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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식공장장 Jun 18. 2018

왜 번역을 보며 화를 내야 하는가?

우리가 모를지도 모르는 번역 이야기

해당 내용이 오래되어 새로운 내용으로 영상을 다시 만들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tp0xmLRNcRM


** 유튜브 채널의 좋아요, 구독, 알림설정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https://www.youtube.com/channel/UCDv0ZRVwcRvI2xfpEh5EPBw/videos



<외국어 편 11>


1. 외국어를 배울 때 제일 먼저 해야 할 일? 

2. 외국어 공부에 좋은 드라마 : 영어 편

3. 외국어 공부에 좋은 드라마 : 결혼으로 배우는 일본어

4. 외국어 공부에 좋은 드라마 : 중국어와 중국문화

5. 외국어와 문화장벽의 상관관계?

6. 외국어 배울 때 콘텐츠 잘 골라야 하는 이유

7. 보면서 배우는 외국어, 이게 최고다

8. 외국어 공부하기 좋은 영화란? : 영어 편

9. 외국어 공부하기 좋은 영화란? : 일본어 편

10. 외국어 공부하기 좋은 영화란? : 중국어 편

11. 왜 번역을 보며 화를 내야 하는가?


[출처 : 어벤저스: 인피니티 워]


번역에 대한 이슈


최근에 영화 번역이 잇달아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하나는 <데드풀>. 데드풀이라는 히이로 역사상 전무한 캐릭터의 개성을 한국인이 그대로 느낄 수 있는 훌륭한 번역으로 표현한 이 작품은 '초월 번역 : 원문보다 뛰어난 번역'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칭송을 받았다.


하지만 또 하나의 이슈 <어벤저스 3>는 정 반대의 평가를 받았다. 기존에도 원문을 너무 잘라먹는 데다 관용구 표현을 자주 틀려서 오히려 원작의 이해를 어렵게 만든다던 평을 받던 이 번역가의 번역은 어벤저스 3의 화제성 때문에 더욱 주목을 받았다. 


닉 퓨리의 '이런 X (Mother F...)'를 어머니로 번역한 것과 같이 캐릭터의 특성을 이해해야 나오는 번역은 다른 문맥을 찾아봐야 한다 치더라도 (이 분이 기존 작품들의 번역자라는 건 일단 무시하자) 기존에도 Water is wet (당연한 사실이라는 뜻의 관용구) 등을 자주 틀리던 번역가는 Endgame (최종단계라는 뜻의 관용구)라는 작품의 핵심을 꿰뚫는 중요 대사를 '이제 끝났어'로 오역함으로써 어벤저스 4편에서 극적으로 이뤄질 대 반격을 묻어버렸고, 네티즌들 특히 마블 유니버스 팬의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오죽 유명했으면 어학원 마케팅에 쓰일까 [출처 : YBM어학원]

하지만 이후에 일반 소비자들의 입장에서 이해하기 힘든 일이 벌어진다. 마블 유니버스의 한국지역 배급사인 

디즈니코리아는 기존 번역가의 교체는 없다고 단언했고, 이로 인해 여러 가지 잡음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궁금한 것, 왜 번역가의 교체는 없을까?


사실 이런 멘트는 비단 영화뿐만 아니라 게임, 만화 등 전방위에서 벌어진다. 가끔 커뮤니티에서 이슈가 되거나 업체에 항의해도 번역가의 교체는 없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며 요즘에는 아예 그런 질문에는 답변조차 하지 않는다. 


이런 관점을 이해하려면 이 시점에서 한 번 번역이라는 것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비록 저자는 스타 번역가는 아니지만 90년대 말부터 학비를 벌기 위해 번역을 간헐적으로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으며 관련 업무 경험도 있으니 업계 관계자의 의견으로 봐주시면 좋겠다.



좋은 번역이란?


우선 알아둬야 할 것은 좋은 번역이라는 것은 대상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만화책을 본다면 원칙적으로는 작품을 잘 이해하고, 세계관에 맞는 번역을 충실히 하는 것이 기본이 된다. 원문이 다섯 줄인데 번역물이 두 글자인 경우, 아예 식자가 빠져버린 것에 팬들은 민감하게 반응한다. 두어 번 더 생각하게 하는 최악의 번역인 직역도 싫어한다.


