지만, 이는 박문호 박사님의 설명일 뿐 책에 나오는 내용은 아닙니다. 책에 나오는 표현을 찾아보면 '인지적 왜곡'을 대체한 비유가 아닌가 싶습니다.
책에서 해당 내용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의 결론부(96쪽)를 먼저 보겠습니다.
우리의 '정상적' 사고 역시 우리 생각만큼 그리 합리적이지 않다. 우리는 모두 '제정신이 아닌'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마도 우리 생각보다는 '더 제정신이 아닌' 듯하다. 또는 최소한 소위 '정신 나간' 확신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정신이 헤까닥 해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월말김어준> 강의 마지막과 상당히 비슷한 느낌을 줍니다. 박문호 박사님은 우리는 오류를 항상 전제하고 살아야 한다며, '확신에 빠지는 근본주의자'가 되지 말자고 강하게 제안하는 듯합니다. 제가 쓴 글에서 '근본주의자'를 포함하는 문구를 찾아봤습니다. <분노의 속살을 어루만지라>에서 <욕쟁이 예수>를 인용한 다발말[1]에 들어있군요.
근본주의자들은 평소 누구보다 좋은 사람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기성 교회에서 요구하는 점잖음의 외피를 벗고 '신 앞에 솔직히' 서려고 하는 이들, 기존 교리에 불편한 의문을 제기하고 교회의 전통을 문제 삼는 이들이 나타나면 긍휼과 관용 한 점 없는 실체를 드러낸다. 그들은 열이면 열 신앙과 교회를 지키려면 단호해야 한다며 자신의 호전성을 옹호한다.
인지적 왜곡에 대해 알아볼까요?
우리는 합리성의 환상, 즉 본인은 매우 합리적이라는 환상을 품고 있는 듯하다.
저도 시인합니다. 합리를 신앙처럼 여기는 와중에 실수로 명리학 강의를 듣던 자기모순적인 경험을 하며 합리성의 환상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2015년 명리학을 처음 배울 때만 해도 '사주팔자'는 전혀 비합리적인 것이라고 믿었다. 우여곡절(?) 끝에 나는 명리학을 배웠고 지금까지 대략 90명 정도 지인의 사주를 봐준 일이 있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면, 이러한 착각을 바로 인지 왜곡이라고 부릅니다.
심리학은 사고와 판단에서 오류를 저지르는 경향을 '인지 왜곡'이라 한다. 인지 편향cognitive bias 또는 인지 착각cognitive illusion이라고도 부른다.
그리고 저자는 확신에 도달하는 기본적인 가능성 두 개를 소개합니다.
우리는 주어진 증거를 토대로 세계상을 만든다.
<우리는 세계를 만든다>에 썼던 내용이기도 합니다. <제정신이라는 착각>의 프롤로그를 읽고 푹 빠져서 흥미를 따라 5장 '우리는 세계를 만든다'만 먼저 읽고 쓴 글이었습니다.
한편, 저자가 말한 두 번째 가능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스스로 증거를 검증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확신을 넘겨받았을 수도 있다.
미디어의 폐해와 디지털 문해력에 대한 생각을 담았던 <정보홍수시대에 문해력은 어떻게 갖출 수 있는가?>를 떠오르게 하는 가능성입니다.
다시 박문호 박사님의 오류가 있는 사진기 비유로 가 봅니다. 생명 유지를 위해 오류가 이롭다고 하는데, 이에 대한 근거를 책에서 찾아보겠습니다.
많은 일은 검증하기가 어렵고, 자신의 경험을 수집해서 견해를 지니기에는 검증이 너무 위험하다. 가령 어떤 동물이 위험하거나, 어떤 식물이 독성이 있는지 스스로의 경험으로 검증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좋은 전략이고 말이다.
유전자는 고위험 우선 대응이라는 위험을 피하는 쪽을 택하여 인간을 살아남게 했다고 합니다. 이를 설명하는 4장의 제목은 굉장히 멋지게 이를 표현하는 말인데, 바로 '비합리성의 진화'입니다.
인식적으로는 합리적이지 않지만, 실제적으로는 어쨌든 도망가고 본 사바나 선조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따라서 여기서 인식적 비합리성은 실제로 '이렇다 할 기능'을 한다. 즉 장기적으로 볼 때 유기체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
가려지거나 어두워져서 볼 수 없을 때, 살아남을 수 있도록 '선입견'과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을 갖게 진화했다는 것이죠. 확신이라는 부작용은 인간을 살아남게 한 대가이기 때문에 마땅하다 하겠습니다.
