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고 따져서 풀어보는 한국말
이 글은 <말은 공동체가 함께 만드는 산물이다>에 이어 최봉영 선생님이 페북에 쓰신 말씀을 바탕으로 묻고 따지고 풀어 보는 글입니다.
다음 글을 읽을 때 떠오른 그림이 있었습니다.
02.
한국 사람은 [말]이라는 [말]을 끊임없이 끄집어내어 주문처럼 읊어대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예사롭게 “나는 말인데, 어제 말이야, 늦잠을 자서 말이야, 기차를 놓쳤단 말이지. 그래서 말이야, 회의에 참석할 수 없었단 말이지‘”와 같은 [말]을 쓸 수 있다. 사람들은 [말]이라는 [말]에 귀신이라도 들린 듯이 [말]을 주고받을 때, 걸핏하면 말끝마다 [말인데/말이야/말이지]라는 [말]을 끌어다가 읊어댄다.
<The Tree of Knowledge System and the Theoretical Unification of Psychology>라는 논문에 포함된 삽화인데요. 지식 나무라는 제목의 이 그림을 볼 때, Mind에서 Culture 단계로 이동하면 소통을 위해 '말'이 오고 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씨말'을 정의하시기도 했던 최봉영 선생님의 다음과 같은 기록은
03.
한국말에서 [말]은 [마], [만], [많다], [말다], [말미], [말미암다]와 바탕을 같이 하고 있다. [말]은 사람이 [마]와 [만]과 [많다]를 발판으로 삼아서 온갖 것을 <뜻>으로 [마는] 일을 해서, 온갖 <일>이 일어나는 [말미]가 되어서, 온갖 <일>이 [말미암게] 하는 것이다. [말]은 사람이 온갖 것을 <뜻>으로 [말아서] <일>로 [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까닭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마치 입자 물리학자들과 같은 수준으로 한국말 연구에 있어서는 고유한 연구 수준과 태도를 보여주십니다. 2년 전에 <말은 말에다가 말아서 말해라> 쓸 때만 해도 신기하기는 했지만 어색했던 내용이 지금은 자연스럽게 여겨집니다.
말이 작동하려면 물리적으로 파동을 타고 상대의 감각기관(귀)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따라서 그 소리에 뜻을 담아서 보내는 장치가 바로 '말'입니다. 그러나 '말아서' 라는 표현은 직관적이기까지 합니다. :)
그리고, 다음 설명을 보면 그릇 역할을 하는 '말다'가 아닌 단위로써의 의미를 보게 됩니다.[1]
04.
[저마다=저+마+다], [아마=아+마], [설마=설+마(현마=현+마)]에서 [-마]는 따로 하는 무엇을 가리키는 말이다. [저+마+다]는 [저]인 것으로서 따로 하는 무엇을 모두 다 가리키는 말이고, [아+마]는 [아]인 것으로서 따로 하는 무엇을 낱낱으로 가리키는 말이고, [설+마]는 [설]인 것으로서 따로 하는 무엇을 낱낱으로 가리키는 말이다. 사람들은 따로 하는 무엇을 가리키는 [-마]를 발판으로 낱낱의 것으로 나아간다.
반갑게도 이에 대한 설명이 이어집니다.
05.
[나만=나+만], [이것만=이+것+만], [딸기만=딸기+만], [이만하다=이+만+하+다]에서 [-만]은 저마다 따로 하는 무엇을 오로지 그것만 떼서 가리키는 말이다. [나+만]은 저마다 따로 하는 [나]인 것을 오로지 그것만 떼서 가리키는 말이고, [이것만=이+것+만]은 저마다 따로 하는 [이것]인 것을 오로지 그것만 떼서 가리키는 말이고, [딸기만=딸기+만]은 저마다 따로 하는 딸기인 것을 오로지 그것만 떼서 가리키는 말이고, [이만하다=이+만+하+다]은 저마다 따로 하는 이만인 것을 오로지 그것만 떼서 가리키는 말이다. 사람들은 오로지 그것만 따로 떼서 가리키는 [-만]을 가지고서 [–만큼], [-만도], [-만으로]와 같은 것을 만들어 쓴다.
그런데, '말'이 아니라 '-만'입니다. '마'에서 출발해 변형한 형제말들일 까요? 그뿐 아니군요. '마'에서 퍼져 나간 가족말을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
06.
“딸기가 많다.”, “딸기가 많이 자랐다.”, “딸기를 많이 먹었다.”에서 [많다]는 [만하ᆞ다=만+하ᆞ+다]가 줄어서 [많다]가 된 것이다. [많다]는 저마다 따로 하는 무엇이 [이만큼] 하는 일을 다 이루어서 더할 필요가 없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를테면 “딸기가 [많다].”는 것은 딸기가 [이만큼=이것+만큼] 하는 일을 다 이루어서 더할 필요가 없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고, “딸기가 많이 자랐다.”는 것은 딸기가 자라는 일에서 [이만큼=이것+만큼]하는 일을 다 이루어서 더할 필요가 없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만큼'과 '많다'다 '만'과 관련되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설명은 최봉영 선생님의 상상하기 어려운 노력의 결과인데요. 고고학자들의 발굴과도 같은 일이라 하겠습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더 솟아나지만 다시 '말'로 돌아가기 위해 다음 단락으로 넘어갑니다.
