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전살이 4 / 반디 (5세 누리찬방 교사)
여름이 끝나갈 무렵 칠보산 친구들과 통합 나들이로 ‘쑥 캐는 길’로 향했다. ‘쑥 캐는 길’로 올라 ‘운동기구 길’로 내려오려는 칠보산 산행. 그런데 이게 웬 일? 「출입금지」란다. 개인 사유지라나? 그런 까닭에 칠보산 산행 코스를 좀 다양화시킬 이유가 생겼다. ‘쑥 캐는 길’에서 ‘운동기구 길’ 코스도 유지되고 있기는 하지만.
‘운동기구 길’로 올라 엘지빌리지 4단지로 바로 이어지는 개심사 길로 내려오기. 개심사로 올라 무학사 길로 내려오기. 새로운 도전에 투덜거리지 않고 즐겁게 다녀오는 아이들을 보며 ‘우리 누리찬방과 정상에 다녀오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되었다. 가고 싶어! 해내고 싶어! 생각하고 생각하다가. 10월 셋째 주 방별 나들이 날 첫 도전을 감행한다.
"얘들아 우리 10시에 출발할 거야. 일찍 올 수 있지?" 내 목소리에는 무언의 비장함이 담기고, 아이들과는 일찍 등원할 것을 미리 약속하고, 정상에 오르기 가장 수월할 것 같은 청석골 길을 선택하여 출발! 우리들만의 규칙을 서로 나누며 의지를 다졌다.
° 앞선 친구들은 반디가 보이는 거리까지만 달리기
° 반디와 친구들이 보이기 시작한다고 무조건 달리지 말고 반디가 출발! 하면 다시 달리기
° 천천히 가는 친구들은 반디 손 안 잡고 스스로 올라가기 (반디 손은 둘, 너희들은 세 명, 속상해지지 않으려면 모두 스스로 올라보기)
° 내리막길 무서우면 엉덩이로 내려오기
° 내가 넘어지지 않을 속도로만 달리기
모둠을 통해 충분히 이야기 나누고 산을 오르면서도 여러 번 멈춰 이야기하기를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울 아가들 다섯 살이 맞나?' 싶을 정도로 약속도 잘 지키고 산행을 즐기기까지 했다. "너희들 몇 살이니?", "허허. 어디에서 왔니?", "너희들이 진정한 산악인이다 (엄지 척!)", 산을 오르며 만나는 어른들의 관심과 칭찬에 익숙해져 갈 즈음부터는 스스로 "안녕하세요!" 인사까지 척! 척!
정상까지 가면 마이쮸 하나씩 먹을 수 있다는 희망에 힘을 내보기도 하고, 미리 먹고 싶어서 "반디! 나 에너지가 다 떨어졌어. 에너지가 필요해! (속뜻 : 그러니까 그냥 빨리 먹자~ 히잉)"를 여러 번 반복해서 말하기도 했지만. "그래? 그럼 우리 물 에너지부터 채워보자~"로 속닥 속닥 속닥 속닥.
그런데.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 열심히 달리고 즐겁게 올라갔는데 터전에 돌아갈 시간을 계산해 보니 정상까지는 무리. 정상 근처 운동기구에서 아쉽지만 되돌아 내려가기로 결정했다. 무척 아쉬워하는 반디를 위로해주는 듯 함께 아쉬워하기를 잠깐 해 주더니 모두 "마이쮸는? 그럼 지금 먹을 수 있는 거야? ", "와~ 아껴먹어야지!", "난 빨아먹을 거야!" 하하하하하.
"아껴 먹으면 똥 돼!" 성윤이의 한마디에 모두 깔깔깔. 아껴먹으면 똥 된다는 말을 처음 들어 본 것이 틀림없는 소민이의 "똥이 어떻게 돼?"에 다시 한번 까르르. 지나가다 꽁냥꽁냥 다섯 살 아이들의 대화를 듣게 되신 아저씨께서도 한참을 하하하. 날도 좋았던 10월의 어느 날, 칠보산을 안전하고 행복하게 다녀오며 첫 도전을 마쳤다.
첫 도전에 힘을 얻어 개심사로 올라 당수동 방면 살짝 찍고 무학사로 내려오기, 개심사로 올라 청석골로 내려오며 가을 논두렁길도 걸어보기, 상반기에 7세 형님들 연합 먼 나들이 코스였던 운동기구로 올라 무학사로 내려오기까지 가뿐하게 성공해냈다.
"누리찬! 너희들은 정말 최고야! 너희들을 만나게 된 반디는 정말 행복해!"
미세먼지 나쁜 날이 많아 칠보산 구석구석을 다 돌아보진 못했는데. 너무 춥지 않은 겨울 날씨를 만나게 되면 우리 다시 한번 달려볼까?
편집자의 말 : ‘반디’는 5세 누리찬방을 맡고 있는 교사의 별칭이다. 이 글을 쓸 무렵 아인이는 반디를 ‘반디 대모험’이라고 불렀다. 누리찬 방의 나들이 사진 속에서 아인이는 늘 등을 보이며 뛰어가는 가장 선두에 있었다. 가을날, 신났던 그 대모험의 시간들이 아이들의 기억 속에 낙엽처럼 차곡차곡 잘 쌓였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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