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 그리고 손해배상

[법의 자리, 마음의 거리] (6)

by 김정은 변호사

시리즈 [법의 자리, 마음의 거리]

제주일보에 기고했던 칼럼을, 사람의 마음을 따라가는 글로 다시 풀어보려 합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어느 날,

잔뜩 기가 죽은 청년이 사무실 문을 열었다.

그는 한 학원에서 강사로 일하고 있었다.
그날 아침, 법원에서 도착한 소장을 들고 있었다.


자신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이후,
학원은 방역을 이유로 2주간 휴원에 들어갔고,
확진자의 동선이 공개되면서 학원 이름이 언론에 드러났다고 했다.
그 일로 수강생 일부가 등록을 취소했고,
학원 원장은 그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는 것이다.


그가 받은 월급은 200만 원 남짓.
일을 시작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원장은, 휴원 기간 중 매출 손실과
수강생 이탈로 인해 발생한 학원비 손실 등을 합산해
6천여만 원에 달하는 손해배상을 요구하고 있었다.


법적으로 누군가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려면,
세 가지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상대방에게 고의 또는 과실이 있었는지.
둘째, 그 행위로 인해 실제 손해가 발생했는지.
셋째, 그 손해의 금액이 얼마인지.


이 사건에서 강사가 코로나에 걸린 것은 맞지만,
방역수칙을 어긴 것도,
고의나 부주의로 타인에게 피해를 입힌 것도 아니었다.


또한 소장에는 학원 수강생들이 왜 수강을 중단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도 없었고,
원장이 주장한 손해액은 순수익이 아닌 매출 기준이었다.

하지만 법원은 손해배상액을 산정할 때
실제로 얻을 수 있었던 수익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 법원은
고의·과실, 인과관계, 손해액 어느 것도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고 보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강사인 피고는 승소했고,
더 이상의 책임도, 손해도 지지 않아도 되었다.


사실 원장님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됐다.
학원을 운영하며 매일같이 수강생을 응대하고,
방역에 신경을 쓰던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휴원을 하고,
수강생 일부가 이탈하는 상황은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 손해가 정확히 누구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고 싶은 마음이 생겼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마음이 생기는 순간, 가장 가까운 누군가에게 화살이 향하는 일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 고용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그 불안과 무게를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사건은 더 조심스럽게 들여다봐야 했다.

감정이 앞서는 상황일수록,
법은 그 감정을 잠시 옆에 두고
사건을 처음부터 다시 바라보는 역할을 하게 된다.


강사는 끝까지 원장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했고,
자신 때문에 불편을 겪은 학생들에게도 사과했다.
그리고 다시 학원이 정상화될 수 있도록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그의 태도는 성실했고, 책임감 있었다.
하지만 감염 사실 하나만으로
수천만 원의 손해를 물어내야 했다면,
그건 책임이라기보다는 짐에 가까웠을 것이다.


책임을 지는 것과, 책임을 전가당하는 것.
그 사이의 거리를 분별하는 일,
그것이 때로는 법의 자리이고, 마음의 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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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여금은 아니고요, 빌려준 돈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모두가 잠시 말을 잃었습니다.



시리즈 [법의 자리, 마음의 거리]

(1) 부동산 시세가 오르자 헤어진 그녀가 생각났다.

(2) 믿었다는 말의 끝에서

(3) 송별회는 했지만, 떠나지 못했다.

(4) 꿈은 이루어진다, 단지 나만 기쁠 뿐

(5) 세상에 둘만 남은 가족 - 그 아이 이름 앞에 '딸'이라는 말이 붙었습니다.

(6) 감염, 그리고 손해배상

(7) 당신의 말이 틀렸던 건 아닙니다.

(8) 소송이 길을 잃을 때

(9) 계약서에 없던 불편, 가게 안으로 들어온 갈등

(10) 감귤을 주문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11) 업데이트 중

(12) 그 말, 들은 사람이 없다면?

(13) 공감의 전제사실

(14) 특수하게 중한, 특수범죄

(15) 어른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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