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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토크뷰_마케터] 넉살 좋은 마케터

소만사 김현정 팀장

by 친절한 마녀

스물여덟 번째. 다정함이 이긴다

다정-하다(多情-하다)
1. 정이 많다.
2. (사람이나 그 태도가) 정이 많아 따뜻하고 친절하다.


요즘 '다정'이라는 단어를 자주 떠올립니다. 사는 현실이 그렇고 일이나 관계에서 다정함이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 세상에 벌어지는 일들을 통해 깨닫기 때문입니다. 다정한 사람에게 끌리고, 다정한 말에서 위로를 받습니다. '다정하다'라고 말하면 따스한 느낌이 드는 이유입니다. 책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에는 다음과 같은 다윈의 말이 나옵니다.


진화라는 게임에서 승리하는 방법은
협력을 꽃피울 수 있게 친화력을 극대화하는 것

- 다윈


"네안데르탈인과 달리 호모 사이엔스는 친화력과 협력을 기반으로 생존에 유리하게 진화했다."라고 합니다. 이어 책에서는 "우리는 만나고, 눈을 마주치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오직 다정한 것만이 살아남을 수 있으므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늘 협력을 기반으로 일하고, 일해야 하는 사람들은 어떨까 궁금합니다. 특히 마녀와 같은 일을 하는 마케터들에게 '다정함'은 어떤 의미인지 묻고 싶어집니다.


마케팅이란 일이 재미있을까? 끊임없이 사람들과 소통하는 일이 힘들지는 않은지? 누구와 함께 어떻게 일하는지? 어떤 고민을 현재 하고 있는지? 마케팅을 하면서 느끼는 감정들은 어떤 모양일지? 지금하고 있는 일들에 지치고 재미가 없더라도 현재 하고 있는 일을 소중히 여기며 더 나은 성장을 추구하는 마케터들을 만날 때면 감탄과 존경의 찬사가 절로 나옵니다.


오늘도 그런 마음으로 정보보호 기업 ‘소만사’의 마케터, 김현정 팀장을 만나보았는데요. 뉴에이지 뮤지션 '피아노 포엠'의 연주곡, <널 부르면 따스해지는 느낌이 든다>가 잘 어울리는 만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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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 소만사라는 개인정보보호 회사에 소속 중인 김현정이라고 하고요. 재직한 지는 제가 2013년에 들어왔기 때문에 올해로 11년 차네요. 신입사원으로 시작해서 지금은 차장 겸 팀장이 되었습니다.

소만사가 첫 직장인가요?
- 아니오. 요즘 말로 중고 신입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예전에 프리존이라는 IT 모바일 서비스가 있었는데, 그 서비스 기업에 사업 기획으로 입사를 했었어요. 피처폰에서 인터넷을 연결해 만화나 소설, 뉴스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거였는데, 2010년에는 이미 스마트폰이 나왔던 시기여서 사실상 사양 사업으로 접어들었던 때였죠. 입사 후 1년 정도 고민을 하다가 좀 더 발전 가능성이 있는 산업으로 뛰어들자, 해서 퇴사하고 정보보안 업계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기획에서 마케팅 쪽으로 전직을 한 이유가?

- 기획에서 사업성으로 이어지는 일이 별로 없었어요. 전 직장 회사 사업이 사양 사업이기도 했고, 그러다 보니 허무하고 보람도 없고 '내가 왜 이렇게 뭔가 성과가 안 나오는 일을 하고 있나' 현타가 왔었어요. 퇴사하고 채용공고를 찾다 보니가 마침 마케팅 본부가 눈에 띄는 거예요. 그때 다행이었던 게, IT 마케팅이었다는 건데, 제가 대학교 때 도움이 될까 싶어서 사실은 마케팅 동아리 활동을 했었거든요. 이전 회사에서 IT 기획을 하면서 어느 정도 쌓은 지식도 있겠다, 두 경험을 합치면 좀 버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익숙하니까. 그래서 지원하고 입사를 해 마케팅을 시작하게 된 거예요.



안주하지 않고 빠르게 판단하셨네요. 결과적으로 좋은 결정을 하신 거라 믿겠습니다. 하하하

경력 소개 외에 김현정이라는 사람에 대해 묻는다면 어떤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싶나요?

- MBTI로 설명하자면 인프피(INFP)이고요. 혈액형으로 설명하자면 AB형입니다. 왼손잡이에 마이너(minor)한 부분들을 다 가지고 있는 사람이죠. 그래서 학창 시절에도 항상 '좀 독특하네'라는 평가를 많이 받았었습니다.

'독특하다', 어떤 면에서 독특했는지 궁금합니다.

- 저는 공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감상을 많이 하고, 상상도 많이 하고. 남들이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부분에 집착을 한다던가... 그런 부분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냥 관심이 있는 정도인가요? 아니면 집착이라고 얘기하는 거면, 그걸 해결해야 되는 정도인가요?

- 남들이 관심을 크게 가지지 않는 부분에 관심을 좀 많이 가졌던 편인 것 같습니다. 관심이 있으면 행동을 취하는 편이에요. 학창 시절 친구들이 공부나 연예인들 같이 대중적인 부분에 관심을 가졌던 반면에, 저는 환경에 관심을 가졌어요. 이상하게 환경 다큐멘터리 같은 것을 보면 마음에 동요가 많이 일더라고요.


빨대 같은 플라스틱을 잘 안 쓰고 텀블러를 가지고 다녔어요.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남들이 그렇게 흥미롭지 않아 하는 부분에 대해 많이 관심을 가지고 실천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다른 친구들의 눈에 제가 좀 특이하다, 이상하게 보였던 거죠. 제가 어렸을 당시만 해도 생각보다 다양성이 그렇게 존중되지 않았던 때라 제가 좀 특이한 것에 관심 갖는 아이로 비친 게 아닌가 싶어요.



