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별회는 했지만, 떠나지 못했다.

법의 자리, 마음의 거리(3)

by 김정은 변호사

시리즈 [법의 자리, 마음의 거리]

제주일보에 기고했던 칼럼을, 사람의 마음을 따라가는 글로 다시 풀어보려 합니다.





그는 몇 해 전 가족과 함께 제주로 내려왔다.

바다와 바람, 조금은 느린 삶을 꿈꾸며 정착을 결심했다.

하지만 살아보니, 어디서든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생활비와 육아, 일자리 문제는 제주라고 다르지 않았다.

결국, 가족은 다시 육지로 돌아가기로 했다.


짐을 싸고 학교 전학을 준비하고, 이삿날을 정해놓은 어느 날.

그는 지인들과 송별 자리를 가졌다.

마음이 허전했고, 작별은 아쉬웠다.

술은 평소보다 많이 들어갔다.


새벽녘, 그는 익숙한 골목으로 향했다.

조명이 흐릿한 골목길, 비슷비슷한 단독주택들이 이어진 동네였다.

문이 열린 집이 하나 보였고, 그는 자연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신발을 벗고, 익숙하다고 느낀 방에 들어가 옷을 벗고 침대에 누웠다.


그 집은, 그의 집이 아니었다.


그 시각, 그 집의 남편은 잠시 편의점에 다녀오겠다며 문을 잠그지 않고 나갔고,

그 사이 이 일이 벌어졌다.

인기척에 잠에서 깬 여성은 소리를 질렀고,

경찰이 출동했다.


그는 반쯤 옷을 벗은 채, 깊이 잠든 상태였다.
경찰이 들이닥쳤을 때도, 사진을 찍는 순간에도 깨어나지 않았다.

사건 기록에는 환하게 불 켜진 방 안에서,
경찰들이 둘러선 가운데 여전히 잠든 그의 모습이 남아 있었다.


경찰은 강간미수 혐의를 적용했다.

피해자의 공포와 현장의 정황만 놓고 보면, 그럴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는 상황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자신이 왜 그 집에 들어갔는지, 어떻게 잠들었는지조차 설명할 수 없었다.

다음날 아침, 나는 유치장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그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눈물을 쏟았고,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그를 잠시 지켜보다가 말했다.


"정신 차리세요. 지금은 울 상황이 아니에요."


그 말은 매정했지만, 진심이었다.

지금은 정신을 차려야 한다. 그도, 나도.


조금씩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가 들어간 집은 실제로 그의 집에서 몇 채 떨어진 위치였고,

구조와 외관도 매우 비슷했다.

골목의 형태, 현관 위치, 문이 열려 있던 우연한 조건까지.

모든 게 한 사람의 실수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그는 진심으로 사과했고, 피해자 역시 그 마음을 받아주었다.

몇 차례 조심스러운 대화를 통해, 피해자는 고소를 취하했다.

검찰은 강간미수 대신 주거침입 혐의로 사건을 정리했고,

재판부는 벌금형을 선고했다.


법적 절차는 비교적 빠르게 끝났지만, 그의 시간은 멈춰 있었다.

예정된 이사는 미뤄졌고, 그는 제주를 떠나지 못했다.

정확히 1년이 지나서야, 가족은 다시 떠날 수 있었다.


그 시간 동안, 그의 아내는 한 번도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고, 모든 재판에 함께 출석해 그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법정에서 그 두 손을 볼 때마다, 나는 그것이 책임을 함께 감당하겠다는 가장 분명한 언어처럼 느껴졌다.


송별회는 했지만, 그는 떠나지 못했다.

짧은 실수였지만, 그에 따르는 책임은 길고 무거웠다.

그리고 그 책임은 끝내 혼자의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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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법의 자리, 마음의 거리]

(1) 부동산 시세가 오르자 헤어진 그녀가 생각났다.

(2) 믿었다는 말의 끝에서

(3) 송별회는 했지만, 떠나지 못했다.

(4) 꿈은 이루어진다, 단지 나만 기쁠 뿐

(5) 세상에 둘만 남은 가족 - 그 아이 이름 앞에 '딸'이라는 말이 붙었습니다.

(6) 감염, 그리고 손해배상

(7) 당신의 말이 틀렸던 건 아닙니다.

(8) 소송이 길을 잃을 때

(9) 계약서에 없던 불편, 가게 안으로 들어온 갈등

(10) 감귤을 주문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11) 업데이트 중

(12) 그 말, 들은 사람이 없다면?

(13) 공감의 전제사실

(14) 특수하게 중한, 특수범죄

(15) 어른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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