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서에 없던 불편, 가게 안으로 들어온 갈등

[법의 자리, 마음의 거리] (9)

by 김정은 변호사

시리즈 [법의 자리, 마음의 거리]

제주일보에 기고했던 칼럼을, 사람의 마음을 따라가는 글로 다시 풀어보려 합니다.






그날, 가게 안은 여느 때처럼 분주했다.

점심시간을 막 지난 시각,

몇몇 손님이 식사를 마무리하고 있었고,

배달 기사들은 포장 주문을 찾아 나갔다.


젊은 사장은 주방과 홀 사이를 오가며 숨을 고를 틈도 없이 움직였다.

그런데 그때, 가게 문이 갑자기 열렸다.

그리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 왜 이렇게 주차를 엉망으로 해 놓으면 어떡해?

청소는 안 하는거야?"


가게에 들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이 건물의 건물주님, 임대인이었다.


손님들이 고개를 돌렸고, 직원들은 얼어붙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사장은 담담한 표정을 지으려 애썼지만, 속은 무너지고 있었다.


며칠 뒤, 그 젊은 사장이 상담을 요청해왔다.

상가임대차 계약을 해지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2년 반 전 지금의 자리에 음식점을 열었다.

계약 당시만 해도 가게 인근은 유동인구도 많고

상권도 살아 있는 곳이라 판단했다.

내부 인테리어에만 수천만 원을 투자했고,

홍보와 마케팅에도 열심이었다.

문제는 같은 건물에 거주하던 임대인이었다.

주차문제, 쓰레기 문제를 이유로 수시로 가게에 들어와 고성을 질렀고,

손님이 있는 시간에도 예외는 없었다.


임대인과 주차문제로 다투다 경찰에 신고하는 손님까지 생겼을 때,

그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다고 느꼈다.


이전부터 임대인과의 갈등은 이어져왔다.

처음 계약한 2년이 지나갈 무렵,

임대인은 계약을 종료하자고 했고,

그는 상가임대차보호법상의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해 계약을 연장했다.


아직 감정이 정리되지 않았지만,

가게에 쏟아부은 투자금과 운영에 대한 희망이 그를 붙잡았다.

하지만 갈등은 끝나지 않았다.


반복되는 고성, 불시에 들어오는 임대인의 방문,

손님 앞에서 체면을 구기는 순간들.

사장은 어느새 자신이 가게 주인인지,

눈치 보며 장사하는 하청업자인지 혼란스러워졌다.


임대차계약을 해지하는 것은 감정의 문제만으로 결정되는 사안이 아니다.

임대인은 임차인에게 '임대 목적물'을 사용‧수익할 수 있도록 해야 할 의무가 있고, 임차인은 그에 상응하는 차임을 지급해야 한다. 만약 이 중 어느 하나라도 이행되지 않는다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생긴다.


문제는 감정적 갈등이나 불쾌한 언행이 법에서 말하는 ‘해지 사유’에 해당하느냐는 점이다. 임대인이 손님에게 고함을 쳤다는 사실만으로 곧바로 계약 해지로 이어지진 않는다.


만약 매번 임대인의 행동에 대해 경찰에 신고를 하고, 그 기록을 쌓아두었더라면 달랐을지도 모른다. 그 결과 임대인의 행동이 주거침입이나 업무방해로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면, 법원도 임대차관계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는 정도로 신뢰가 깨졌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하지만 이런 입증을 매번 해나가는 일은, 현실적으로는 쉬운 일이 아니다.

장사도 해야 하고, 감정도 감당해야 하니까.


결국 이 문제는 감정의 고통을 입증 가능한 현실로 바꿔야만 법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벽에 부딪힌다.


돌이켜보면, 젊은 사장이 계약을 갱신할 때, 임대인의 방해가 반복됐다면 그 사실을 계약서에 특약으로 명시하거나, 일정한 행동을 금지하는 조항을 넣는 방식으로 자신을 보호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많은 자영업자들이 그렇듯, '버틸 수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다시 계약서를 쓰고 만다.


법은 기본적으로 계약서와 법률에 적힌 조항들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그 너머의 감정과 분위기, 인간관계는 아주 제한적으로 참작될 뿐이다.


우리는 종종 '법은 차갑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법은 ‘명확한 것’에만 반응하는 것이다.

계약서에 쓰이지 않은 불편, 법률에 담기지 않은 불쾌함은,

불편과 불쾌함이 아무리 커도 법이 개입하지 않는 영역일 수 있다.


임대인은 건물주이기 전에,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는 이웃이다.

젊은 사장의 입장에서 보면, 그는 단순한 계약 상대방이 아니라 ‘매일을 함께 견뎌야 하는 사람’이다. 그런 존재와의 갈등은 법적 해석보다도 훨씬 깊고, 무겁다.


어쩌면 법보다 앞서야 했던 건,

이 공간을 함께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합의였는지도 모른다.




다음글 예고 : 감귤을 주문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시리즈 [법의 자리, 마음의 거리]

(1) 부동산 시세가 오르자 헤어진 그녀가 생각났다.

(2) 믿었다는 말의 끝에서

(3) 송별회는 했지만, 떠나지 못했다.

(4) 꿈은 이루어진다, 단지 나만 기쁠 뿐

(5) 세상에 둘만 남은 가족 - 그 아이 이름 앞에 '딸'이라는 말이 붙었습니다.

(6) 감염, 그리고 손해배상

(7) 당신의 말이 틀렸던 건 아닙니다.

(8) 소송이 길을 잃을 때

(9) 계약서에 없던 불편, 가게 안으로 들어온 갈등

(10) 감귤을 주문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11) 업데이트 중

(12) 그 말, 들은 사람이 없다면?

(13) 공감의 전제사실

(14) 특수하게 중한, 특수범죄

(15) 어른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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