지금은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고, 실천하는 분들도 많은데, 그때는 그랬을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특이하다, 누군가 '너 왜 이렇게 특이해?'라고 하면 어떤 생각을 하나요?

- 처음에는 돌연변이 같은 느낌도 있었기 때문에 숨겨야겠다, 이런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안 숨겨지더라고요. 어쨌거나 드러나게 돼 있고, 그래서 저도 그걸 즐기는 식으로 바뀌고 있어요. 일례로 환경 이야기를 했지만, 서브컬처(subculture. 하위문화) 부분에 흥미가 많고, 많이 찾게 돼요. 이제는 남들이 관심을 덜 가지는 것들이 '그냥 그게 내 취향이구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취향에 맞는 취미 활동이 있다면?

- 저는 밴드를 좋아해요. 인디밴드 공연도 많이 다녔어요. 지금도 다니고 있고요. 만화라든지 애니메이션도 좋아하고요. 소수자 권리 같은 것도 좀 궁금해서 관심 가지고 주의 깊게 쳐다보는 편입니다. 대중적인 부분과 거리가 있는 것들을 좀 많이 접했고 배웠는데, 이런 것들이 저는 좋더라고요.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통해 다양하게 볼 수 있는 시야가 좀 생겼고, 의외로 회사 내부 분들이랑 대화를 나눌 때 저와 취향이 맞는 분들을 알게 되어 반가울 때도 있습니다. 하하하.


나의 취향이 일에 반영이 되기도 할 텐데요. 혹시 그런 사례가 있을까요?

- 지금 당장 생각나는 것은 사회공헌 활동들이에요. 재능 기부도 많이 고려를 했었고, 그냥 단순하게 봤을 때는 소만사 제품 자체로 기부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도 고민을 했었습니다. 대표님과 제 아이디어를 잘 조합해 진행했던 사례가 하나 있었는데, 소상공인에게 개인정보 유출 방지 솔루션을 제공하는 거였어요. 소만사에 프라이버시아이(Privacy-i)라는 솔루션이 있는데, USB에 담아 사용 편리성을 높여 제공하는 것이었죠.


아무래도 소상공인 분들은 개인정보를 보유하고 있더라도 상황파악, 관리 및 삭제 등에 어려움을 겪으실 수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도와드리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생각을 했던 것이었죠.


시도했으나 이루지 못한 건도 있는데, 제가 동물 보호에도 관심이 있어서 저희 비즈니스 활동과 연계를 시켜보려 한 적도 있었어요. 직원분들이 1년에 한두 번씩 꼭 미국 출장을 가시는데, 그때 해외로 입양 보내는 강아지들을 저희 직원분들이 데리고 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문제는 출장 일정이 촉박하게 진행되다 보니 강아지 입양 일정과 맞추기가 어려웠어요. 아직 이루지는 못했지만 계속 시도를 해보고 싶습니다.

그런 식으로라도 앞으로 마이너 한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제가 관심 있는 것들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들을 계속 찾아보고 시도해 보고 싶습니다.

그런 아이디어를 제공했을 때 회사에서 승인을 하나요?

- 다행히도 저희 대표님께서 열린 마음을 가지고 계세요. 긍정적이시라, 뭔가 제안을 하면 "나도 들어본 적 있어. 실행 가능하면 해봐" 이런 식이세요.


멋진 리더시네요. 해외 입양 보내는 강아지들을 개인이 데리고 갈 수가 있나요?

- 네. 동물보호단체 등 해당 기관에 연락해 저희가 항공편이 있다고 알려드리면, 거기서 서류 작업이랑 입양 가는 친구의 검역까지 다 정리해 주세요. 저희는 그냥 30분만 더 일찍 가면 돼요. 보통은 개인적으로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당시 저희 회사에서 7-8분이 출장을 갈 계획이 있어 제안을 했었어요. 결국 이루지는 못해서 아쉬웠지만, 시도를 계속하고 있으니 언젠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몰랐던 내용이네요. 동물들의 해외 입양을 개인들이 봉사 차원에서 돕고 계시다니. 이 인터뷰 글을 보시는 분들 중에 관심 있는 분들이 직접 참여해 보시면 좋지 않을까 합니다. 근데 큰 장애물은 없어 보이는데, 일정 맞추기가 많이 어려운 건가요?

- 아무래도 친구들이 가야 하는 시기와 저희 출장 일정이 딱 맞아떨어지지가 쉽지는 않고요. 또 그 외에도 공항마다 심사 기준이 다를 수 있어요. 안타깝게도 개를 브로커처럼 파는 경우도 있다고 해요. 그래서 우리가 브로커인지 아닌지 파악하기 위해 심사를 까다롭게 하는 공항이 있는데, 그럴 경우에 심사가 길어지면 회사 업무 일정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으니 섣불리 진행하기가 어려운 면도 있었습니다.



그렇겠네요. 여러 변수들이 존재하니 참여할 때는 충분한 시간과 여유를 가지고 해야 할 것 같네요. 그 외에도 마케터들의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는 구간에서 내 취향 같은 게 묻어 나올 수 있을 것 같아요.

- 맞아요. 예전에 전시회에서 제공할 고객 선물로 공정무역 제품인 커피를 준비한 적이 있어요. 공정무역 특성상 패키지가 그렇게 세련되지는 않았었는데 이 커피를 가져가시면 생산자에게 도움이 된다고 설명을 드리니 고객분들도 좋은 마음으로 같이 참여해 주시더라고요.


마케터가 가지고 있는 아이디어가 많다 하더라도 실행하기가 쉽지 않을 때가 있잖아요. 개인적으로 B2C든 B2B든 상관없이 조직 특성이라고 보는 편인데, 그렇다 하더라도 특성상 B2C보다는 B2B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을 실행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내가 제안한 아이디어가 B2C였으면 가능했을 텐데, B2B여서 안 되는구나'하는 경우들이 있었나요?

