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은 사랑을 배우는 학교가 될 수 있다

두 아들과 함께 배우기

by 안영회 습작

2년 전에 <결혼은 사랑을 배우는 학교에 입학하는 일이다>라는 글을 쓴 일이 있습니다. 아내와의 관계나 가장 역할로 배우는 바가 있고, 또 그와는 결이 조금 다른 육아로 배우는 교훈들이 있습니다. 이 글은 후자에 해당하는 에피소드입니다.


개성을 지켜봐 주기 위해서는 아빠도 성장해야 한다

큰아이가 둘째랑 놀 때 함께 말하는 상상의 나라가 있습니다. 항상 말로만 하더니 갑자기 큰아이가 지도가 없으니 까먹을 것 같다며 지도를 그렸습니다. 어릴 적에 지도 그리기 좋아했던 절 닮은 듯도 하고 아내가 아이들 눈높이에 걸어둔 대한민국 전도가 '게시판 효과'를 낳은 듯도 합니다.


그렇게 지도를 그리고 나더니 식탁 밑에 제가 넣어둔 출력물 두 개를 꺼내어 저에게 자신이 그린 지도로 교체하겠다고 말합니다. 양해를 구한 건지 그저 사실을 알리려는 건지 의도는 모르겠으나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게시판 효과도 의미가 있지만 이렇게 아이의 개성도 지켜볼 수 있게 된 데에는 생각 없이 관성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며 육아를 해 오며 아빠로서 저 자신도 성장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촉진한 부자지간의 섬세한 대화

이번에는 둘째와 있던 에피소드입니다. 아이가 포켓몬 카드집을 들고 와서 자랑을 합니다. 상업적 물건에 대해 집착하는 마음의 일부라도 자신의 창작으로 돌릴 수 있을까 싶어서 제안을 했습니다.

카나나를 이용해서 리호가 캐릭터를 그려 보는 건 어떨까?


예상대로 아이는 좋다고 했습니다. 더듬더듬 타이핑을 하는 대신에 종이에 쓰면 아빠가 입력해 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나중에 아이와 주고받은 과정을 시각화해 보니 마치 생각이 가치 사슬(Value Chain)을 타고 프롬프트가 정제되는 모습이었습니다.

더불어 아이의 주체성과 호기심을 유지하면서 제가 도울 수 있는 부분이 구분이 되어 눈에 띕니다. 이미지 생성을 기다리는 중에 큰아이가 끼어듭니다.

음식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별 영향을 안 줄 것 같은데


저도 비슷한 생각을 했기에 맞장구를 칩니다. 그리고, 카나나에서 프롬프트를 복사해 제미나이 앱으로 옮깁니다. 옆에서 함께 보아온 둘째는 바로 아빠가 하는 일을 추측합니다. 그러는 사이에 이미지가 나옵니다. 둘째는 자기가 쓴 글로 만들어진 캐릭터에 애착을 갖습니다.

같은 프롬프트로 생성한 카나나와 제미나이의 캐릭터


큰아이는 인공지능이 자신의 추측과 달리, 동생이 요구한 내용에 맞춰 음식 취향도 그림으로 드러냈다는 점에 신기해합니다.


가정은 사랑을 배우는 학교가 될 수 있다

또 다른 에피소드를 추가합니다. 요즘 가족 모두 마라톤 경기에 참여하기로 하면서 트랙이 있는 경기장에서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큰아이는 3km를 뛰고 나서 인조잔디 구장에 놓인 충진재를 쌓으며 놀고 있었습니다. 5km를 뛴 저는 큰아이를 보면서 '손을 씻어야 한다'는 잔소리를 떠올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이따 손 씻어야 돼'라고 말하는 대신에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따, 손 씻을 거지?


작은 변화지만, 여기에는 둘째 아이의 기여가 있습니다. 멀리는 3년 전에 <다른 사람 마음은 짐작하지 말고 물어보기>를 쓸 때 보여준 아이의 눈물이 바탕이 되었고, 가까이는 최근 아빠는 화를 내듯이 말한다고 울었던 장면이 있습니다.

또 한 번 가장 역할로 살아가는 길은 사랑을 배우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배웁니다.


기대와 달라야 배울 수 있는 것일까?

전에 썼던 <결혼은 사랑을 배우는 학교에 입학하는 일이다>와 지금 제가 느끼는 바는 뉘앙스나 초점이 조금 달라 보입니다.

돌아보면 저도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기 전까지는 특별히 뭘 배웠다 할 수 없습니다. 결혼 전과 비슷하게 행동했죠. 그러다 아내의 한 마디에 갑자기 각성한 듯한 일이 있었는데, 기억나는 첫 사건은 아내가 '왜 아이에게 소리 지르고 못하게 하느냐'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내 행동이 당연하다 믿고 있었다가, 처음으로 그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후에 그 통념이 어릴 때 자라던 환경에서 그대로 답습한 것이고, 그걸 그대로 따라 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육아란 무엇인가?>는 그 후에도 수년이 지난 후에 쓴 글입니다. 또한, 결혼 후에 수년간 아내와 다툼이 없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자주 부딪히면서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하다가 만난 책이 저에게는 성경이라 부를 법한 <당신이 옳다>입니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의 갈등 속에서 나를 돌아보고 배우기가 다른 사회활동보다는 수월했던 듯합니다. 그만큼 소중한 관계이기도 하지만 피하거나 숨기기도 어려운 관계니까요.


두 아들과 함께 배우기 연재

(37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37. 놀이에서 출발해서 배움으로 나아가기

38. 아빠랑 수학 공부하니까 재미있어요

30. 디지털 네이티브들의 소비 훈련

40. 연기(緣起)를 이야기로 만들기

41. 시행착오와 모방이 만드는 청출어람

42. 두 아들의 개성 차이에서 배우기

43. 일상에서 자연스러운 배움을 아이들에게 흐르게 하기

44. 두 아들에게 눈에 보이게 하는 게시판 효과 활용하기

45. 아이의 질문이 깨운 호기심을 동력으로 배우기

46. 108번이라는 횟수는 습習을 키우는 절대량인가?

47. 한자를 씨말로 어휘력을 늘리는 묻따풀 한자 208

48. 아이의 도전이 깨운 메타인지를 동력으로 배우기

49. 육아로 시작했지만 서로 영향을 주며 발전하는 가족관계

50. 아이에게 즉각 개입하는 대신 관찰하면 보이는 것들

51. 붉은색을 나타내는 한 赤(적)과 朱(주)

52. 글쓰기를 가르칠 때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지난 경험

keyword
작가의 이전글불확실성을 피하는 것은 결국 성취를 내려놓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