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즈음, 한창 온라인 수업 준비로 전국의 학교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을 때, 다른 학교에서 근무하는 형과 이런 통화를 나눈 적이 있다.
"00아. 나 너무 회의감이 든다."
"왜요. 형?"
"동학년 선생님들이랑 같이 동영상 강의도 찍고 자료도 다 만들고 했는데, 제대로 안 듣는 애들이 너무 많아... 이게 어떻게 준비한 수업인데... 하..."
정말 열심히 준비한 동영상이고 꽤 퀄리티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애들의 참여도가 저조해서 회의감이 든다고 했다. 콘텐츠 학습뿐만 아니라, 쌍방향 수업도 같이 병행하고 있지만 그것 또한 효과가 미미하다고 했다.
"쌍방향 수업을 하는데 딴짓을 하는 애들이 너무 많아... 학생수가 27명이나 되니깐 일일이 다 관리하기도 어렵고... 잘 따라오는 친구들은 잘 따라오는데 안 하는 친구들은 너무 안 해... 카메라를 아예 끄고 수업을 듣는 애들도 있고... 아, 근데 동학년 선생님들께서는 수업을 못 들었거나 학습이 뒤쳐지는 친구들을 위해서 따로 영상도 만들자고 하시네..."
여러분들은 이 대화를 듣고 어떤 생각이 드는가? 나의 경우, 노력 대비 성과가 너무 적어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수업 자료 하나하나에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들어갔을 텐데... 형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싶었지만, 그동안 워낙 열심히 준비를 했다는 걸 알고 있기에 가만히 형의 얘기를 들어주었다. (할많하않...)
형네 학교 학생들은 과연 수업 내용이 별로라서 수업을 열심히 안 들은 걸까? 그렇다면 수업의 질을 대한민국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면, 이 학생들은 강의를 열심히 들을까? 대한민국에서 수학을 제일 잘 가르치는 사람이 와서 수학으로 쌍방향 수업을 진행한다면 학습에 의욕이 없던 학생들이 갑자기 학습의욕에 불타서 열심히 수업에 참여할까? 솔직히 난 회의적이다. 아무리 좋은 학습도구와 자료를 가져다주어도, 학습동기가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학습동기는 매 수업 시간 초반에 유튜브 영상이나 뉴스 자료를 보여 주면서 일회성적인 호기심을 유발하는, 매 지도안마다 고정적으로 있는 동기유발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학습 동기는 보다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학습의욕을 유지하게 하는 '내적 동기'를 말한다.
약 1년 반 전, 난 그 무엇보다 학습에 대한 내적 동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어떻게 하면 아이들의 학습동기를 끌어올릴 수 있을 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하지만 뾰족한 방법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생전 그런 내용들을 경험한 적도, 배운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가끔씩 아이들이 "선생님, 공부는 왜 해야 하는 건가요?", "선생님, 왜 살아야 하는 건가요?"하고 질문을 하면 당황해서 이렇게 대충 대답을 얼버무리거나 회피하곤 했다.
"음... 좋은 대학 들어가고 좋은 직장 취직해서, 돈 많이 벌고 살아야지!" (얼렁뚱땅 넘어가기)
"쓸데없는 질문 그만하고, 공부해!" (회피)
도저히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질문들은 나 또한 어렸을 때, 궁금해했던 질문들이 아니었던가! 그래, 그동안 잊고 있었다. '일단 공부부터 하고, 좋은 대학부터 가고, 취직부터 하고 고민하자.'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레 잊혀진 그 의문들...
인생을 사는 이유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독서와 사색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위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위해서 말이다. 찾고 또 찾다 보니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람마다 각자 지니고 있는 인생의 의미가 다르다는 것을... 가족을 위해서, 인류에 봉사를 하기 위해서, 종교를 위해서, 돈을 많이 벌어 편안하게 살기 위해서, 불의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 등 각자 가지고 있는 인생의 의미가 달랐다.
