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을 피하는 것은 결국 성취를 내려놓는 일이다

내 일상을 차릴 알고리듬

by 안영회 습작

<나는 그 모든 것을 이겨낼 것이다, 과거에도 그랬듯이>에 이어 <시작의 기술> 4장 '나는 불확실성을 환영해'를 읽고 밑줄 친 내용을 토대로 생각을 담습니다.


생존 기계는 확실한 예측을 갈망합니다

이 문장은 제가 자주 인용한 '예측 기계'를 떠올리게 합니다.

괴롭도록 당신이 갈망하는 그것, 그 갈망의 대상은 바로 '예측'이다.

뇌가 일종의 '예측 기계'처럼 작동한다고 믿는다면 '갈망'의 주체가 내 의식 바깥이라는 점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는 저에게 이를 받아들이게 했습니다. 그리하여 <이기적 유전자>에서 리처드 도킨스가 쓴 대로 결정의 주체는 '생명체로써의 나'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당신의 두뇌는 당신이 항상 이기도록 만들어져 있다>에서 저자가 쓴 표현으로는 '생존 기계'가 되는 것이죠.


생존 기계에게 필요한 것은 확실성입니다.

확실성 때문이다. 우리는 확실한 것을 찾고 불확실한 것을 피한다.

행동이 생명(개체)이나 종족 유지 차원이라면 '확실성'이 필요하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같은 생존 본능 때문에 오히려 제대로 못할 수도 있다

여기서 말하는 '얼마 전'은 역사적 관점, 혹은 생물학적 관점에서의 '얼마 전'입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당신이나 나 같은 사람들에게 세상은 꽤나 무시무시한 곳이었다. 알려지지 않은 곳으로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죽음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한편, 다음 문장은 뇌의 입장에서 보면 꼭 다행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행히도 세상은 이제 수천 년 전만큼 무시무시한 곳은 아니다.

제가 느낀 이 낯섦의 이유를 '놀랍게도' 저자가 설명해 줍니다.

위험을 회피하는 성향은 한때는 필요한 것이었으나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 않다. 똑같은 생존 본능 역시 한때는 우리를 살아 있게 만들어주었으나 지금은 그 본능 때문에 오히려 제대로 살지 못할 수도 있다.

다음 문장을 몰입해서 읽은 후 느낀 점은

편안하게 느끼는 것만 고수한다면, 늘 해오던 일만 한다면 사실상 당신은 과거에 사는 셈이다. 그렇게 해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지금 반복하고 있는 그 일도 당신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는 이후에 무슨 일로 이어질지 알 수 없는 위험한 일이었다. 그 이후로 그 일은 일상이 됐다.

확실히 저는 과거에 머무는 데에는 인내심이 없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입니다.


확실성 대신 불확실성을 택한다는 선택의 의미

경제학적으로는 Risk의 다른 말이 이윤과 맞닿아 있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납니다.

성공은 절대로 확실하지 않다. 위험 부담 없이 성공이 오는 법은 없다. 여러분이 아무리 똑똑하고 열심히 일해도 보장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정말 멋진 표현입니다.

저들이 성공한 것은 불확실성 때문에 그만두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저들은 행동했다. 의심은 무시하고 가던 길을 계속 갔다.

불확실성 때문에 그만두지 않아서 성공한 것이라니. 이렇게 생각해 보지는 못한 듯합니다.

불확실성 대신 확실성을 택한 순간부터 더 이상 뭔가를 성취할 수 없었다. 그들은 벽에 부딪혔다.

확실성만을 택하는 일은 생존 기계로서 본능이지만, 동시에 인간으로서 성취는 포기하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통장에 10억 정도가 있다면 누구나 좀 더 안정된 기분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런 사고방식의 변화가 궁극적으로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환경을 조성한다. 더 이상 돈이 불확실하지 않을 때 돈을 추구할 욕망, 심지어 필요성이 줄어든다.


생존 기계에게 중력重力과 같이 작동하는 '정착'의 힘

저자는 정착을, 불확실성의 가진 힘의 한 형태로 설명합니다.

결국 우리는 소위 정착이라는 걸 하게 된다. 확실성을 찾아 정착한다. 이게 바로 인생에서 불확실성이 가진 힘이다. 불확실성은 우리를 다독일 수도 있고 무너뜨릴 수도 있다. 우리를 부자로 만들 수도 있고 가난뱅이로 만들 수도 있다. 성공의 열쇠가 될 수도 있고 반대 방향으로 우리를 몰아갈 수도 있다.

최근 구글이 발표한 기술 이름 탓에 '중력重力'이 떠오릅니다. 그렇군요. 생존 기계로 작동하는 우리의 본능을 중력과도 같군요.

웃기는 것은 우리가 아무리 확실성을 좇아도 결코 확실성을 붙잡을 수 없을 거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확실성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생존 기계를 통제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환상' 덕분에 개체와 종족 유지에 유리한 행동을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중략> 확실하다는 것은 순전히 환상이다. 미신이다.

그러니 미신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네요. '미신'이란 말을 들으니 자연스럽게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 책에서도 펼쳤을 때가 떠오릅니다.


한편, 다음 문장에서도 놀라운 표현을 만납니다.

확실성을 찾아 불확실성으로부터 도망친다면, 환상에 불과한 것을 위해 사실상 인생에서 유일하게 보장되어 있는 것을 거절하는 셈이다.