- 신입 시절부터 B2B를 경험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그에 맞춰 머리가 굳어진 건 있어요. 그렇지만 다행히도 제 경우에는 대표님께서 자선이나 사회공헌 활동에 관심이 있으시고 오히려 트렌드를 더 먼저 제안하시는 편이시라, 저는 알아서 세팅이 된 것 같아요. 어느 정도 선을 넘지 않으면서 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게... 그래서 뭔가 제약이 있어서 못했다는 건 없었어요.


다만, 예산의 문제는 있을 수 있어요. 예산은 한정적이다 보니 고민을 안 할 수가 없죠. 하지만 아이디어를 실행하는 데 있어서 내부에서 막히거나 만류하는 사람이 있다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이제는 팀원들이 너무 B2C스러운 것을 제안할 때 제가 막는 편이죠.


예를 든다면?
- 회사를 알리는 활동을 할 때, 목표 대상과 채널이 맞지 않으면 재고를 하는 편이에요. 예를 들어, 고객인 보안 담당자들은 구글과 페이스북을 더 많이 사용하고, 구직자들은 네이버나 유튜브를 통해 검색을 하는 경향이 있는데, 다른 채널을 운영하자는 제안이 나오면 여러 상황을 고려해 심사숙고할 수밖에 없게 되더라고요.



목표 대상과 채널이 맞이 않는 아이디어가 제안되면, 어떻게 하나요?

- 어차피 제품이나 자원이 크게 드는 게 아니니까, 아이디어에 대해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무조건 막지는 않아요. 평화주의자적인 성향도 있지만(웃음), 우선은 직접 해보고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것이 도움이 되니까 한번 해보라고 하는 편입니다. B2C 마케팅이 워낙 눈에 많이 띄다 보니 목표 고객과 맞지 않는 아이디어들이 나오기도 하는데, 경험하고 배우면서 알게 되는 것이 있다고 생각해요.



B2C와 B2B 마케팅의 차이라면?

- 목표 고객. B2C보다 더 한정돼 있고 협소하고 적은 게 B2B마케팅인 것 같고요. 그리고 아무래도 영업의 영향이 큰 것 같아요. 영업 담당자들의 공헌도가 높은 분야다 보니, 영업을 설득시키고 마음을 움직이려면 기술적인 측면은 모른다 쳐도 본질적인 부분은 잘 알고 있어야 해요. B2C도 당연히 그렇겠지만, 특히 보안 솔루션 B2B는 제품의 본질적 기능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으면 가차 없이 외면받기 때문에 더 엄격한 기준이 적용된다는 점에서 다른 것 같습니다.


협력의 기술


B2B IT솔루션 쪽에서 영업 얘기를 빼놓고 갈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내부 환경에 따라 일부 마케터는 마케팅의 의의를 잘 못 찾기도 하고, 그냥 영업의 지원부서 정도로 생각하기도 하는데, 팀장님은 영업과 마케팅의 관계를 어떻게 보는지 궁금합니다.

- 저도 정말 많이 고민을 했었는데요. 뭐랄까 제품을 연구개발해 만드는 개발자가 있고, 고객에게 제품을 제안하고 프로젝트 수주를 이끌어내는 영업이 있으면, 그 사이에서 번역가, 통역가가 마케터라고 생각을 합니다.

좋은 표현이네요.

사실 승진심사 때 썼던 말이에요.(웃음) 개발자들은 이 기술을 왜 만들었고, 그게 뭐가 잘 되고, 프로세스 중심으로 표현을 한다면, 영업 담당자들은 고객에게 판매를 하기 위해서 전략적으로 되는 것도 안 된다고 하거나, 아니면 무조건 다 된다고 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다 보니 고객이 개발자한테 물어봤을 때 너무 직설적인 답변이나 정석적인 답변이 나오면, 오히려 영업에 마이너스가 되는 경우들이 생기죠. 서로 이해관계가 다르다 보니까 발생하는 일들이라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저희 회사는 그런 부분을 해소하기 위해서 저(마케터)를 투입했어요. 중간에서 양쪽이 같은 말을 할 수 있도록 잡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말들 많이 하시잖아요. 개발자에게 획득한 어떤 기능 정보를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하면, 그다음에는 영업 부서에서 그대로 체득해서 신뢰성 있게 설명하고 소개하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례가 있다면?

- 현재 제품 제안 발표나 제안서를 같이 진행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까 고객들이 하는 질의를 마케팅팀에서 받아 답변드리는 경우가 많은데, 한 번은 고객 질문에 대한 답변이 '안됩니다'였어요. 연구소의 엔지니어나 개발자 입장에서는 안된다는 답변이었는데 사실 그대로 전할 수는 없잖아요. 영업 부서에서도 굉장히 민망하고 곤란할 거고요.


그때 답변을 유연하게 잘 가공해 전달했던 기억이 납니다. '공식적으로 문의하신 제품은 서비스가 종료가 된 제품입니다. 그래서 회사는 해당 서비스에 대해서는 지원을 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고객이 요구하실 경우에 설치는 가능하고 동일하게 사용하실 수 있지만, 이로 인해서 발생하는 취약점은 해결해 드릴 수는 없습니다.'라는 요지의 메시지와 함께 최신 버전 사용을 권장해 드렸어요.


단답형의 메시지보다는 고객의 고민을 이해하는 차원에서 가능한 선을 안내하고, 대응책을 제시하는 것이 더 설득력 있는 메시지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매출을 책임지는 부서다 보니 영업 위주로 의사결정이 흘러가는 경우도 있을 것 같아요. 영업 부서에서 고객의 어떤 사항에 대한 요청이 왔는데, 그게 마케팅 팀에서만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연구소의 협조를 얻어야 할 때도 있을 거고요. 또 마케팅하고 연구소에서 볼 때 영업의 요청 사항이 제한이 있거나 너무 터무니없거나 부담스럽고 자원이 많이 드는 경우도 있을 텐데, 그런 경우 어떻게 문제를 풀어가는 편인지?