그리고 공부를 하면 하나밖에 없는 우리의 인생을 좀 더 풍요롭고 다채롭게 만들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공부를 통해, 우리 만의 삶의 의미를 찾거나 확장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당장 아이들에게 내가 깨달은 바를 가르쳐주고 싶었다. 공부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고, 인생을 재미있게 즐기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내가 변해야 했다. 내가 먼저 아이들에게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야 했다. 아이들에게 틀을 깨고 성장하면서 인생을 즐기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다짐했다.
변한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결심한 뒤로 많은 것들이 변했다. 사진 찍는 것조차 질색하던 내가 유튜브를 시작했고, 몇 년 동안 '해야지...'하고 생각만 하던 뮤지컬 단체에 들어갔고, 최근에는 4개월 반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쓰고 있고, 결혼식을 미루지 않고 과감하게 유튜브 결혼식에 도전하여 공중파 방송도 출연하게 되었다.
우리 반 아이들에게 이렇게도 인생을 재미있게 살아갈 수 있다는 하나의 예시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냥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이 원하는 인생이 아닌 스스로의 인생을 살아가고 또 그 인생을 즐기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었다.
선생님의 변화로 아이들의 나에 대한 신뢰가 어느 정도 쌓였을 즈음, 아이들에게 본격적으로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방법들과 도구를 소개해주었다. 그동안 성장하면서 얻은 깨알 같은 꿀팁들을 전수해주었다.
먼저 아이들이 스스로 진정 되고자 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찾도록 도와주었다.
데일리 리포트를 통해, 우리의 유한한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자신의 정한 길을 올바르게 가고 있는지 점검하는 방법도 가르쳐 주었다.
'그냥 해라.'라고 하지 않고, 왜 이 활동이 필요하고 왜 이런 규칙이 필요한 지 일일이 다 설명해주었다.
삶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고, 하루하루를 충만한 삶이 될 수 있게 도와주는 도구도 소개해주었다.
실패나 고통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어떻게 우리 인생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지도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나는 이 모든 과정들을 아이들과 '함께'했다. 나 혼자 가르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배워나갔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을 거치면서, 그동안 아이들의 성장을 옥죄고 있던 알에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했고, 이제는 한, 두 명씩 그 알을 깨고 나오는 중이다.
지난 1년 반 동안 '내적 동기'와 '성장'에 대해서 내가 알아낸 것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보다 근본적인 것들에 대한 질문들은 '내적 동기'를 향상시킨다. 나의 꿈이 뭔지, 내 인생에서 내가 진정하고 싶은 것들은 뭔지, 공부는 왜 하는지, 인생은 왜 사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과 그에 대한 해답을 찾는 과정들은 아이들이 성장에 대한 내적 동기를 향상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둘째, '내적 동기'에 '환경설정'까지 가미가 되면, 배로 성장할 수 있다. 스스로의 의지만으로는 힘들다. 꾸준하게 행동을 할 수 있게 만드는 환경설정이 필요하다. 선생님이 직접 모범을 보이며 반 분위기를 성장하는 분위기로 만들었을 때, 집 환경을 부모님과 함께 공부하는 환경으로 바꿨을 때 등 올바른 환경설정을 통해, 아이들이 확연하게 달라지는 것을 보았다.
셋째, 누구나 변할 수 있다. 왕따 학생이 전교 부회장이 된 경우, 단원평가 수학 0점짜리가 100점을 맞은 경우, 문제아라고 불리던 학생이 모범학생이 된 경우 등 그동안 많은 변화를 봐왔다. 지금 공부를 못 하건, 왕따이건, 문제아건 간에 올바른 방법으로 꾸준하게 의식적인 노력을 하면 누구나 바뀔 수 있다.
위와 같이 멋지게 말을 했지만, 사실 아직 나는 많이 부족하다. 새로운 지식들을 배우면 배울수록, 내 실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지금 내가 가고 있는 방향성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계속 나 자신과 아이들의 성장을 위해, '내적 동기형성'과 '환경설정'에 힘써볼 생각이다.
#동기 #성장 #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