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자리, 마음의 거리] (15)
시리즈 [법의 자리, 마음의 거리]
제주일보에 기고했던 칼럼을, 사람의 마음을 따라가는 글로 다시 풀어보려 합니다.
여름방학이 끝나갈 무렵, 집안에 묘한 긴장감이 돌기 시작한다.
숙제를 마무리하고, 흐트러진 생활 리듬을 조금씩 되돌리는 시간.
아이들은 대체로 무덤덤한 얼굴이지만, 그 안엔 설렘과 귀찮음이 엇갈려 있다.
부모들 마음도 다르지 않다. 잘 지낼 수 있을까. 또 무슨 일이 생기진 않을까.
요즘 학교폭력 관련 상담이 많아졌다.
예전처럼 물리적인 폭력은 많이 않은 편이지만, 그보다 더 문제되는 건, 말과 시선, 채팅방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보이지 않지만, 없던 일이 아니라는 걸, 너무 많은 어른들이 모르고 있다.
잔뜩 출력된 채팅 내용을 안고 한 어머님이 사무실을 찾아오셨다.
“애들이 단체방을 만들어서 한 아이를 괴롭혔는데, 거기서 제 아이가 주동자라고, 고소를 당했어요.”
보통 상담은 20분이면 끝난다.
그런데 이 날은 좀처럼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
“그 애가 먼저 그런 거예요.”
“우리 애가 그런 애가 아닌데요.”
그 어머님은 계속 피해자 이야기를 하셨다.
정작 상담이 필요한 건, ‘우리 아이가 한 일’인데.
“일단 이 사건부터 정리하고, 다른 건 그다음에 이야기해요.”
몇 번이나 방향을 다시 잡고 나서야, 조금씩 이야기가 풀렸다.
두 아이 사이에 다툼이 있었고, 이후 피해 학생을 탐탁지 않게 여기던 다른 아이들이 단체방을 만들었다. 의뢰인의 아이와 피해자 아이, 그리고 주변 아이들까지 초대됐다.
의뢰인의 아이는 채팅방에서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지만, 피해자 측은 그 방이 생기게 된 계기가 이 아이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갈등의 빌미를 제공했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주도적인 행동이 없었음에도 고소로 이어졌다.
어머님은 수백 장의 채팅 내용을 모두 출력해 오셨고, 흐름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됐다.
소년사건이라 처분이 가볍게 끝날 가능성이 높았지만, 아이가 위축되지 않도록 경찰 조사부터 함께 하기로 했다. 보호자인 어머님도 동행하셨다. 하지만 조사 중에도, 아이의 어머님은 계속 피해자 아이 이야기를 꺼내셨다.
“그 아이도 잘못한 게 있잖아요.”
담당 수사관은 진술의 방향을 다시 잡고, 몇 번이고 되물었다.
“지금 우리 아이가 한 말, 그 부분부터 말해 주세요.”
합의금 이야기도 나왔다. 피해자 부모는 큰 액수를 요구하고 있었다. 어머님은 억울하다는 감정에 휩싸여 있어, 조사 후에도 오히려 아이보다 더 흥분한 상태였다.
“일단 이 사건 결과를 보고 생각해요.”
소년 사건이기에, 크게 번지는 것보다는 적당한 선에서 두 아이 모두 다치지 않고 끝나는게 최선이라 일단 맞대응은 결과 후 생각하자고 조언했다. 어머님은 고개를 끄덕이셨지만, 마음은 여전히 복잡해 보였다.
한 달 후, 상담조건부 기소유예 처분이 내려졌다.
정식 재판은 없었다.
아이들은 이미 경찰 조사 이후 화해하고 사이좋게 스티커 사진을 찍었다며 보내왔다. 그러나 피해자 부모는 끝까지 고소를 취하하지 않았고, 아이의 어머님도 상대방을 고소할 수 있는 일이 없냐고 물어왔다.
나는, 이쯤에서 멈추자고 말했다. 그때는, 그게 최선이라고 믿었다.
두 아이들을 위해서는 좋은 선택이었는데, 부모들의 감정을 끝까지 풀 기회를 주지 않은 그 결정이 정말 괜찮았던 걸까, 가끔 의문이 남는다.
감정은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으니까.
아이들은 사진을 찍고 웃었지만,
그 일을 끝난 일이라고 말하는 어른은 아무도 없다.
나까지도.
시리즈 [법의 자리, 마음의 거리]
(5) 세상에 둘만 남은 가족 - 그 아이 이름 앞에 '딸'이라는 말이 붙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