- 일단은 공감은 하되, 필요한 조건들과 어떤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유하게 표현하려고 해요. 상대방의 마음을 좀 이해하고 공감하는 유한 발언으로 전달하면 서로 이해하는 측면이 생기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안된다'거나 '못한다'는 단호한 발언이 어느 한쪽에서 나온다면, 그대로 전달하기보다 어느 정도 쿠션어를 사용해 전달하는데, 그럴 때 설득이 더 잘되었어요.


B2B 마케팅에서 영업과 마케팅이 잘 협업하는 것은 계속 제기되는 화두인데요. 어떻게 협업하면 좋을까요?
- 제 경험상 먼저 베풀면 다 돌아오는 것 같아요. 상부상조의 마음가짐을 가지면 좋겠어요. B2B에서는 영업과 고객의 관계가 굉장히 친밀하게 연결돼 있어요. 그러다 보니 고객이 영업 담당자들에게 다소 무리가 되는 요구를 하는 경우가 있지요. 그러면 영업은 고객의 요청을 내부에 다시 요청하게 돼요. 그런 요청이 들어오면은 솔직히 좀 귀찮아요. 마케팅 본연의 업무만 하기에도 버거우니까요.


B2B에서는 마케터가 뭐든 다 해야 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하지만 힘들고 짜증이 나도 제 경우에는 들어온 요청들은 다 해주려고 노력해요. 왜냐하면 경험상 냉정하게 말하면 마케팅 팀 말고는 할 팀이 없거든요. 며칠 내로 요청 사항을 해결해 주면 영업 부서 입장에서는 한시름 던 셈이고, 고객도 만족하게 되니까 그런 식으로 도움을 많이 드리는 편이에요.


조금씩 조금씩 도움을 드린 게 쌓이다 보니까 제 요청 사항도 영업에서 잘 도와주세요. 공감이 되는 선에서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이제는 재지 않고 요청을 다 받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된 것 같아요. 그리고 고객 요청을 해결하는 게 제게도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는데, 고객이 뭘 원하는지 들은 거잖아요. 그럼 그 이후로는 자료도 미리 만들어 놓고 오히려 요청이 오기 전에 먼저 전달할 수도 있어 좋더라고요.


간혹 어떤 분들은 마케팅이 영업을 지원하는 부서다, 종속됐다,라는 표현을 쓰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제 경우에 그런 식으로 노력을 하다 보니까 이제는 협조하는 관계, 서로 도와주는 관계가 된 것 같아요.


협업을 잘하려면 결국은 관계로 풀어야 한다?

- 특히 마케터는 전 부서와 다 친해져야 되거든요. 그래야지 원하는 자료 획득과 추출이 용이하고, 또 반대로 요청받기 때문에 관계를 뺄 수는 없다고 봐요. 마케터는 모든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도 잘해야 하고, 잘 지내야 되는 것 같아요.


업무가 잘 되게 하기 위해서 관계에서도 부단히 노력하고 있으시단 느낌을 받습니다. 이런 관계의 노력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나요?

-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것. 당연히 사람이니까 분노할 때도 많고, 감정에 휘둘릴 때도 많은데, 그 스트레스에 좀 차분하게 대응을 해야지 괜찮은 것 같아요.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것이 좋은 관계를 만드는 팀장님만의 노하우인가요?

- 노하우인 것 같긴 합니다. 그리고 조금 더 추가하자면 넉살이 가미되어야 좀 낫지 않나 생각을 해요. 예를 들어, 업무 협조를 하다 보면은 좀 귀찮거나 피하고 싶은 업무가 있을 수도 있고요. 제가 어떤 업무에 투입이 된 이후부터가 불만이신 분들도 있을 수 있는데, 어쨌거나 저는 그 안에서 협조하고 같이 상부상조해서 결과를 일으켜야 되는 상황이라면, 그냥 뻔뻔하게 철판 깔고 넉살 좋게 행동하는 게 제일 낫더라고요. 웃는 사람 앞에 장사 없다고 하잖아요. 그렇게 일하다 보면 어느 순간 문제가 다 풀려 있더라고요.


계속 얘기를 듣다 보니까 팀장님은 포용적인 분인 것 같습니다.

- 맞아요.



괜찮아요?

- 괜찮아요. 속이 좋지 않을 때도 있지만 회사 일이니까, 돈 받고 일하는 입장이니까 그 정도는 수용해야 된다고 생각을 하는 편이고, 대신에 이제 회사 바깥에서 좀 스트레스를 풀려고 노력합니다. 요가를 한다든지 강아지랑 산책하면서 다른 사람들이랑 교류한다든지, 또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서브컬처에 관한 취미들을 가지면서 심신을 잘 풀고 있어요.


성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마케터가 모든 사람과 친해진다는 건 사실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진짜 사람이 힘든 거라서 그래서 간혹 일은 견뎌도 사람은 견디기 어렵다는 얘기를 할 정도잖아요. 스트레스가 클 텐데, 해본 방법 중에 잘 푸는 방법을 하나 추천한다면?
- 요가를 한다든지 뛰고 온다든지 땀을 흘리는 것을 추천해요.


땀에 어떤 중요 포인트가 있을까요?

- 잡념이 사라지는 것. 땀을 흘리면 어쨌든 힘들어서 흘리는 것이기 때문에 잡념이 사라지는 것 같아요. 좀 개운해지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몸에 있는 독소가 많이 배출되는 셈이니까요.


회사의 등대가 된다는 것

11년 차 B2B 마케터인데, 그동안 보람 있었던 일이 있다면?

