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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영회 습작 Feb 05. 2023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기쁨

비종교인으로 읽은 <욕쟁이 예수> 6

이 글은 지난 글에 이어 <욕쟁이 예수> 중에서 '연인 예수'와 '파티 보이 예수' 내용 중에서 밑줄 친 내용을 기준으로 메시지를 도출하고 생각을 덧붙인 글이다.


주의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깊이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구절이 등장한다.

사랑이 내게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주님에게서 시작된다는 것을 이 우매한 자가 깨닫기까지는, 보통 연인이 결혼해서 애를 낳고 유치원에 보내는 정도의 긴 시간이 필요했다.

오히려 저자인 목사님도 나와 같은 우매함을 겪었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생긴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주의 사랑'과 내가 인식하는 '주의 사랑'은 분명 다를 것이다. 나는 다만 사랑이 내 결심이나 충동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나를 통해 실현되는 어떤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그렇게 자의를 낮추고 상황에 녹아들 때 오히려 내가 원하던 것보다 더 나았다는 체험도 있는 듯하다.


저자가 이를 인식시켜 주는 구절이 있다.

사랑은 이 세상에서 그 어떤 것도 대체할 수 없는 한 사람을 향한 끊이지 않는 관심과 수용이다. <중략> 대가를 치르지 않으려는 것을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들 문구가 등장하기 전에 맥락을 요약한 소제목이 있다. 바로 셀렘이 다한 곳에 사랑이 싹트다. 돌아보면 젊은 날에 들떠서 했던 '사랑'은 오래가지 않았지만, 그 사랑이 다한 후에 비로소 사랑의 다양한 양상을 배우게 된 듯하다.


일과 생활은 나누어질 수 없다

더불어 <가족의 존재에 관심을 두는 행동하기>편을 쓰며 자각한 대로 나에게는 사랑이 아직 많이 부족하고, 서툴다.


그렇게 부족한 사랑으로도 다음 문장에서 나에게 주어진 듯한 사명을 발견할 수 있음은 다행이다.

오늘날 우리네 삶을 보라. 계몽주의와 산업혁명 이후 이원론의 영향으로 일과 사랑, 일상과 낭만, 노동과 여가가 엄격히 나뉘었다.

사회 초년생 시절 선배들이 신봉하는 '공사 구분'을 역겨워 한 이유를 당시는 몰랐다. 그리고 요즘 언론에서 말하는 '워라밸'도 마음에 들지 않는 표현이다. 기본적으로 이원론의 틀을 강요하는 프레임을 예나 지금이나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것이다.


물론, 나 역시 사회적 산물이고 직업 공간에서 암묵적으로 배워온 관습에 완전히 자유롭지도 못할뿐더러 배격하자는 혁명가는 아니다. 내 안의 울림이 그랬던 것이고 앞으로 삶에서 더 나은 길을 찾고 싶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기쁨

나에게 가장 취약한 활동들인데, 나도 이제 목사님의 견해를 따르고 실천하고자 한다.

자매형제들과 더불어 자잘한 일상사를 경축하는 축제적 경건의 소유자들이 훨씬 더 믿음을 잘 지켜낼 것이라고 보는 것은 나 하나뿐인가?

당장 오늘 저녁 오랜만에 동네에 찾아온 이웃 가족과의 저녁부터 그 자리에 온전히 있는 시도를 해봐야겠다. 그리고, 아래 문장에서 느껴지는 반전이 바로 내가 부족한 부분과도 연결되는 듯하다.

동티모르 주민들은 거기에 '축제'를 추가해 달라고 한다. "이 무서운 죽음의 벌판에서 무슨 축제냐"라고 반문하는 실무자에게 주민들은 "지금 우리가 살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기쁨"이라고 답한다.

더불어 나에게 유머 감각이 부족한 특징도 이와 관련이 있을 듯하다. 그런데 다음 문장을 보면 실상은 더 심각한 듯도 하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보면 축제의 삶을 누리는 이가 너무 적다. 먹고살기 위해, 집 장만을 위해, 자녀 교육을 위해, 노후를 대비하기 위해 즐거움과 기쁨은 간 곳 없고 노예를 방불하게 산다.

다음 문장은 나에게도 그대로 해당한다.

휴가를 가지만 자본이 기획한 유사 축제pseudo-festival에나 참가하는 것이 우리네 현실이다.

자본이 마련한 유사 축제에 참석하는 대신에 있는 그대로 주어진 축제적 삼을 살 수 있을까?

하나님이 선사하려는 축제적 삶은 <중략> 정지용 시인의 '향수'의 한 구절을 빌리자면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꽃피는 삶이다.


비종교인으로 읽은 <욕쟁이 예수> 연재

1. 그들이 뭐라 하든 자신이 되어라

2. 분노의 속살을 어루만지라

3. 신앙은 긴장을 살아내는 예술

4. 내 경험 속에 내가 현존하기 위하여

5. 삶의 방식으로서의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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