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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영회 습작 May 31. 2024

생각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키우는 다양한 맛과 문화

묻따풀 2024: 함께 말 차리기

지난 글에 이어  <한국인에게 나는 누구인가> 책의 '09. 성미' 내용을 묻고 따지고 풀어봅니다.


흔하게 느끼는 맛에 대해서는 맛을 잘 느끼지 못한다

멋진 포기말[1]입니다.

사람은 혀에서 비롯하는 맛의 세계를 바탕으로 살아간다.

포기말을 읽으면서 <중용, 인간의 맛>이라는 책 제목이 떠오릅니다. 잘 지은 제목이란 생각이 듭니다.


저의 무지와 둔감함을 알기에 다음 포기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아주 흔하게 느끼는 맛에 대해서는 맛을 잘 느끼지 못한다. 예컨대 사람은 공기나 물과 같은 것의 맛을 잊고서 살아간다.

흔하게 느끼는 맛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던 과거는 후회를 남기는 듯합니다. 차리는 호흡으로 시작하는 마음챙김이 <지금 이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차리게 하는 힘>을 길러줄 수 있을까요? <일상을 차리기 위해서는 우선 조심해야 한다>는 말의 의미를 깨닫는 듯도 합니다.


아이들에게 배우던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남겼던 두 개의 기록을 이미지에 담은 사진을 다시 떠올려 봅니다.


지금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은?

<어떻게 내가 무엇을 모른다는 것을 알 것인가?>에 담은 생각도 연결해 봅니다.

바로 뒤따르는 교훈이 있습니다.

실타래를 풀려면 실이 엉켜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려야 시작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일상을 차리기 위해서는 우선 조심해야 한다>를 다시 떠올립니다. 집을 나서기 전에 혹은 자리에서 일어설 때 두고 나가는 것은 없는지 보는 것처럼, 지금 내가 놓치고 있거나 알지 못하는 것은 무언지 더듬어 보는 습관이 필요할 수도 있겠습니다.


생각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키우는 다양한 맛

굉장히 정밀한 비유란 생각이 드는 다발말[2]입니다.

조선시대에 정약용은 맛을 모든 생명체의 바탕으로 보아서 생명의 본성을 기호嗜好로써 풀이하였다. 기호는 생명체가 갖고 있는 갖가지 맛, 곧 보는 맛, 듣는 맛, 맡는 맛, 씹는 맛, 하는 맛 따위를 말한다. <중략> 그는 음식, 안위, 남녀, 도덕 따위에 대한 욕구나 욕망을 모두 기호인 맛으로 풀이하고 있다.

기호嗜好야 말로 가치를 담는 단위나 씨앗 같은 정의란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누군가의 기호嗜好에 휘둘리며 선악을 따지는 데에 혈안을 올리던 소모적인 젊은 시절도 떠올리게 됩니다.

사람은 생각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도덕, 지식, 기술, 예술 등에 대한 맛을 기르고 쓸 수 있게 됨으로써 높은 수준의 문화를 일구어 올 수 있게 되었다.

최근 <대체 뭐가 문제야> 함께 읽기의 영향으로 말에 담은 힘을 떠올릴 때, 이전에는 사피엔스의 표현인 '허구'가 떠올랐는데 지금은 '허상의 문제'가 더 마음에 듭니다.

허상의 문제에 대해 그렸던 그림을 인용한 포기말을 바탕으로 조금 고쳐보겠습니다. 그리는 과정은 알맹이가 되는 '어떤 것'이 도덕의 어떤 것이건 지식의 어떤 것이건 맛에 따라 조합될 수 있는 바탕이 바로 생각이고 말이란 사실을 깨닫게 되는 과정이었습니다.



이치理致와는 구분되는 생명의 본성

다시 책의 다발말을 봅니다.

정약용은 생명의 본성에 바탕을 둔 맛과 이것과 저것과의 관계를 바탕을 둔 이치理致를 엄격히 구분하면서 성리학에서 생명의 본성을 이치理致로 말하는 것을 비판하였다. 느낌에 바탕을 둔 맛은 오로지 생명에서만 볼 수 있는 것과 달리 이것과 저것의 관계에 대한 이치는 모든 사물에 두루 미치는 것이다.

참으로 멋진 말입니다. 제가 뒤늦게 깨달은 '개성'에 대한 이야기로도 들리고, 요즘 다방면에서 깨닫고 응용하려고 하는 유기체성에 대한 배경 지식이 될 듯도 합니다.

일상이 소중한 이유도 이치理致의 지배를 받더라도 이치理致를 넘어선 고유함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치理致와는 구분되는 생명의 본성'이라는 단락의 제목을 붙이면서 그게 바로 '개성'이란 사실에 다시 한번 놀랍니다. <당신이 옳다>를 세 번 읽으며 나도 모르게 배운 밑바탕이 작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검증할 수 없는) 생각이 흐릅니다.


정약용의 생각은 굉장히 과학적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그는 모든 사물에 두루 미치는 것으로써 생명에서만 특별히 볼 수 있는 것을 풀어내는 것은 생명의 본질을 제대로 풀어낼 수 없다고 보았다. 이는 마치 돌멩이가 서로 부딪히는 이치로써 사람들이 서로 다투는 이치를 설명하는 것과 같아서 궁색함을 벗어나기 어렵다.

<제정신이라는 착각>을 다룬 박문호 박사님 강의에서 자연의 인과관계를 인과가 통하지 않는 인간 문제에도 그대로 적용하려는 경향에  대해 들은 내용이 그대로 떠오릅니다.


마지막으로 인용하는 다음 다발말은 내용 그 자체가 지금의 현실에도 적용이 되어 씁쓸합니다.

임금이 나라를 다스리는 일에서 가장 으뜸이 되는 일은 백성이 맛을 이루어가는 사회적 바탕을 고루 할 수 있도록 하는 일로 보았다. 그는 <원정原政>에서 "고루 우리 백성인데, 누구는 토지의 이로움에서 아울러서 부유하게 살고, 누구는 토지의 이로움을 막아서 빈한하게 살도록 할 것인가! 이를 위해 토지를 계량하여 백성에게 고루 나눠주어서 그것을 바로잡으니, 이것이 정치이다."


주석

[1]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문장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포기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2]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구절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다발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지난 묻따풀 2024: 함께 말 차리기 연재

(64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64. 한국인과는 다른 영국인과 중국인의 우리

65. 누리에 때와 틈과 함께 나는 낱낱의 존재

66. 한국말 살다, 살음, 살기, 삶, -살이와 살리다

67. 사람도 해를 닮아 살을 뻗어나가는 것이 삶이다

68. 마음에서 낼 수 있는 힘을 바탕으로 한 살이

69. 욕심과 다스림: 추진력인 욕심을 바로 알기

70. 햇살처럼 펼쳐 나가는 사는 '맛' 그리고 새로운 독서법

71. 욕심이라는 원동력 그리고 마음을 갈고닦는 일

72. 느낌에서 비롯하여 무엇을 어떤 것으로 풀어 알아봄

73. 느낌을 만든 알음이 엮이면서 맥락을 형성하여 앎이 된다

74. 우리는 숨을 쉬는 유기체이고, 동시에 욕망하는 인간이다

75. 마주해서 보면 느끼게 되고, 이를 헤아리면 맛이 난다

76. 한국인은 상황을 즐길 때 '살맛 난다'라고 말한다

77. 맛보는 과정을 통해 본성이 습성으로 드러나는 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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