- 보안 솔루션은 비공개적인 성향이 강하고, 실제로 세일즈도 중요하지만 개발이 중심이 되는 제품이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고객을 설득하려면 전문성이 있어야 되거든요. 저는 비전공자에 문과 출신이에요. 제가 정리하고 만든 콘텐츠가 고객을 설득시켰다면 그것만큼 뿌듯한 일은 사실 없더라고요. 배경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들어왔었고, 이제 10년간 취득한 내용을 토대로 설득을 시킨 거니까 거기에서 오는 뿌듯함, 보람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저 같은 비전공자도 B2B에 들어와서 해내었다는 느낌, 인정받았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만족하는 것이죠. 실제로 재작년부터 제품 프로젝트 제안서를 작성하고 있어요. 마케터는 제품과 떼려야 뗄 수 없고, 제품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에 제안서 작성 업무를 계속하고 있는데 다행히도 여러 번 프로젝트가 수주가 되어서 굉장히 만족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전문성이 생겼다는 느낌이죠.


그러니까 B2B가 '노잼'이라고는 하지만 그런 부분에서는 또 좋은 것 같아요. 전문성을 좀 더 쌓을 수 있고, 그걸 통해서 보람도 느낄 수 있어서 말이죠.


'노잼', 재미가 없나요?

- 재미 포인트가 많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하하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저희 대표님께서 관심이 많으셔서 문화 마케팅을 종종 펼치곤 했었어요. 코로나 이후로는 잘 못하고 있긴 한데 영화, 연극이나 뮤지컬 등 행사를 기획하고 꾸려나갈 때 재미있어요. 하지만 솔직히 B2B 마케팅에 재미 요소가 많지는 않은 것 같아요.


솔직한 대답이 좋습니다. 재미는 없지만 보람과 만족을 통해서 하고 있다는 것도 중요하죠. 매번 일이 재미있을 수도 없으니까요.


그럼, 어려운 점은 뭐였나요?

- 마찬가지로 전공자가 아니다 보니까 오는 한계가 있었어요. 기술적 지식에 대한 이해가 정말 어렵고 좀 이겨내기 힘든 것 같아요. 아무리 개발자나 엔지니어가 쉽게 표현을 하더라도 이해 못 하는 부분들이 반드시 생기거든요. 그럴 때 이게 내 길이 아닌가, 하는 자괴감을 느끼기도 하고 내가 바보인가, 멍청한가,라는 생각을 좀 하게 돼요.


시간이 흐르면 또 체득이 자연스럽게 되는 건데, 본인의 노력도 당연히 필요하지만, 그 과정을 견뎌내는 게 사실은 좀 어려운 것 같아요. 굳이 표현을 하자면 이런 IT 회사에서는 6두품 같은 존재라고나 할까요.(웃음)

하하하. 신라시대 골품제도 비유가 신선하네요. 6두품도 귀족이긴 합니다만...

- 그렇죠. 귀족이긴 한데... 말씀드렸다시피 별별일 다 하거든요. 그러다 보니 좀 거기서 오는 현타가 있습니다. 하지만 즐겁게 즐기려 하고 있어요. 왜냐면 이 경험들이 다 자산이 된다라는 걸 알기 때문이에요. 한 번은 디자이너가 퇴사를 했는데 연구소에서 제품 로고를 디자인해 달라는 요청이 저한테 온 거예요. '내가 왜 제품 로고를 디자인해야 되지'싶었지만, 도구를 배워가며 했어요.


디자이너 퇴사 후, 뉴스레터도 만들고 홍보 자료도 다 제가 만들었어요. 그때 포토샵, 일러스트, 인디자인, 프리미엄 프로, 다 독학해서 진짜 안 되는 실력으로 꾸역꾸역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제는 그 도구들을 잘 쓸 수 있고 색감에 대해 말할 수도 있게 되었어요.


와, 정말 마케팅 만렙이시네요. 그런 어려운 상황을 자신의 성장 계기로 삼은 마음가짐과 행동력에도 박수를 보냅니다.


요새 고객과의 소통을 위해 어느 채널에 집중하는지 궁금합니다.

- 잠재 고객은 전시회에서 주로 뵙고요. 최근에 저희 같은 경우에는 대표님과 영업본부에서 카톡을 진짜 많이 쓰세요. 고객과 1:1 카톡을 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죠. 저희 고유 제품 자체가 오랜 연혁을 가지고 있다 보니까 상대적으로 다른 업체에 비해서 문의 전화나 연락이 많이 오거든요. 인바운드콜(inbound call)이 상당히 많다 보니까 뉴스레터나 별다른 마케팅 채널 운영에 있어 한정적이기는 합니다.


인바운드콜이 많다는 건 어떤 측면에서는 브랜딩이 잘된 거라 볼 수도 있는데, 마케팅 채널은 한정적이란 것이 의외이기는 하네요. 브랜딩? 아니면 기업의 세일즈 역량이 뛰어난 결과일까요?

- 저희 고객군이 대기업과 공공기관으로 명확하다 보니 그에 맞는 채널 중심으로 운영을 하고 있고, 세일즈 역량이 뛰어나고 맨투맨 중심으로 고객과 소통하며 오랫동안 신뢰를 쌓아 왔기 때문에 채널 확장성의 필요성이 거의 대두되지 않은 거라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앞으로는 대기업들도 계속 차세대 프로젝트들을 하니까 마케팅 예산 안에서 고객과 더 원활한 소통을 할 수 있는 채널들을 연구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은 브랜딩 차원에서 많은 접근 전략을 펼치지 못한 측면이 있어서. 비즈니스 성장과 내부 의사결정에 따라 시의적절하게 진행되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비전공자로 신입 시절 좌충우돌도 많았을 것 같은데, 어떠셨나요?

- 굉장히 많이 했습니다. 하하하. 언론 홍보도 같이 하다 보니까 한 번은 기자분들께 연락을 한 후 보도자료를 배포해야 했는데, 기자분의 이름을 잘못 써 메일을 보낸 거예요. 신입이 정신도 없고 집중도 잘 안 되고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다 보니 실수를 한 거죠. 죽고 싶었어요, 정말.



어떻게 수습했나요?

- 바로 전화와 이메일 회신으로 사과를 하고, 상황 설명을 드렸어요. 할 수 있는 사과는 최대한 했지요. 다만, 제 느낌에 관계 회복이 제대로 된 것 같지는 않았어요. 제 실수이니 받아들이고 넘어갔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해당 기자분은 다른 분야로 가셨어요.


