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을 떠나는 날, 왕처럼 시간을 보냈다. 왕이 산책하던 정원을 둘러보고, 왕이 사람들을 맞이하던 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세비야 알카사르는 지금도 Real, 즉 royal 이라는 왕실 수식어가 붙은 궁이다. 수백년 전 왕이 살았고, 현대의 왕이 가끔 묵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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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사를 누린 날, 운도 좋았다. 세비야는 대성당만 미리 표를 구했더니 알카사르가 더 어렵더라. 온라인 티켓은 매진. 9시쯤 현장 티켓 오픈 30분 전에 갔는데 이미 수십 명이 줄을 섰더라. 30분 단위로 30명씩 티켓을 판다. 체크아웃 앞두고 제대로 못볼까 염려하던 우리는 10시 last ticket 2장을 끝내 구했다. 우리 앞에 3명 가족 두 팀이 2장 티켓을 포기한 덕분이다. 실시간 줄어드는 티 티켓 숫자 보면서 쫄리던 우리는 환호했다. 이게 그리 신날 일인가? 그렇다.
로마 시대부터 이어진 궁을 14세기 페드로1세가 리모델링한 궁. 이슬람 문화에 심취한 왕이 알함브라를 모델로 만들어 닮았다. 알함브라보다 건축 면에선 살짝 아쉬운 곳도 있고, 넘치는 곳도 있고. 우리의 오늘 컨셉은 왕처럼 산책하기. 훌륭했다.
왕처럼 창 밖을 보자. 그도 점심 뭐 먹을까 생각한 날도 있었겠지?
아름다운 걸 보는 건 행복하다. 목욕탕조차 아름답다.
숙소가 알카사르에서 3분 거리라, 간신히 12시 체크아웃. 모퉁이 식당 Casa de La Moneda 에서 또 차가운 토마토 스프 살모레호를 먹었다. 질리지 않고 맛있다. 이 동네는 따뜻한 국물은 없나 하던 중 병아리콩과 새우 스튜, 아티초크 구이, 돼지고기까지. 대부분 4유로. 이것저것 맛을 탐험하는데 타파스 만큼 좋은게 없다. #마냐먹방 스페인 취향이다.
왜 다들 스페인 스페인 하는지 이제야 알았다. 음식 좋고, 날씨 좋고 볼거리 많다. 유럽인데 이슬람 문화의 흔적이 아름답다. 사실 이란이나 이라크, 요르단이 관광대국이 되지 못한게 아쉬울 지경이다. 석유를 둘러싼 지정학적 갈등이 그나라 사람들을 불행하게 하고, 그 문화를 가뒀다. 그 문명을 이렇게 우회적으로 만나다니.
스페인은 제국의 아우라도 갖고 있다. 식민지 강국의 흔적이 마냥 편하지 않은 피식민지 국가의 후손이지만 당대 지도자의 판단, 리더십, 놓친 것들을 같이 보게 된다. 이렇게 진지할 일인가? 정신차렷!
낮밤으로 둘러 앉아 가볍게 마시고 길게 수다 떠는 사람들의 나라. 집들이 좁은 골목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은 그늘을 나누기 위해서란다. 더운 나라에서 햇볕이 덜들도록 함께 그늘을 만들었다니. 넘 다정하잖아. 결정적으로 스페인 남자들은 잘생겼다. 이번에 뭘 도모하진 못했지만, 스페인에 애정을 담뿍 담고 간다.
#마냐여행 #스페인_11일차 #스페인_epi26
패키지 여행은 이쯤했으면 스페인 포르투갈을 다 돈다. 우리는 일정을 덜어내는게 일이었다. 세비야에서 모로코 마라케쉬로 들어가는 건 쉬운데, 2박3일 사막여행 위해 아틀라스 산맥 지나 종일 차를 탄다고? 포기했다. 이어 마드리드를 제꼈고, 포루투갈을 고민하다 리스본도 버렸다. 스페인 남부와 포르투만 살렸다.
3시50분 세비야에서 비행기를 탔는데 4시에 포르투 도착. 지구의 마법에 시간을 벌었다며 괜히 신났다. 세비야는 공항버스가 훌륭했지만 포르투는 간만 택시. 어제 구글지도 보다가 Bolt라는 앱을 깔았다. 처음 연결된 차가 공항 차선 빙빙 돌다 가버렸다. 그런데도 4유로 기본 청구. 이럴수가. 두번째 시도는 성공. 공항에서 숙소까지 Bolt 12유로면 물가 괜찮다.
포르투 에어비앤비 숙소도 만족. 언덕이라 뷰가 좋다. 언덕이 아닌 곳? 포루투엔 별로 없어 보인다. 이 도시 경사가 장난 아니라 그 멋진 풍경이 나오는 거였구나.
숙소 거리와 이름이 같은 비토리아 전망대에 이어 인근 클레리구스 성당 타워에서 일단 포루투 시내 감상. 익숙한 그 풍경이 여기서 보는 거구나! 역시 유명한 모루공원 일몰을 위해 슬슬 움직이며 적당한 식당 골랐더니 옆에 그 멋지다는 상 벤투 기차역이네? 와? 평범한 사람들, 특히 언니들의 타일 벽화라니 진짜 멋진걸? 저건 대성당이고? 사람들 노닥노닥 좋구나? 우리가 건너는건 동루이스1세 다리? 5시 반에 어슬렁 나왔는데 주요 관광지 벌써 몇개 봤다고? 이 도시 매력은 이런거구나!
구글로 고른 Impar Flores 식당은 세비야보다 비싸지만 음식은 좋았다. 생선스프를 주문했는데 남편의 반응. "동태탕이네?" 어쨌거나 맛있다는 얘기다. 문어 전채는 채소 듬뿍이라 빵과 함께 즐겼고, 대구 리조또는 조금 짰지만 맛있었다. 어느 정도냐면, 남편이 갑자기 행복하단다. 사실 치트키와 다름 없는 포르투 와인이 있었다. 진하고 달달하며 독한 포르투 와인. 낯설지만 맛있는 음식에 향 좋은 술 한잔. 행복하지 않으면 이상하지. 이럴 때 행복을 잔뜩 충전해야 한다. 분명 저녁 먹고 에그 타르트 하나씩 맛봤는데, 길가다가 초코 브라우니를 굳이 먹고 싶다는 그를 말리지 않았다. 이런날 행복해야지.
포르투 한 가지 문제는 앞서 다른 스페인 도시와 마찬가지로 일교차가 크다. 낮엔 반팔, 저녁엔 춥다. 강바람인지 바닷바람인지 차더라. 일몰 기다리며 남편 옆에 바짝 붙어 앉았다. 온기가 필요했다. #남편의_쓸모 하나 더 확인.
#마냐여행 #포르투_1일차 #스페인_포르투_epi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