박문호 박사님 강의를 듣다 보면 우리가 자연을 인식할 때와 달리 사실을 숨기는 인간을 인지할 때 오류는 50% 이상으로 커진다고 설명합니다. 인간이 주로 숨길 수 있는 세 가지는 의미, 의도 그리고 목적이라고 합니다.
의미의 오류는 과장과 망상인데, 전자는 호들갑 정도로 볼 수 있지만, 후자는 당사자들의 성격에 따라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한편, 의도는 상대를 앞에 두고서는 숨기기 어렵지만, 인간의 무리를 속일 때 주로 쓰인다고 합니다. 사피엔스에서 본 기억이 있는 '뒷담화의 이론‘도 떠오릅니다.[2]
한편, 자연은 순차적으로 흘러가는 일이 많아 인과관계 판단이 수월한데, 인간은 인과로 볼 수 없는 일도 인과로 인지하는 경향이 생기면서 인간을 찍는 사진기의 오류가 커진다고 합니다.
책에서 그와 관련된 내용을 찾아보았습니다. '클러스터 착각clustering lusion'이란 현상이 있군요.
확신에 도달하는 이 두 가능성은 인지 편향에 취약하다. 데이터에서 뭔가를 배우고자 할 때, 우리는 데이터에서 패턴을 인식하고자 한다. 그래서 뇌는 계속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혹은 우리가 예측하도록 돕는 패턴을 찾는다. 그런 가운데 종종 과도하게 나아가 원래 있지도 않은 패턴을 인식하기도 한다. 이런 인지 편향을 '클러스터 착각clustering lusion'이라 부르기도 한다
'예측 기계'라는 말에 빠져서 2부 먼저 읽었던 일도 위 내용과 연관이 있어 보입니다. 인과적 설명을 즐기는 경향에 대해서 책에서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이에 더해 우리는 인과적 설명을 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패턴을 발견하면 그 원인도 설명하고 싶어 한다. 사회적 존재로서 우리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야기한 사건이 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중략> 이런 인지 편향을 과민한 행위 탐지 시스템hyperacive Agent Detection Dece. HADD라고 부르는데, 클러스터 착각과 비슷하게 이런 편향이 생기는 것 역시 이유가 있기에, 빠르게 패턴 배후의 의도를 알아채면 유익이 되기 때문인 듯하다.
이야기가 힘을 갖는 현상의 배경이 될 수도 있고, 많은 경우 잘못된 확신의 원동력이 되기도 할 듯합니다. 가끔 주변사람들 소식을 죄다 수집하려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과 함께 FOMO도 HADD와 관련이 있는 듯합니다.
마침 이 책을 읽고 있을 때, 확신에 빠져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사건이 두 가지 정도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이웃에 과도하게 겁이 많은 아이에 대해 대화를 나눌 때 함부로 평가를 내렸다는 생각을 나중에 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냉장고에서 신김치 통을 여는데 그걸 맛보는 일이 저에게는 엄청난 모험처럼 여겨졌고 역지사지로 신김치를 즐기는 입장에서 보면 제 이웃을 보던 제 판단과 유사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번째는 비행기를 타는데 항공권을 스캔하는 장비에서 지문 인식을 하는 분이 있어서 '잘 모르나 보다' 싶어서 그분에게 '항공권을 스캔하라'고 일러 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이미 통과했습니다. 장비를 자세히 보았더니 스캐너가 두 개였고, 비행기를 자주 타는데 한 번도 본 적 없다는 이유로 상대의 실수라고 판단한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마지막으로 박문호 박사님 강의에서 했던 직원들에게 화를 내는 보스에 대한 이야기로 마치겠습니다. '왜 그걸 모르냐?'며 화를 내는 보스는 정보가 부족해 자신처럼 맥락을 형성하지 못하는 직원들의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 결과라고 합니다. 가장 정보가 많은 나에게는 인과 관계가 보일 수 있지만, 정보가 부족하면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확신이라는 우물에 빠지는 경우라 하겠습니다.
우물 이미지를 찾다가 <잣대를 흐리게 하는 두 가지 우물>이라는 글을 찾았습니다.
[1]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구절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다발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2] 뒷담화 이론 관련해서는 추후 덧붙이거나 다른 글로 다룰 예정입니다.
5. 우리 모두 미쳤다고?
6. 우리는 세계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