그나마 다행스러운 상황이 되었네요.

- 다행이었지만 그때는 진짜 아찔했습니다. 당시에는 엎질러진 물이니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더라고요. 상사에게 솔직하게 말씀드리고 기자분께는 열심히 죄송하다고 사과드리는 것뿐이었죠.

언론홍보와 마케팅 중 어느 쪽이 좀 더 맞는 것 같나요?

- 마케팅 활동이 조금 더 맞다 생각해요. 1:1로 특정한 한 사람에게 집중하는 것보다는 모든 분들의 의견을 취합하고 조율해서 콘텐츠를 만들어 내고, 결과물을 보여드리는 게 저한테 조금 더 맞아요. 여기에도 물론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긴 한데, 더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융합하고 화합해서 만드는 게 저는 좋아요.


마케터로서 가장 큰 무기(강점)가 있다면?

- 아무리 생각해도 넉살입니다. 하하하. 어떤 분이 까칠하거나 비협조적이 셔도 제가 그냥 능청스럽게 굴면 풀어지시더라고요. 넉살 덕분에 분위기가 유해지니까 일하기 편했던 적이 정말 많았습니다.


마케팅 성공 사례를 하나 꼽는다면?

- 제안서를 리뉴얼해서 프로젝트 수주에 기여한 것이요. 기존에 영업과 기술연구소가 함께 작업한 제안서가 있었는데, 비문 및 오류 사항들을 교정교열하고 내용과 단어 사용, 폰트 등 디자인을 전면 수정했어요. 이 제안서로 50억 규모의 프로젝트가 수주된 것도 뿌듯했지만, 이 제안서를 사내에서 표준 자료로 활용하게 된 것이 만족스러웠어요.


대표님께서 항상 하시는 말씀이 있으신데, "마케팅은 회사의 등대가 돼야 한다"라고 자주 표현을 하시거든요.

내부에 우왕좌왕하고 산발적이던 것들을 잘 조직화해 표준 기준점을 만들고, 그걸 내부에서 그대로 따라 해 주시는 것을 볼 때면 감사하고 만족스럽습니다.


그럼, 넉살보다는 조직화가 강점 아닌가요?

- 조직화도 분위기를 풀어서 해야 하는 일이니까 넉살이 필요해요. 워낙 많은 분들이 스트레스를 받으시니까 그냥 저라도 웃기자 이런 생각으로 하는 것이죠.



좋은 미덕을 갖추셨네요. 지치고 상처받지 않는 선에서 그 겸손함이 계속 빛을 발하기를 응원하겠습니다.


실패 사례도 있나요?

- 세종시 청사 입주 초반, 신년초에 청사 앞에서 커피차를 한번 해보자는 내부 의견이 있어서 2주 동안 커피차를 빌린 적이 있어요. 1월 1일부터 대략 2주간 진행될 예정으로 준비해서 갔는데, 알차게 실패했어요. 하하하. 막상 가보니 배치를 어디다 해야 될지 몰랐고, 공무원 특성상 커피를 받아 가시지도 않는 거예요. 어차피 청사 안에 커피가 다 있기도 하니까. 다들 그냥 구경만 하시더라고요. '쟤네 뭐 하는 거지?' 이런 시선이었죠. 하하하. 지리적 환경, 공무원 성향 등 여러 가지 요소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을 현장에 가서 깨달았어요. 예산만 쓰고 일주일 만에 철수했던 사례네요.

아이코. 씁쓸했겠습니다. 거기서도 또 배움이 있으셨겠지만.


만약에 B2C 마케팅을 할 기회가 있다면, 해보고 싶은 분야가 있나요?

- 일단 제가 개를 키우는 사람이기 때문에 반려동물용품 쪽에서 마케팅을 해보고 싶어요. 견주의 마음은 견주가 제일 잘 아니까, 소비자의 마음을 제일 잘 아는 분야라고 생각해서요.


반려동물용품 쪽에서 '나'라면 이렇게 했을 텐데, 하는 제품이 있다면?

- 제품 자체는 되게 좋은데 패키지가 촌스러운 제품이 있어요. 그런 제품을 보면 패키지를 바꾸고 브랜딩을 하고 또 인스타그램 같은 걸 잘 활용하면 분명 잘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직업병처럼 인스타그램에 광고가 뜨면 문장 하나라도 바꿔버리고 싶은 욕구가 올라와요. 하하하.

스스로를 돕다


언제까지 마케팅을 할 것 같나요?

- 체력이 뒷받침되는 한 할 것 같아요. 밤샘을 많이 하다 보니까 체력적으로 힘들 때가 많아지더라고요.



건강이 제일 중요하죠. 체력 관리를 잘하시길 바라겠습니다. 번아웃이 오면 진짜 다 싫어지고 하기가 힘들어지잖아요.

- 사실은 여름에 좀 심하게 번아웃이 왔었어요. 젊은 인재들, 조직 내 여성 인재들의 성장 비전 등을 생각하니 과연 내가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생기더라고요. 그나마 제 강점이 신입 시절부터 별별 걸 다 했다는 것인데요. 홍보도 하고 마케팅도 하고 커피차도 갔다 오고(웃음) 이렇게 행사도 하고 별별 걸 다 하면서 다양한 일들을 많이 겪었기 때문에 사실은 조언을 구할 사람이 제 자신밖에 없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스스로 잘 버텨냈던 것 같아요.


번아웃 상황에서 버티고 스스로 강점을 찾아 이겨내셨다는 것은 정말 웬만한 내공이 아니면 힘든 일이에요. 박수를 또 보내야겠네요.


나에게 '일'이란?