이렇게 하나만 빼먹어도 독자들은 크게 반응한다 [출처 : 헌터헌터 (구판)]


암수라니...  직역도 문제가 된다. [출처 : 전국바사라]

하지만 기술문서에선 이게 꼭 그렇지도 않다. 예를 들어 피스톤 운동을 표현한 기술문서가 있다고 하자. 이때 문서에 태핏(Tappet)-푸시로드(pushrod)-로커암(Rocker Arm)이라고 적혀있는데 이걸 철자 - 밀대 압봉 - 요동 완부로 의역한다면 번역으로써는 문제가 없지만 기술자 입장에서는 100% 오역이다. 그래서 기술번역에선 전문용어가 난무하는 직역이 더 난무하며 심지어 용어만 직역하고 문장은 의역하는 것도 지양되는 경우가 있다. 주 소비층이 어설픈 직역에 익숙한 경우이다. 


좋은 번역은 고객의 입장을 고려한 번역이다.

우선 저자도 살아오면서 꽤 많은 오역을 한건 사실이다. 그리고 지금도 자면서 이불 킥을 하는 바람에 이불이 남아나지 않을 정도다. 어쨌든 오역은 사람이라면 할 수 있는 실수이며 성장하는 과정에서의 진통이다. 


다만 고객의 입장을 무시한 번역은 절대 프로라면 해서는 안 되는 실수라고 생각한다. 이번에 모 번역가 강판이 국민청원에 까지 올라간 이유는 아마 고객들이 자신들을 고객으로 보지 않는 번역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왜 이런 번역이 벌어질까?


1. 환경

우선 환경적인 제약을 들 수 있다. 일례로 저자는 거의 20여 년 전에 대형 게임 번역 프로젝트를 맡은 일이 있었다. 이유는 기존의 번역자가 도망가버렸기 때문이다. (텍스트 내용은 계약이 있어 공개할 수 없지만) 이 게임의 모든 번역 게시물은 요즘 번역 텍스트처럼 작품의 흐름에 따라 배치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각 캐릭터의 대사가 모두 모여있는 형식이었다. 그래서 번역을 하려면 번역가가 대사를 하는 상황을 상상해서 해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냥 번역해도 작업량을 생각하면 그냥 번역해도 두 달, 전후관계까지 조립해가며 작업하면 넉달이 걸릴 것을 한 달에 맡겼으니 번역가가 도망갈 만도 했고, 결국 그게 다 피하다 보니 피할 데가 없던 대학생에게까지 떨어진 것이다. 


번역 환경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환경과 다르다. 


예를 들어 영화 번역의 경우 요즘은 안 그러지만 예전에는 영상도 없이 대본만 휙 던져주거나, 녹음된 음성만 듣고 번역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었다. 소위 어학원에서 쓰는 찍찍이라는 테이프를 주는 것이다. 쉽게 되감아서 듣기 좋다는 소소한 장점이 있다.


하지만 테이프에 영상이 있을 리 없다. 그래서 소리에서 Fall이라고 나오면 이게 어디서 떨어지는 건지 상상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무대가 도시라서 건물에서 떨어졌다고 번역했더니 막상 개봉된 후 화면을 보니 소리 없이 폭포에서 떨어지는 장면이더라...라는 웃지 못할 사례도 있었다. Bus Boy라고 해서 차장인가? 라고 생각했더니 호텔의 요리운반원이 튀어나오는 경우도 있다. 


이런 문제점을 깨달았는지 요즘에는 카세트 테이프가 아니라 녹화영상이나 스트리밍으로 번역을 한다. 하지만 그것도 보안을 위한 필터링이 되어 있어서 화면을 보면 회색 화면(아마도 배경)에 희뿌연 원(아마도 얼굴)이 돌아다니는 것들도 있다. 이걸로 캐릭터의 감정을 캐치한 번역을 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그 외에 또 하나 알기 쉬운 예를 들자면 게임이다. 게임은 개발과정에서 얼마든지 텍스트 내용이 바뀔수 있다. 그런데 이걸 번역가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면, 즉 PM이 무능하면 결과적으로 게임에 버그가 넘쳐나게 된다. 



