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자리, 마음의 거리(1)
시리즈 [법의 자리, 마음의 거리]
제주일보에 기고했던 칼럼들을 사람의 마음을 따라가는 이야기로 다시 써보려 합니다.
변호사라는 직업의 특징 중 하나는, 시대의 단면을 사건을 통해 먼저 목격하게 된다는 점이다.
가족 간의 갈등, 연인의 다툼, 감정과 소유가 얽힌 이야기들.
법정에 오가는 사연은 결국,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서이자 풍경이기도 하다.
몇 년 전 아파트 시세가 급등하면서, 나는 그런 풍경 속 하나의 사건을 맡게 되었다.
그와 그녀는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사이였다.
처음엔 친구처럼 지냈다.
각자의 이혼 소송을 진행하던 중,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집을 비워야 했고,
그 즈음, 함께 사는 것이 서로에게 조금의 위안이 되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한 집에서 동거를 시작했고, 투자 개념으로 아파트 한 채를 공동명의로 구입했다.
예상과 달리 시세 변화는 없었다. 그리고 관계도 길지 않았다.
2~3년쯤 함께 지낸 후, 결국 그들은 이별했다.
헤어질 무렵, 그는 더 이상 아파트와 관련된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고 했다.
그녀는 카드론까지 써가며 그의 지분을 인수했고,
대출과 전세보증금 반환채무까지 떠안았다.
말 그대로 ‘정리’였다.
시간이 흘렀다.
이별 후 약 1년이 지나 아파트 시세가 조금 오르기 시작했고, 그녀는 그 집을 매도해 채무 일부를 상환했다.
그리고 또다시 1년쯤 지난 어느 날, 그가 연락을 해왔다.
“그 집, 얼마에 팔았어?”
그녀는 조용히 통화를 끊었다. 그리고 며칠 후, 그는 소장을 보냈다.
“사실혼 해소에 따른 재산분할을 청구합니다.”
그는 주장했다.
“집을 팔면서 다툼이 많아졌고, 결국 그 때문에 최근 헤어지게 되었다”고.
나는 그녀의 소송대리인으로서 사건을 맡아 대응했고,
두 사람이 사실혼 관계가 아닌 단순한 동거였다는 점,
설령 사실혼이었다 해도 해소된 지 이미 2년이 훌쩍 넘었다는 점을 입증했다.
결국, 사실혼 관계가 해소된 지 이미 2년이 지난 청구라는 점이 인정되어 그의 청구는 ‘각하’됐다.
사실혼 관계 해소에 따른 재산분할 청구는 다음 두 가지 조건이 전제된다.
첫째, 단순한 동거를 넘어 사실혼 관계에 해당해야 하고,
둘째, 사실혼 해소 후 2년 이내에 청구해야 한다.
사실혼 여부는 당사자들의 생활 형태뿐 아니라 가족이나 사회적 관계 속에서
얼마나 ‘부부’로 인식되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이 사건에서 그녀는 부모와 자식 모두에게 그의 존재를 알리지 않았고,
이별 후엔 곧장 부모님과 함께 살기 시작했다.
그가 주장한 ‘금전거래’도 대부분 그녀의 사업장에서 아르바이트 형태로 지급된 돈이었으며,
그녀가 그에게 지급한 내역은 단 한 건도 없었다.
법적으로, 그리고 증거상으로도 그의 주장은 받아들여질 수 없었다.
결과만 본다면 명확한 승소였다.
하지만 그날, 판결문보다 오래 남은 것은 ‘시세’라는 단어가 불러낸 묘한 감정이었다.
사랑이 끝난 줄 알았던 자리에, 오르기 시작한 아파트 시세가 남았다.
그 시세가 다시 한 사람의 기억을 흔들었고,
묻어두었던 감정까지 다시 불러냈다.
어쩌면 그는 정말로 그녀를 다시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끝내 입을 연 건, 사랑이 아니라 부동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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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법의 자리, 마음의 거리]
(5) 세상에 둘만 남은 가족 - 그 아이 이름 앞에 '딸'이라는 말이 붙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