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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lato Won Jan 08. 2019

2. ‘자유를   포기할 자유는 없다’고 외친 밀

Plato Won 作,백자달항아리는 아름다움에서 자유롭다.
자유론의 저자 존 스튜어트 밀

'배부른 돼지가 되기보다는 배고픈 인간이 되는 편이

낫고, 만족해하는 바보가 되기보다 불만족스러운

소크라테스가 되는 것이 낫다.'

자유론의 저자 존 스튜어트 밀이 남긴 말이다.


존 스튜어트 밀은 1806년 영국 런던에서 9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아버지 제임스 밀은 당시 영국을

대표하는 지식인들 중의 한 명으로,

공리주의 벤담과 경제학자 리카르도와

친밀히 교류했다.


아버지 제임스 밀은 자신이 직접 아들의 교육을
전담하였는데, 존 스튜어트 밀의 천재 학습법은
유명하여 시카고 대학의 허친슨 총장이 이 교육법을
도입하여 삼류 대학에 불과했던 시카고 대학을
일약 노벨상 수상자를 91명이나 배출한
명문대학으로 발전시켰다.


'나는 진정한 인생의 목적이라 부를 만한 것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세계의 개혁자가 되는 것이다.

나 자신의 행복은 이 목적과 전적으로 일치해야 한다.'


밀은 20대에 벌써  '인간의 행복이란 무엇인가'라는

사색적 질문을 거듭하였는데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의 공리주의 벤담의 저서가 그에게 인생에 대한 뚜렷

한 목표를 가질 수 있도록 해 주었다고 자서전에서
밝히고 있다.


밀은 어렸을 때부터 엄청난 양의 지식을 습득하였

는데, 아버지 제임스 밀로부터 전수받은 천재 학습법

이 그의 지식 축적에 큰 역할을 하였다.


밀은 세 살 때부터 그리스어를 배우기 시작하여

여덟 살이 될 때까지 이솝 우화들, 헤로도토스 역사,

플라톤의 국가론을 그리스어로 읽었다.


열두 살에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을, 열세 살에

정치학과 경제학을 배우기 시작하여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을 읽었고 열여섯 살 때는 계몽주의 철학에

심취하였다.


훗날 그는 자서전에서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일관된 신념으로 자신의 글쓰기에 온갖 노력을

다 한 사람', '나는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단 한 번도 크리켓 놀이를 해 본 적이 없다.'라고

기술할 정도로 아버지로부터 특별한 교육을

받아 지적으로 성장한 조숙한 천재였다.


그러나 밀은 너무 이른 성공에 만족해 버린 자신

에 대해 사상적 성장 외에 감성적 성숙에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자각을 갖게 되면서 우울증

과 신경쇠약에 시달리게 된다.


그 후로 밀은 모든 문제를 논리와 경험만으로
해결하려 했던 자신의 생각을 수정하게 된다.

자연을 찬미한 워즈워드와 바이런의 시에서

위로를 받고 기쁨을 발견하며 감정을 배양하는

수단으로써 시와 상상력의 가치를 과소평가

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25세가 된 밀은 운명적으로 유부녀
해리엇 테일러를 만나 21년 동안이나 정신적

교류를 이어갔으며 그녀의 남편이 죽은
다음 해에 결혼을 하였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그녀의

죽음으로 결혼 생활은 7년 만에 끝나고 만다.


두 사람은 사상적 동지이자 삶의 동반자였으며

자유론을 공동 집필하였다고 밀은 자서전에서

밝히기도 하였다.


'나 보다 더 뛰어난 사상가이며 내 생애의 영광이며,

으뜸가는 축복으로 나에게는 하나의 종교이며,

가치의 근본이며, 내 생애의 표준 같은 사람'

이라고 아내를 극찬한 밀은 프랑스 아비뇽에서

말 년에 연구에 몰두하다 갑자기 병을 얻어

운명하고 만다.


그의 유해는 평생 그가 사랑했던 유일한 사람,

해리엇 테일러의 묘 옆에 나란히 누워 잠들었다.


예순일곱 살의 나이로 진리에 대한 뛰어난
능력과 자유에 대한 열정적 마음을 가졌던
밀의 생애는 자유에 대한 그의 신념을 실천

하는 여정이었다.


'자유를 포기할 자유는 없다.'


밀에게 있어서 자유란 문명사회가 지속적으로

진보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개인의 자유란 국가 권력에 의해 침해될 수도

있지만 더 심각한 것은 다수의 사회 여론에

의해서 침해되는 것이라는 밀의 통찰력은

탁월했다


개인은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자유를 가져야 한다.

만일 그 의견이 옳다면 인류는 진리 발견의 기회를

가질 것이며, 설사 틀렸다 하더라도 다수의 옳은

견해의 정당성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

아니겠는가?


150년 전 자유에 대한 밀의 사유는

자기 정체성 없이 사회의 불편한 진실에 휩쓸려

살아가는 이 시대의 지성인들에게

명치를 때리는 강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다수의 견해가 진실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

진실은 군중 속의 단 한 사람이 가지고 있을 수 있다.


여론에 휩쓸려 군중심리에 지배 되면

히틀러의 나치즘 대변자인 괴벨스의 세 치 혀에

놀아나는 신세가 될 수 있다.




 ᆢPlato Won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중


1.   다수의 횡포가 갖는 위험성에서 피어난 자유론

2.   ‘자유를 포기할 자유는 없다’고 외친 밀

3.   능력이 허용하는 최고 수준의 합리성을 확보하는 방법

4.   인류는 자신의 잘못을 고칠 수 있는 자정 능력이 있어

5.   박해에 쓰러져 간 진리의 예들

6.   신앙의 유무로 행해진 고약한 법률적 박해

7.   다수의 여론이 행하는 폭력의 피해

8.   진리는 치열한 토론의 강을 건너야

9.   치열한 논쟁 속에서 피어난 확고한 믿음

10.   진리와 오류 사이에서 논쟁이 필요한 이유

11.   다른 의견을 가질 자유와 그것을 표현할 자유

12.   스스로 판단해서 결정하는 개별성이 인류를 발전시켜

13.   개인의 다양성이 다수의 여론에 맞설 때

14.   사회가 개인에 대해 간섭할 수 있는 한계는?

15.   개인의 행동이 간섭받는 이유는?

16.   개인의 취향에 관계되는 것을 사회가 간섭할 수 있을까?

17.   『자유론』을 현실에 적용할 경우 생기는 문제들

18.   여성의 권리에 대한 밀의 생각

19.   공리주의적 접근으로 본 밀의 자유의 개념

20.   인간의 특성과 윤리의 본질 

21.   윤리와 사상에 대한 개괄적 이해

22.   현대인들이 밀에게 진 부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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