2. 사업구조


우리는 하나의 작품이 번역된다면 사전에 충분한 작품 분석을 거치고, 방향성을 잡은 후에 번역에 들어가는 것을 생각한다. 


하지만 시선을 돌려서 우리 회사 생활을 둘러보면 답이 나올 것이다. 회사에서 일은 언제나 퇴근시간 또는 막판에 임원회의에서 결정 나야 떨어진다. 언론에 보도자료 다 뿌려놨는데 출시일 연기를 해서 언론에 사과 전화를 하는 것은 무용담 축에 끼지도 못한다.


우선 영화의 경우는 한국이 영화가 잘 팔리는 시장인지라 동시 개봉 혹은 최초 개봉인 경우가 많은데 제작자 입장에서는 오랜 기간 제작한 상황이라 빨리 개봉해서 돈을 벌어야 하니 개봉까지 여유가 없고, 당연히 한국의 번역가들도 그 정도의 여유가 없다. 반년 전에 개봉해서 이미 봤을 수도 있는 일본 영화의 한국 개봉 전 번역 같은 상황이라면 모를까 오역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게 만화책이나 게임 쪽으로 가면 정말 심각한 상황이 된다. 만화책의 경우 워낙 원가구조를 낮추는데 혈안이 되어있다 보니 높은 품질로 유명한 문학과 비평사의 자회사인 애니북스를 제외하면 들어가는 돈이 정말 적다. 그래서 번역에 주어지는 시간은 1~2일 정도로 번역가는 이 시간 내에 작품 조사하고 번역까지 다 마쳐야 한다. 이게 대사가 적은 작품이라면 모를까 '명탐정 코난', '헌터 헌터'같은 작품이면 번역가는 아마 미칠 노릇일 것이다. 


이런 책을 2일만에 번역하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출처 : 명탐정 코난]


참고로 이렇게 대사가 많아도 번역료는 동일하다. 다만 그림이 대부분인 만화책의 번역료는 확 내려간다 (왜?) 그리고 객관적인 관점으로 봐도 높은 수준의 번역료는 아니다. 


결국 문화콘텐츠를 파는 기업의 낡은 사업구조가 오역을 낳는 셈이다.

여기서 비교적 자유로웠던 것은 게임이었다. 예전에는 보통 해외에서 게임이 출시된 후 반년에서 1년 뒤에 한국어판이 나오는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도 요즘에는 옛말, 모바일 게임 환경도 그렇고 콘솔 게임도 요즘에는 전 세계 동시 발매로 나오는 경우가 많아서 시간이 촉박해졌다. 


심지어 어떤 프로젝트는 A4용지로 2000페이지가 넘는 번역을 3주 만에 해야 했는데, 저자같이 게임 번역을 오래 한 사람도 하루에 20~40페이지 이상을 못한다. 즉 100일을 21일로 줄이기 위해 여러 번역사에게 외주를 주고, 그나마 그렇게 번역자가 남아도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정은 빠듯하다. 퀄리티가 낮아질 수밖에 없다.


결정적으로 게임의 경우 번역료가 너무 짜다. 보통 영어의 경우는 단어별, 일본어와 중국어의 경우는 띄어쓰기가 없어서 폰트 사이즈가 지정된 페이지 별로 단가가 매겨지는데 저자가 경험한 업체 중에서 번역료를 평균단가 기준 50% 이상을 챙겨주는 게임사는 한 손에 꼽는다. 저자는 업계 최저 번역료 1/5 수준의 번역료로 두 달 작업분을 2주일에 해달라는 의뢰까지 받아봤다. 


그래서 정말 잘하는 번역사들은 단가가 높은 쪽으로 옮겨간다. 특히 일본어 전문가의 경우 공부는 많이 해야 하지만 게임보다 압도적으로 단가가 높으면서 클라이언트가 점잖은 헬스케어로 옮겨간다. 저자가 경영, 경제, 헬스케어, IT로 갈아탄 이유기도 하다. 


특히 영화제목은 완전히 수입사의 마케팅을 따르기 때문에 번역자는 뭐라고 하지도 못한다 [출처 : 가을의 전설]


3. 시장 반응, 소비자 책임?