- 제가 이걸 정말 많이 고민을 했었는데, 제 삶을 반복하게 해주는 수단이라고 생각해요. 잘 살려고 하는 수단이고, 물론 제 개인의 만족도 있고, 보람이나 성취감도 있기 때문에 맡은 일은 최선을 다하려고 해요. 그러면서 가능하면 일과 삶을 좀 분리하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질문을 조금 틀어서, 왜 일하나요?

- 먹고살려고. 거기에 더해 제가 인정 욕구가 좀 강한가 봅니다. 일을 하면서 받는 그 인정이 기동력이 되기도 하고, 원동력이 돼서 하나의 일을 성공하면 의욕이 다시 또 생겨요. 지치긴 하지만 그 의욕을 토대로 또 다른 일을 해내면서 계속 긍정적으로 선순환하려고 합니다.

일을 할 때 나만의 가치관 같은 게 있나요? 일에 대한 가치관?

- 일을 할 때 저는 완결성을 생각해요. 일단 잡았으면 끝은 내자라는 생각을 많이 하죠. 오래 걸리든 짧게 걸리든, 노력을 40%, 50%밖에 투입을 못하더라도 끝은 내려고 해요. 그래야 이걸 토대로 다음 분들이 일을 하실 수도 있고, 의견을 받아서 더 개선시키고 잘될 수도 있으니까요.



요즘은 완벽보다 '완성'을 추구하는 것이 트렌드라는데, 트렌디하시네요. 하하하

누군가 마케팅을 해보고 싶다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나요?

- 다른 사람들과 두루두루 잘 지낼 수 있는가? 글을 잘 쓰는가?

산업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어도 이 두 가지 역량만 있다면 B2B든 B2C든 어디서든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말해 주겠어요. 다만, 돈 많이 벌고 싶으면 B2B로 오라고 추천할 거예요.



왜죠?

- IT는 연봉이 뛸 가능성이 높은 산업군이기도 하고, 기술적 지식이 얼마나 함양되느냐에 따라서 언제든지 점프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개인적으로 적성은 어떻게든 맞추면 되고, 재미도 찾아내면 된다고 보거든요. 그렇게 생각하면 냉정하게 B2B 마케팅을 하는 것을 추천할 것 같아요.

하하하. B2B 마케팅을 강력 추천하는 분은 처음 만났네요. B2B 마케터한테 가장 필요한 역량과 자질은 뭘까요?

- 앞서 말씀을 드렸듯이, 글을 잘 써야 해요. 글을 조리 있게 잘 쓰면 뭐든 다 할 수 있다고 봐요. 논리가 있기 때문에 어려운 걸 또 맞닥뜨리더라도 자기가 잘 정리해 쓰면 그게 또 괜찮은 콘텐츠가 되더라고요. 그리고 그걸 만들기 위해서는 이제 기술적인 부분이라든지 지식 함양이 필요한데, 좀 넉살 좋게 물어본다든지 어디서든 도움을 받을 수 있게 커뮤니케이션 잘하고, 솔선수범하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성격만 있으면 충분할 것 같아요. 사실 산업 배경은 없어도 된다고 봐요. 저도 정보 보안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이 들어왔어요. 팀원들도 다 문과 출신인데, 다 잘하고 있어요. 모르면 가르쳐주고 배우면 된다고 생각해요.


팀원들을 육성하고 성장시킬 때 리더십이 필요하잖아요. 어떤 형태의 리더십을 추구하나요?

- 내부에서 이거 좀 이상한데 어떡하지 싶은 일들은 다 마케팅 팀에 넘어오거든요. 그럴 때 실은 팀원들이 자괴감을 느껴요. 팀원들의 마음을 잘 다독이고, 그런 일들이 모두 자양분이 된다는 걸 잘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이 좋은 리더인 것 같아요. 이 일을 했을 때의 그 뭐랄까 보람, 그리고 해야 되는 이유 등을 잘 설득하고 긍정적으로 할 수 있도록 다독이며 이끌어 주는 다정한 리더십이 좋습니다.



책을 많이 읽나요?

- 읽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바쁘고 하다 보니까 사실 읽을 마음이 잘 안 생겼는데요. 지금은 마음을 좀 바꿔서 자기 전에 한 챕터(chapter)씩이라도 읽으려고 해요. 지금 읽고 있는 책은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인데, 위로가 되더라고요.



위로가 된 부분은?

- 마케터는 세심하게 다른 사람들을 챙기고 대외적으로 고객을 많이 챙겨야 되는 사람이잖아요. 보안 홍보 담당자 모임 때도 이야기를 했는데, 다들 자신은 예민한 성향이라고 하더라고요. 눈치를 많이 보는데, 문제는 눈치로 분위기를 빠르게 파악하는 게 익숙하다 보니까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이게 독이 될 때가 있는데, 자신의 성격이 이상한 건가 의구심을 품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 책에서는 예민해서 남들보다 힘든 일을 겪을 때도 있지만, 그게 장점이 될 수도 있고 또 예민하기 때문에 더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는 거예요.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신경 쓰는 이타적인 사람이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어요. 그래서 읽으면서 위로가 되었어요.


책 <센서티브>에서도 ‘민감함’은 고쳐야 할 대상이 아니라 개발해야 할 대상이라고 했어요. 창의력, 통찰력, 열정 등이 민감함이라는 재능에 기반을 두고 있기에 '민감함'은 개발해야 할 재능이라는 것이죠. 그러니 민감한 마케터가 있다면, 매우 재능 있는 마케터라고 자부심을 가지면 좋겠네요.



타임머신을 탈 기회가 있다면, 과거와 미래 중에 어디로 가고 싶나요?

- 미래로 가고 싶습니다.


5년 후 나는 어떨 것 같나요? 5년 후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한마디를 해준다면?

- 분명 열심히 일을 했을 거고, 그에 따라서 능력치도 많이 쌓여 있을 것 같아요. 내공이라든지 경험이라든지 좋은 것들이 많이 쌓여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겪는 것들을 그냥 즐겼으면 좋겠다고 말할 것 같습니다. "현정아, 즐겨! 스트레스받지 말고 즐기면 어쨌거나 다 자산으로 쌓여. 내 안에 내공이 쌓인단다~"


끝으로, 마케터로서 비전이나 목표가 있나요?