07.
[말다]는 사람이 무엇을 하지 않게 하는 것을 뜻하는 동시에 무엇을 해서 이루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담배를 피우지 마라(=말아라).”에서 [말아라]는 담배를 피우고 싶어 하는 <뜻>이 있어도 담배를 피우는 <일>을 하지 않게 하는 것을 말하고, “담배를 피우고 말겠다.”에서 [말겠다]는 담배를 피우고 싶어 하는 <뜻>을 담배를 피우는 <일>로 이루어내고자 하는 것을 말하고, “담배를 피우고 말았다.”에서 [말았다]는 사람이 담배를 피우고 싶어 하는 <뜻>을 담배를 피우는 <일>로 나아가서 담배를 피우는 <일>을 이룬 것을 말한다.
아직은 묘한 말로 여겨집니다. 최봉영 선생님 페북 글 기준으로 07의 부연 설명으로 이어지는 두 단락까지 이번 글에서 따져 보겠습니다.
“담배를 피우지 마라.”에서 [피우지]는 담배를 피우고자 하는 <뜻>이 아직 <일>로 일어나지 않은 [-지]의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을 나타내는 말이고, [마라=말아라]는 담배를 피우고 싶어 하는 <뜻>이 담배를 피우는 <일>로 나아가지 않도록 금지하는 것을 나타내는 말이다.
'-지'는 뜻이 아직 일로 일어나지 않은 상태라고 합니다.
여기서 '마라'가 등장하려면 뜻이 있어야 하는군요. 뜻은 '머리에 뜨는 것'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피어(?) 오릅니다.
사람은 머릿속에 담배를 피우고 싶어 하는 <뜻>이 있어야 몸을 놀려서 담배를 피우는 <일>로 나아가기 때문에 담배를 피우고 싶어 하는 뜻을 [그만=그+만] 두게 하면, 담배를 피우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된다. 이때 사람이 담배를 피우고 싶어 하는 뜻을 [그만=그+만] 두게 하는 것은 사람이 담배를 피우고 싶어 하는 뜻을 [(그냥 그런) 뜻으로만] 두게 하는 것을 말한다. 사람이 담배를 피우고 싶어 하는 <뜻>을 [머릿속에 (그냥 그런) 뜻으로만] 두게 하면, 담배를 피우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담배를 피우지 마라.”는 담배를 피우고 싶어 하는 <뜻>을 [그만=그+만] 두게 해서, 담배를 피우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다.
여기서 '그'는 김양욱 님께서 올린 글에 설명이 등장합니다.
이 — 바로 눈앞에 있는 것.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것. 불림은 달라도 바로 곧 눈앞에 또렷하다.
저 — 저기 멀리 있는 것. 가뭇가뭇하다. 잘 모를 수도 있다. 짐작하거나 넋으로 가늠하는 것.
그 — 화자가 머릿속에 이미 품고 있는 바로 그것. 그리듯, 그리워하며, 그릴 수 있는 것. 앎의 잔재. 넋의 값. 여김의 실체.
머릿속에 존재하는 그 실체가 '그'입니다.
'-지'와 다른 '-고'가 등장합니다.
“담배를 피우고 말았다.”에서 [피우고]는 담배를 피우고자 하는 <뜻>이 이미 <일>로 일어나서 [-고]의 상태에 있는 것을 나타내는 말이고, [말았다]는 담배를 피우고 싶어 하는 <뜻>이 <일>로 이루어져서 끝을 보았다는 것을 나타내는 말이다. 사람이 담배를 피우고 싶어 하는 <뜻>을 [그만=그+만]에 두지 않고, 스스로 몸을 놀려서 <뜻>을 하나의 <일>로 이루어지게 한 것을 말한다.
우리말인데 참 낯설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한국말이지만, 제가 쓰고 있지 않았기에 '우리말'이라고 할 수 있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글이 길어져 최봉영 선생님 페북 글의 다음 부분은 이후의 글에서 따져 봅니다.
[1] 그리고 속말로 '마치다도 같은 계통인가?' 묻게 됩니다.
(10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11. 차려진 바람과 막연한 바람 그리고 바람의 시각화
12. 한국말 차림의 뼈대는 S+O+V, 영어는 S+V+O
13. 섬을 보며 서다를 말하고, 감을 보며 가다를 말하다
14. 함께 써야 말이 되는 이치 그리고 씨말을 따져 보는 일
16. 지식과 정보의 바탕에 놓인 줏대, 감정, 지식, 성향
18. 차림의 의미를 따지기 위해 지난 기록을 추려 보다
19. 내가 가진 역량과 욕망과 여건이 결합하는 성취(成就)
20. 줏대와 관점: 비슷한 듯 다른 두 낱말을 두고 따지기
21. 항상 내 재미를 스스로 찾을 수 있어야 하는 걸까?
22. 사람이 말을 만들어 쓴다는 것의 의미를 따져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