사실 기업은 물론 번역가는 번역물에 대한 피드백을 철저하게 한다. 그런데 이 피드백 결과가 그다지 혁신의 필요성을 못 느끼게 한다. 

번역이 잘못되어도 팔리는 작품은 팔리기 때문이다.


더 많이 볼 거도 없이 오역 논란으로 말이 많은 어벤저스 3가 역대 역대 외화 흥행 2위, 역대 최초 시리즈 연속 천만 관객 돌파를 동시에 세웠다. 즉 데드풀처럼 우수한 번역이 화제가 되기보다는 고객이 상관없이 보는 경우가 더 많다는 이야기다.


아무리 저 세상에서 이백, 두보가 눈물을 흘릴 번역을 해도 작품이 꽝이면 안 팔리고 번역을 어떻게 하든 대충 볼 수만 있으면 팔린다. 즉 번역의 퀄리티는 매출에 큰 영향을 주지 않고 이러다 보니 사업을 진행하는 입장에서는 위험을 무릅쓰고 번역 퀄리티를 개선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  



문제는 시장이 변했다는 것


결국 번역시장이 바뀌지 않는 이유는 이것도 결국 비즈니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비즈니스 환경은 그들이 변하지 않는 동안 계속 바뀌어왔다. 


한 예로 만화시장이 있다. 90년대 초, 만화출판사들은 대여시장을 엄청나게 싫어했다. 한 권 팔고 여러 명이 돌려보는 문화는 매출이 떨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화책 소장을 외쳤었다. 


하지만 97년 외환위기로 인해 대량 실직한 사람들이 도서대여점을 차리고, 이게 엄청난 매출을 올리게 된 후 만화 출판사들의 방침은 어떻게 든 볼 수만 있으면 되니 원가를 최대한 낮추는데 쏠렸다. 심지어 갑자기 시리즈가 인쇄 시 잉크가 번지는 갱지로 바뀌는 책, 이중 커버를 빼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요즘 만화시장은 분위기가 다르다. 요즘은 인터넷 불법 스캔 물이 워낙 활발해서 만화팬이 아닌 사람은 그냥 인터넷에서 스캔본을 본다. 즉 만화를 사랑하는 사람만이 책을 사는 세상이 온 것이다.


하지만 출판사의 사업구조는 그렇게 바뀌지 않았다. 예전부터 소장이라는 틈새시장을 개척해 온 애니북스라면 모를까 대부분은 소장 문화에 맞게 가격만 올리고 마니아가 좋아할 만한 한정 특전만 제공하는 마케팅 잔재주를 부릴 뿐 오역 번역가는 그대로 쓰고 저질 출판물을 쏟아냈다. 이에 네티즌들은 출판사가 띠지 등으로 꽁꽁 숨겨놓은 번역자의 정보를 공유해서 피해자(?)를 막고 차라리 원서를 사는 식으로 대응했다. 


아니면 저자처럼 만화책 소장을 포기해 버리던가.


예전에야 그냥 경제발전기라 일에 치였고, 문화는 그저 여유 있는 사람의 사치였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게다가 한국은 유난히 외국어가 가능한 사람이 많은 나라고, 3개 국어 이상이 가능한 사람들도 널린 나라다. 문화를 알고, 그 문화를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소비자가 오역에 불만을 가지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미군의 전략무기 체계에 대해 한번만 읽어봐도 나오지 않았을 오역 [출처 : 트랜스포머2]

앞으로 소비자의 인식이 발전할 것을 위해 번역사를 양성할 것인가, 아니면 사업적인 면만 고려해서 기존의 번역을 유지할 것인가?


현실은 전자를 인식한 후자일 것이다. 고객의 피드백을 신경 쓰지만 크게 반영할 수 없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며 여기에는 뿌리 깊은 이유가 존재한다. 이 글이 호응이 좋다면 다음에는 번역가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해보려고 한다. 그 글을 읽으시면 이런 현상에 대한 이해가 생길 것이다. 


역사 리더십 경영 매거진의 테마를 바탕으로 새로 엮어낸 <조선 리더십 경영> 이 와이즈베리/미래엔에서 2018년 11월 하순 출간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메일 : inswrit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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