- 브랜딩을 하고 싶어요. 사실 팀장 된 지 이제 2년밖에 안 됐고, 계속 성장을 해야 하다 보니까 지금은 초석을 다지는 중이라고 생각해요. 초석을 다지면 저도 또 내공이 쌓여 있을 거고 더 많은 걸 볼 수 있는 넓은 식견이 생길 테니까 그다음에 기업의 우수성과 특징 등을 토대로 브랜딩을 하고, 대외적으로 회사를 더 명확히 설정하는 데 일조하고 싶어요.

회사밖에 모르는 바보시군요. 하하하. 오늘은 '종합 긍정세트'같은 인터뷰 시간이었습니다. 수용, 포용, 넉살의 힘으로 버텨온 마케팅의 시간들이 분명 팀장님께 긍정적인 삶의 무기를 선사할 거라 믿습니다. 초긍정 에너지를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글을 정리하는 내내 <버텨온 시간은 전부 내 힘이었다>는 말이 맴돌았습니다. 신하영 작가의 책 제목입니다. 이 딱 한 문장이 B2B 마케터 김현정 팀장의 마케팅 서사를 다 설명하는 것 같았습니다.


“넘어졌던 순간도, 흔들렸던 날들도 결국 당신을 여기까지 데려왔습니다.”


우리는 불현듯 찾아오는 불행 앞에서 쉽게 무력해지고, 깊어지는 어둠 속에서 홀로 버티며 이 시간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두려워한다. 그러면서도 모든 시간을 견뎌내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당신의 힘이다.

- 책, <버텨온 시간은 전부 내 힘이었다> 소개글 중에서


지금의 김현정 팀장을 여기까지 데려온 것은 어려웠던 순간도, 막막했던 날들도 버텨낸 힘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넉살'이란 무기를 장착하고 버텨낸 힘. 그 넉살은 다정함 그 자체이고, 친화력을 극대화해 협력을 꽃피우는 힘이 되었다 생각합니다. 다정한 사람은 귀하다지요. 살아남게 하는 힘을 가졌으니 왜 안 그렇겠습니까.


다정함은 인간에게 가장 좋은 태도이자 고도의 사회적 능력이며 배움으로 연마할 수 있는 영역이다. 다정한 사람은 얼음장 같은 상황도 단숨에 녹이는 힘을 가지고 있고 화난 사람도 웃음으로 전염시킨다. 다정함은 우울을 정화하기도, 죽음을 생각하는 이를 종종 살리기도 한다.

- 책, <버텨온 시간은 전부 내 힘이었다> 중 '다정한 사람은 귀하다', P115


귀한 힘을 가진 그녀에게 곧 따스한 바람이 불어오는 계절이 올 것 같습니다. 그녀의 계절 말입니다. 초석을 다진 그녀가 자신의 계절을 맞았을 때 얼마나 더 폭풍 성장해 있을지 기대가 큽니다. 글을 마치며 넉살 좋은 다정한 그녀에게 피아노 곡 하나 띄웁니다.


제법 잘 어울릴 것 같은 '피아노 포엠'의 <널 부르면 따스해지는 느낌이 든다>


https://www.youtube.com/watch?v=yxWuWDQLcHw


이상 친절한 마녀였습니다!



[더 토크뷰]는 홍보마케터, 그리고 협업하는 대내외 여러 직군의 사람들을 만나 슬기롭게 소통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친절한 마녀의 B2B 마케팅] 매거진 속 코너입니다. 사람에 초점을 맞추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각각의 마케팅과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통찰을 얻을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또, 다른 기업에서 일하는 홍보마케터, 개발자, 기획자, 그리고 CEO 등의 이야기를 통해 ‘나만 겪는 문제가 아니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도 있겠구나’ 이해하며 소통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이 글은 어때요?

[더 토크뷰 시즌 3]

스물일곱 번째. [더 토크뷰] 연필 같은 마케터 그리고 전략기획가
스물여섯 번째. [더 토크뷰_마케터] 지금이 딱 좋은 마케터
스물다섯 번째. [더 토크뷰_마케터] 그러나 즐겁게 사는 모금가
스물네 번째. [더 토크뷰_마케터] 무기를 든 행운의 마케터
L [기고] 창의력 대신 데이터로!

스물세 번째. [더 토크뷰_마케터] 웬만하면 이 마케터를 막을 수 없다
스물두 번째. [더 토크뷰_마케터 편] 기분좋~게 가슴 뛰~게 마케팅
L [기고] 당신, 1인 마케터인가요?

스물한 번째. [더 토크뷰_마케터 편] 내향형이지만 마케팅은 잘합니다
[더 토크뷰 시즌 2]

스무 번째. [더 토크뷰] 마크툽! 운을 내 편으로 만드는 마케터
열아홉 번째. [더 토크뷰_마케터 편] 마케팅 문해력왕
열여덟 번째. [더 토크뷰_CEO 편] 날개를 준비하는 사람
열일곱 번째. [더 토크뷰_마케터 편] 위풍당당 마케터
열여섯 번째. [더 토크뷰_CEO 편] 나의 꿈이 너의 꿈을 빛나게
열다섯 번째. [더 토크뷰_피플팀 편] 기술과 예술이 만나는 세계
열네 번째. [더 토크뷰_CEO 편] 가짜 일ㆍ진짜 일ㆍ대표의 일
열세 번째. [더 토크뷰_마케터 편] 잇프피 마케터의 불편한 마케팅
열두 번째. [더 토크뷰_CEO 편] 시를 사랑한 청년 CEO-파트 1
[더 토크뷰_CEO 편] 시를 사랑한 청년 CEO-파트 2
열한 번째. [더 토크뷰_마케터 편] 서울 강남에 외국계 기업 다니는 마케터 전 과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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