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자리, 마음의 거리] (16) - 마지막 이야기
3년 가까이 신문 칼럼을 써오면서,
과연 어떤 분들이, 어떤 마음으로 읽고 계실지 늘 궁금했습니다.
그 마음에서 시작한 브런치스토리였습니다.
어쩌다 보니 작가로 선정되고,
그렇게 한 편씩 글을 올리게 되었고,
정성이 담긴 반응들을 마주하면서
처음 계획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이번 16번째 글을 끝으로,
'법의 자리, 마음의 거리' 시리즈는 잠시 멈추려 합니다.
언젠가 또 다른 이야기로 인사드릴게요.
그동안 함께해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2025년이 절반을 넘겼다. 시간이 참 이상하다. 지나고 나면 빨랐다고 느껴지지만, 그 순간에는 너무도 무겁고 길게만 느껴졌던 시간들이 있다. 지난겨울, 그러니까 2024년 12월은 아마도 그렇게 기억될 것이다.
연말을 맞아 사람들은 들뜬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고, 나 역시 분주한 일상 속에서 한 해를 마무리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밤, 모든 것이 이상하게 뒤틀렸다.
잠들기 전, 뉴스 속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계엄 선포”. 처음엔 또 자극적인 제목이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유언비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뉴스 창을 닫고, 늘 그렇듯 유튜브에서 즐겨보는 뉴스 라이브 방송을 틀었다.
그런데 눈앞의 영상은 믿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몇몇 국회의원들이 시민들의 도움을 받아 국회 담장을 넘고 있었다. 경찰이 가로막은 국회를 우회해, 그들은 문자 그대로 등원을 하고 있었다. 카메라는 가까스로 국회 내부에 진입했고, 흔들리는 카메라와 카메라를 잡고 뛰는 제작진의 가쁜 숨소리가 한 참 들렸다. 국회의원들이 속속 들어오면서 미리 들어가 있던 진행자와 간단한 인터뷰를 이어가다 갑자기 무장한 군인들이 들이닥치는 모습이 생중계됐다.
나는 그 장면을,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지금이 정말 2024년이 맞는지, 이게 현실인지 의심스러웠다. 그저 화면을 응시하며 숨을 죽였다. 그리고 국회의 정족수가 채워지길, 계엄 해제 결의안이 통과되길 간절히 바랐다.
결국 계엄은 해제되었지만, 그 밤 이후로도 마음은 한동안 진정되지 않았다. 나라 전체가 뒤숭숭했고, 사람들 사이엔 낯선 긴장감이 감돌았다. 연말의 들뜬 기운은 사라졌고, 새해를 준비하는 설렘도 잠시 멈췄다.
그리고 정확히 일주일 뒤, 12월 10일. 제주지방법원에서 4·3 직권재심 재판이 열렸다.
희생자 30인의 무죄를 구하는 날이었다. 나는 변호인으로 법정에 출석했다.
어쩌면, 열리지 못했을 재판이었을지도 모른다.
변론을 준비하며 문득 생각이 들었다.
지난 3년간 여러 재심 사건에서 변론을 하면서도, 나는 단 한 번도 “4·3과 같은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무죄를 선고해 달라”고 말한 적이 없었다. 그런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말할 필요조차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과 며칠 전, 국회 운동장에 군용 헬리콥터가 착륙하고, 무기를 든 군인들이 민간인을 향해 다가오는 장면을 직접 보았다. 그 순간 나는 온 몸으로 이해했던 것 같다.
우리가 단단하다고 믿어온 민주주의는 생각보다 훨씬 더 연약하고, 시민들이 쌓아올린 법의 질서는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4·3은 과거의 비극만이 아니라, 지금도 되풀이될 수 있는 현실이라는 것을.
그날 재판에서 나는 마음속에서 솟아오르는 두려움과 책임감을 안고 변론을 했고, 진심을 담아 말했다.
"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4.3 재심 재판에서, ‘같은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무죄를 선고해달라’는 말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4·3과 같은 일이 반복될 수 있다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난 일주일간, 단 몇 사람의 잘못된 결정만으로도 같은 역사가 반복될 수 있음을, 시민들이 쌓아올린 민주주의가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음을 우리 모두 지켜보았습니다.
결국 4·3도, 그리고 그 오랜 침묵도, 누군가의 오판과 그로 인해 만들어진 두려움의 사회가 만든 결과였습니다. 오늘의 피고인들이 겪었던 아픔과 좌절, 무력감과 모욕감. 제가 그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그 고통을 두려움 없이 말하실 수 있도록, 그래서 우리 사회가 그 고통을 듣고 공감할 수 있도록, 공감하는 시민들이 다시 연대할 수 있도록,
그래서 같은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각 피고인들에게 무죄를 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목이 메었고, 눈물이 차올랐다.
그 눈물은 두려움의 눈물이었고, 동시에 안도의 눈물이기도 했다.
민주주의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제서야 절감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이 다시 한 번 민주주의를 지켜냈다는 사실이 가슴을 울렸다.
제헌헌법부터 제2차 개정헌법까지, ‘대통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는 조항은 있었지만, 그 계엄을 어떻게 해제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규정이 없었다. 말하자면, 선포는 가능하지만 해제는 대통령의 의지에만 맡겨져 있었던 것이다.
계엄 해제를 국회가 요구할 수 있도록 규정한 건 제5차 개정헌법부터였다. 그리고 지금처럼, 국회가 의결하면 대통령이 “해제하여야 한다”고 명시한 것은 제7차 개정헌법에서 처음 등장한다. 그 사이, 우리 헌정사에서 몇 차례 계엄을 경험했고, 그 경험 위에 조문 하나하나가 덧붙여졌다.
그래서 이번에도 다행히, 헌법이 작동했다.
계엄 해제를 요구할 수 있는 조항이 있었기에, 국회는 그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고, 우리는 다시 한 번 민주주의를 지켜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조항이 헌법에 있다는 사실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마음이 뜨거워졌다.
그건 당연히 있어야 하는 조항이 아니라, 수많은 시민들의 피와 눈물로 이루어진 조항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법과 권리들 가운데,
거저 얻은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시민들이 법을 지켰고, 이번엔 시민들을 법이 지켰다.
시리즈 [법의 자리, 마음의 거리]
(5) 세상에 둘만 남은 가족 - 그 아이 이름 앞에 '딸'이라는 말이 붙었습니다.
(16) 시민들이 지킨 법, 시민들을 지킨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