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의 이름 앞에 '딸'이라는 말이 붙었습니다.
시리즈 [법의 자리, 마음의 거리]
제주일보에 기고했던 칼럼을, 사람의 마음을 따라가는 글로 다시 풀어보려 합니다.
사람들은 종종 변호사를 ‘싸움을 대신해주는 사람’으로 생각한다.
법정에 서서 상대방을 향해 날카로운 언변을 쏟아내는 드라마나 영화 속 장면을 떠올리는 것이다.
하지만 변호사의 진짜 일은, 상대와 싸우는 일이 아니다.
누군가의 사정을 대신 풀어내고, 그것이 법이라는 언어로도 타당하다는 걸 재판부에 설득하는 일이다.
그래서 때때로, 법정에는 싸움이 아니라 확인이 필요할 때도 있다.
진실이지만 증명되지 못했던 것을, 인정받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그날, 일본에서 한 통의 메일이 도착했다.
보내는 이는 김갑순(가명) 씨. 60대 중반의 재일교포 여성이었다.
오래전 어린 시절, 부모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간 그녀는
어느 순간부터 ‘이을숙’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야 했다.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서류 한 장, 도장 하나의 실수였을지도 모르고,
타국에서 생활하기 위해 새로운 신분이 필요했을지 모른다.
이을숙이라는 이름으로 일본에서 학교를 다니고, 성인이 되어 결혼하고,
아이 둘을 낳으며 수십 년을 살아냈다.
그러다 어느 날, 김갑순 씨는 일본 내 법률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본래 이름을 되찾게 되었다.
마침내 ‘나’로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남아 있었다.
그녀의 자녀들은 여전히 서류상 ‘이을숙’의 자녀로 되어 있었다.
“큰아이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어요.”
그녀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남은 딸 하나, 이제 둘뿐이었다.
딸은 여전히 서류상 ‘이을숙’의 자녀였고,
김갑순 씨는 법적으로 딸의 엄마가 아니었다.
“세상에 딸과 나, 둘만 남았는데… 딸의 엄마가 되고 싶어요.”
그녀는 덧붙였다.
“상속 때문이 아니에요. 가진 것도 없고, 바라지도 않아요.
그저… 내가 내 딸의 엄마라는 걸, 법이 인정해줬으면 해요.”
그 말 한마디에 모든 게 담겨 있었다.
소송 절차는 복잡했다.
딸이 원고가 되어, 먼저 ‘이을숙’과는 친생자관계가 없다는 판결을 받아야 했고,
동시에 ‘김갑순’과는 친생자관계가 존재한다는 판결도 받아야 했다.
더구나 ‘이을숙’은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법적으로는 사망한 사람은 피고가 될 수 없고,
이 경우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의 소에서는 피고를 ‘검사’로 하여 소를 제기한다.
딸과 어머니 모두 일본에 살고 있었고,
국내 주소지는 오래전 제주에 있었기에,
소송은 제주지방법원에 제기했다.
국경을 넘는 송달은 더뎠고,
코로나19의 여파로 국제우편이 지연되면서,
첫 재판까지 7~8개월이 걸렸다.
드디어 열린 재판. 재판장은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원고와 김갑순 씨는 실제 어머니와 딸 관계인 거죠?”
“네. 출생부터 지금까지 함께 살아온, 혈육입니다.”
재판장이 다시 물었다.
“상속 문제는 없고요?”
나는 잠시 숨을 골랐다가, 그간 들었던 그들의 사연을 대신 전했다.
“큰아들이 세상을 먼저 떠나고, 세상에 둘만 남았습니다.
상속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저… 엄마와 딸로 살아온 시간들을 법이 확인해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말수가 적던 재판장은 그 말을 오래 곱씹는 듯했다.
그리고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다.
“이건 오래 끌 일이 아니겠네요. 하루라도 빨리 정리해야겠습니다.”
그렇게 선고기일이 지정되었고,
이후 재판부는 두 건의 판결 모두 인용했다.
이을숙과는 친생자관계가 없고, 김갑순과는 친생자관계가 존재함을 인정한 것이다.
판결문이 일본으로 송달되던 날,
김갑순 씨는 내게 짧은 메일을 보냈다.
“정말 감사해요. 이제 저, 딸의 엄마예요.
마음 놓고, 함께 늙어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법정에서의 싸움은 없었다.
누구를 이기거나, 무너뜨릴 이유도 없었다.
이 소송의 목적은, 단 하나였다.
‘가족을, 가족으로 되돌리는 일.’
세상에 둘만 남은 그들에게 필요한 건,
다행히도 싸움이 아니라 판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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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을 묻는 마음과
책임을 전가당하는 마음 사이.
그 거리에서 법은 어디쯤 서 있었을까.
시리즈 [법의 자리, 마음의 거리]
여섯번째 이야기
'감염, 그리고 손해배상'
시리즈 [법의 자리, 마음의 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