'인생에서 유일하게 보장되어 있는 것'이라니!


비슷비슷한 모습이 이어진다는 믿음이 나를 가둔 것일까?

XP의 부제인 'Embrace the change'가 떠오릅니다.

인생이 얼마나 예측 불가능하고 불확실한지를 인정하는 사람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묘하게도, 이제는 XP 대신 제 마음속 그 자리를 이 책이 차지할 것만 같습니다. 이 글을 떠올린 것은 아니지만, 과학 책을 좋아하는 큰 아이가 어제 이렇게 물었습니다.

아빠, 다중 우주론에서는 우주가 여러 개라고 하는데, 우주가 무한인데 어떻게 무한이 무한하게 있을 수 있어요?

저는 실용적이지 않은 지식이라는 생각에, 조금 다른 답을 했죠.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도 어차피 우주인데,
여기서조차 내일 당장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어.
경우의 수가 무한이거든.


아이에게 했던 말을 글로 옮기면서, 저 스스로를 '정착'에 머물게 한 것은 결국 저 자신이었는지,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단언하자, 나는 불확실성을 환영한다고

최봉영 선생님께서도 늘 "묻고 따지고 풀어 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을 어떻게 아는지 점검해 보는 것은 철학을 떠받치는 기둥 중에 하나다. 우리는 내가 믿는 것이 진실임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증명할 수 없다.

역설적으로, 저는 학창 시절 선생님들의 위선을 보며 저자의 말을 먼저 실천하게 되었습니다.[1]

사실 남들의 의견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리는 것만으로도 인생이 하루아침에 바뀔 수 있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인생은 계속된다.

머리로는 쉽게 받아들였습니다.

자기 단언이다. '나는 불확실성을 환영해.'

그런데, 진정 마음으로도 그럴까요?

불확실성을 정면으로 부딪쳐라. 불확실성을 소중히 여겨라. 불확실성을 즐겨라. 기억하라. 늘 꿈꿔왔던 그 모든 성공과 경험과 일은 모두 불확실성 속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이 점을 받아들이면 이전처럼 그렇게 무섭지 않다.


불확실성을 환영하라. 미래를 위해 최선을 다하라.

기대했던 낱말들 사이에서, 뜻밖의 반가운 말을 만납니다.

그 일을 해라. 지금 당장 시작해라. 지금보다 더 나은 때는 없다. 인생에서 불확실한 것과 함께 하기 위해 필요한 근육을 키워라.

요즘 자주 써 온 '근육'이라는 말이 특히 반가웠습니다. 제가 팀원들에게, 당장의 성패와 무관하게 계속해야 할 일을 설명할 때 흔히 '근육을 키우는 일'이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음 말은, 미래를 걱정하는 아들에게 제가 했던 말과 비슷합니다.

알아내야 할 일이란 없다. <중략> 당신의 걱정 대부분은 미래를 예측하려고 애쓰는 데서, 그리고 미래가 당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 때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하는 데서 연유한다.

이제는 언행일치만 하면 되겠네요. ;)

당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라. <중략> 날씨, 주가 지수, '새로 자른 머리를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같은 문제는 당신이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다.


주석

[1] 진정으로 학생들과 교육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중학교 1학년 때 선생님을, '전교조'라는 이유로 기성 교사들이 탄압하는 모습 보며 위선을 확인했습니다. 살아남은(?) 그들은 '스승'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 제 결론이었습니다.


관련 글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 내가 나를 거절해 버린다> 2023년 8월 28일


새로 책장을 사서 오랜만에 책을 정리하다가, 문득 멈춰 서서 메모를 했습니다. 잘 정리된 책장 속의 책들은, 어쩌면 '죽은' 책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시작의 기술>을 읽고 쓰는 글

1. 오만 가지 생각에 휩싸인 자기 대화가 자신을 망친다

2. 미션 임파서블의 이단 헌트처럼 어려움을 대하기

3. 인생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나는 의지가 있다고 말하자

4. 당신의 두뇌는 당신이 항상 이기도록 만들어져 있다

5. 나는 그 모든 것을 이겨낼 것이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지난 내 일상을 차릴 알고리듬 연재

(42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42. 2년간 얼마나 어른이 되었나 돌아보기

43. 이제, 인공지능도 성찰을 하는데, 하물며 사람이라면?

44. 점수(漸修)를 통해 지혜롭게 행복 비용을 지불하자

45. 오만 가지 생각에 휩싸인 자기 대화가 자신을 망친다

46. 미션 임파서블의 이단 헌트처럼 어려움을 대하기

47. 가장 흔한 네 가지의 감정의 낚임 유형(上)

48. 가장 흔한 네 가지의 감정의 낚임 유형(下)

49. 부정적인 감정들도 나의 힘이다

50.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을 만나 허우적대고 있을 때

51. 병입 한 감정은 예기치 못한 순간 감정 누출을 낳는다

52. 누구나 마음속에서 일을 크게 키운다, 실제보다

53. 인생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나는 의지가 있다고 말하자

54. 당신의 두뇌는 당신이 항상 이기도록 만들어져 있다

55. 동물로 인간사회에 살아야 하는 한계를 극복하려는 신앙

56. 경청을 위해서는 생각을 멈추고 존재를 기울여야 한다

57. 나는 그 모든 것을 이겨낼 것이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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