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주도한 가족 달리기 훈련 첫날 배운 것들

두 아들과 함께 배우기

by 안영회 습작

운동을 좋아하는 아내가 초등학생인 두 아들을 설득하고, 지역 마라톤을 신청했습니다. 첫째는 이미 10km를 뛴 경험이 있지만, 둘째[1]는 처음인지라 가족 모두 트랙이 있는 운동장으로 연습을 하러 갔습니다.


몇 년 만에 애플워치답게 쓰인 내 팔목 위의 시계

한 때 몇 가지 실험을 하기는 했지만, 지금은 시계 용도로 차고 다니던 애플워치를 오래간만에 의미 있게 썼습니다. 운동 앱을 켜서 사용한 것인데요.

애플워치 구매 후에 과거에 의미 있게 써 보려고 노력한 흔적

몇 년 만에 애플워치를 처음 찼을 때 느낀 상큼함(?)을 다시 맛보았습니다. 보통은 번거롭게 느끼는 알람 창이 뜨더니 뜻밖에도'상황에 맞는 적절한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혹시 트랙 위를 뛰고 있는 것 같은데 몇 번 레인이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조금 놀라는 동시에 속으로 의문을 품은 상태로 4번을 입력했습니다.

근데, 레인 번호가 다르면 어떤 차이가 있나?


의심하고 질문하면 기술이 빠른 답을 제공하는 시대

이 경험은 즉각적으로 최근 읽은 책을 기억에서 꺼내 옵니다. 데카르트의 글을 현대적인 언어로 엮은 <일단 의심하라, 그 끝에 답이 있다>이었는데, 그 책에 나오는 문구의 실제 사례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더불어 데카르트가 살던 시절과는 달리 의심하고(혹은 문제 정의를 잘하고) 질문을 던질 수만 있다면 기술이 우리에게 엄청난 생산성을 제공합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집에 와서 애플워치가 남긴 기록을 예로 들어 설명할 수 있을 듯합니다. 애플워치의 기록을 분석해 주는 아이폰의 피트니스 앱에서는 지도라는 UI 모듈 안에 트랙을 돌았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게다가 지정하지도 않았는데, 11개의 랩이 만들어졌습니다. 11바퀴를 돌았다고 애플워치가 판단한 것입니다. 놀랍네요!

제가 직감한 ‘상큼함’의 원인을 찾았습니다. 계산을 위해 딱 하나의 변수만 저에게 받았다는 점이 설계 덕후인 저를 자극한 것입니다. 게다가 미니멀리스트인 저에게 딱 어울리는 UX이기도 하고요. 트랙을 돌 때 몇 번 레인이냐에 따라 길이가 달리질 테니, 정확한 계산을 위해서 일종의 '단위'를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데카르트 말대로 우리는 의심할 능력만 있다면 됩니다.

레인 번호 주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는 일일까?


기기에 대한 경험이 쌓여야 배우는 데이터 문해력

이제 제 질문에 대한 답은 찾았으니, 답을 찾는 과정에서 배운 것들을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먼저 시계로만 쓰던 애플워치 데이터를 핸드폰에서 어떻게 활용할지 몰랐습니다. 여기서 인공지능 길들이기 결과로 습관이 되어 퍼플렉시티에게 물으니 (제가 안 써서 숨겨둔) 피트니스 앱을 켜면 되는 간단한 일이었습니다.


운동 시작 버튼을 누른 후에 종료 버튼을 눌러 시간을 입력한 운동 기록을 알아서 분석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다시 심박수 데이터를 살펴봅니다. 실제 경험과 섞이니 조금씩 데이터 문해력이 늘어나는 듯합니다.

여기에 '데이터 문해력'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나니 아내가 설명해 주었던 요즘 아이들만 아는 기기 조작법이 떠올랐습니다.[2]


의심만 하면 애플워치와 퍼플렉시티가 답해 준다

오래간만에 애플워치답게 기기를 썼더니 배운 점에 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한편, 트랙 위에서 레인 번호를 입력할 때, 큰 아이와도 상황을 공유하며 대화를 했습니다. 길이 차이를 검색할 수가 없어서 나중에 집에 가서 확인해 보겠다고 약속했고, 퍼플렉시티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쓰다 보니 여기까지는 데카르트에게 배운 바와 데카르트가 살던 시절과 달라진 것에 대해 쓴 듯합니다.


내 습관이 발동하지 않는 일이라면 드라이버를 활용하자

이번에는 애플워치를 둘러싼 이야기가 아니라 달리면서 머리에 들었던 생각을 풀어 보겠습니다. 가장 큰 것은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아내 제안에 응하면서 겪고 거기서 또 배우는 일에 대한 깨달음입니다. 앞서 쓴 모든 것은 결국 애플워치 덕분이기도 하지만, 달렸기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리고, 혼자 달리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 보조를 맞추면서 배운 일들입니다. 그랬더니 결혼 후에 배운 것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습니다. 그중에서 '육아에 대한 깨달음'이 큰데, 그 노하우를 하나로 뭉뚱그려 표현하면 '눈높이 교육'이라는 낯익은 문구가 떠오릅니다. 눈높이 육아는 심지어 회사 경영에도 그대로 쓸 수 있었는데, 널리 쓰는 표현으로 바꾸면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에 해당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조만간 다른 글로 풀어내기로 하고, 스스로 시작하지 않는 일에서도 배울 수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봅니다. 아내가 없었더라면 평생 마라톤을 할 리가 없었습니다. 아내 역시 아이를 낳지 않았더라면 함께 마라톤을 하려고 하지 않았을 듯합니다. 결과적으로 아내가 주도해서 저도 무려 네 차례나 마라톤 경기 참여 경험이 생겼습니다.


이와 같이 제가 주도해서 하지 못할 때 주도하는(Driven) 힘이 있는 것은 유용하게 쓰일 수 있습니다. 소프트웨어 개발 분야에서는 driven이 들어간 꽤나 익숙한 표현들이 있습니다.

소프트웨어 개발 이외의 분야에 어떤 것이 있는 물었는데, 퍼플렉시티가 예로 든 것은 IT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듯 느껴집니다.


주석

[1] 작년에 5km를 겨우 뛰었기 때문에 조금 무리라는 생각도 들지만

[2] '디지털 네이티브'의 특징을 보는 것일까요?


두 아들과 함께 배우기 연재

(38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38. 아빠랑 수학 공부하니까 재미있어요

30. 디지털 네이티브들의 소비 훈련

40. 연기(緣起)를 이야기로 만들기

41. 시행착오와 모방이 만드는 청출어람

42. 두 아들의 개성 차이에서 배우기

43. 일상에서 자연스러운 배움을 아이들에게 흐르게 하기

44. 두 아들에게 눈에 보이게 하는 게시판 효과 활용하기

45. 아이의 질문이 깨운 호기심을 동력으로 배우기

46. 108번이라는 횟수는 습習을 키우는 절대량인가?

47. 한자를 씨말로 어휘력을 늘리는 묻따풀 한자 208

48. 아이의 도전이 깨운 메타인지를 동력으로 배우기

49. 육아로 시작했지만 서로 영향을 주며 발전하는 가족관계

50. 아이에게 즉각 개입하는 대신 관찰하면 보이는 것들

51. 붉은색을 나타내는 한 赤(적)과 朱(주)

52. 글쓰기를 가르칠 때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지난 경험

53. 가정은 사랑을 배우는 학교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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