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보산에 살어리랏다 2 / 모두 댓글 2
공동육아, 참 생소한 말이기에 아직도 공동육아라고 하면 그게 뭐냐고 묻는 분들이 많습니다.
때로는 '그거 엄마들이 돌아가면서 아이들 돌보는 거 아니야?'라는 말을 듣기도 하죠.
우리는 어찌 보면 굉장히 소수의 길을 걷는 사람들일지도 모릅니다.
공동육아는 어떤 계기로 당신의 삶 속에 들어왔나요?
'공동육아'를 처음 알게 된 당신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우주인(아인 엄마)
김종철 평론가가 내는 <녹색평론>이라는 격월간지에서 호매실에 성공한 공동육아 어린이집의 사례로 이곳이 소개된 적이 있었다. 결혼도 하기 전이었는데 그 기사가 참 흥미로웠다. 칠보산 아래에서 매일 산을 타고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참 생기 있게 느껴졌다. 몇 장의 사진이 기사에 함께 실려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사진 속에 '천사'(오래 근무하셨던 교사의 별칭)가 있었을까? 갑자기 궁금한데, 찾아보고 싶어도 몇 년도에 실렸던 건지 당최 기억이 안 난다.
시냇물(은재 엄마)
아주 오래전(20대 중후반쯤) 친구들 모임을 갔는데 한 친구가 자기 아이가 새로 옮겼다는 어린이집 이야기를 했다. 그곳은 공동육아 어린이집이라고 했는데, 별천지다, 아이들 천국이다, 선생님 호칭을 안 쓰고 별칭을 부른다, 청소도 부모님들이 하고 선생님들은 안식월 휴가도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때는 그저 ‘그런 곳이 있구나’하며 흘려 들었고 까맣게 잊었다. 결혼을 하고 은재를 낳아 기르던 어느 날 갑자기 아주 오래전 친구의 말이 떠올랐고, 공동육아 어린이집 검색을 하게 되었다. 정보를 하나씩 얻어가며 은재가 크면 꼭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엄지(민서 엄마)
공동육아에 대해 자세히는 알지 못했다. 그저 일반 어린이집과는 다르게 아이들 중심이며 바깥놀이 위주라는 정도의 정보만 알고 있던 터에 남편과 민서의 가정 어린이집 졸업 후 보낼 5세 기관에 대해 상의하게 되었다. 자유롭게 아이를 키우고 싶어 하는 남편은 공동육아 어린이집이 어떻겠냐는 의견을 말했고 두 세 곳의 공동육아 어린이집 설명회에 참석 후 교사들의 따듯한 시선과 밝은 표정에 끌려 칠보산 어린이집을 선택하게 되었다.
파랑(준우 엄마)
지금은 초등학교 고학년의 학부모인 나의 대학 친구이자 회사 동료가 아이 둘을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보낸다고 하여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때는 내가 아이가 없던 터라 친구가 어린이집에 대해 하던 이야기들을 그냥 흘려들었었다. 그러다가 준우가 태어나고 가정어린이집에 보내던 중 이전에 살던 곳의 지역 카페에 한 엄마가 자신의 아이를 보내고 있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써놓은 글들을 보게 되었다. 글을 읽으며 점점 마음이 끌려 본격적으로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대해 알아보고 보낼 곳을 찾아보기 시작했고, 칠보산 어린이집과 인연이 닿아 여기까지 이사를 오게 되었다.
뭉치(이든 엄마)
수원으로 이사를 오기 전부터 인터넷에서 호매실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첫 어린이집에 대한 고민을 했다. 직접 이사를 온 후 이든이 세 살 때 칠보산 어린이집 카페를 알게 되었고 자연 속 자유롭고 행복한 아이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고 미소가 지어졌던 것 같다. 칠보산 어린이집 전 홍보이사 구슬비와 만나 아이들 하원 전 상촌 운동장에서 상담을 받았다. 상담이라기보다 아이들이 신나게 노는 곳에서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체력이 약한 이든도 그 아이들과 함께 신나게 노는 모습을 상상했고, 참 설렜던 기억이 난다. 공동육아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지만 이 칠보산 자락 자연에서 매일 뛸 수도 있고 자유롭게 생활한다는 것에 이것저것 계산은 하지 못했다. 현 7세가 되어 첫 상담하던 운동장의 형님들처럼 이든도 씩씩하게 자라고 있어 좋다.
햇살(서연, 서준 엄마)
공동육아를 처음 알게 된 건 친구 '선물'을 통해서이다. 그 당시 선물은 아이를 칠보산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었고 단단한 그 친구와 아이를 보니 이 곳에 우리 두 아이도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공동육아의 '공'자도 모르는 저는 친구 따라 강남 온 건데 이제와 생각을 해 보면 정말 잘 왔다고 생각한다. 서연이가 멋지게 자라 이제 졸업하게 되었고 서준이도 즐겁게 다니고 있는 모습을 보니 잘 왔다는 생각을 항상 한다.
지화자(찬영 엄마)
아파트 입구에 붙어 있던 '전단지'를 보고 상담을 했다. 나중에 보니 그 전단지는 당시 홍보이사였던 '반디'께서 프린트로 뽑아 붙이신 것이었다. 공동육아에 대해 전혀 모르고 면담을 진행했던 터라 이상한 질문(출자금 영수증 해 주냐. 떼이는 거 아니냐. 믿을만한 단체냐 등)만 던졌던 기억이 난다.
책벌레(상준 엄마)
상준이 위로 두 아이를 키우면서 막내는 열심히 놀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중, 금곡동으로 이사 오면서 칠보산 어린이집을 오드리에게 소개받게 되었다. 바로 문의 전화드리고 면담을 봤다. 공동 육아를 특별히 원했다기보다는 대형 유치원이 싫었던 것 같다. 이렇게 어리바리 공동육아에 첫발을 내딛고 긴 육아의 터널을 거쳐 올해 졸업을 한다.
몽실(선율 엄마)
휴직하고 선율이를 독박으로 돌보고 있을 때 매일 놀이터를 나갔던 것 같다. 그때 쉬리를 만났고 선생님들이 너무 좋고 아이들도 정말 멋진 공동육아 어린이집이 있다고 들었다. 그래서 한번 가봐야지 하고 있던 중 설명회를 가게 되었고 거기서 만난 나비와 겨울에게 반했던 것! 터전도 한번 가봤는데 선율이가 아이들과 너무나 즐겁게 뛰어노는 모습을 보고 잘 지낼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고 다행히 지금까지 즐겁게 다니고 있다.
바다(민성 엄마)
인지학습을 중시하는 어린이집, 바깥에서 흙을 만지고 높은 곳에 오르는 우리 집 아이들이 별종이 된 동네에서. 답답함을 느끼던 중 검색을 통해 사이좋은 방과 후, 칠보산 공동육아라는 곳을 처음 알게 되었다. 추운 겨울에 운동장에서 뛰어놀며 커다란 눈덩이를 맘껏 부수고, 고드름을 맛보는 아이들의 행복한 몸짓이 인상 깊었다. 우리 아들들도 이곳에서는 비교하는 세상에서 벗어나 맘껏 놀 수 있겠구나 싶었다. 아이들은 잘 놀아야 한다!!라는 생각과 딱 맞는 곳을 찾은 것 같았다.
방울(시윤 엄마)
시윤이는 12월생이라 늦고, 성격은 예민한데 대근육 활동을 많이 하고 아이들을 기다려주는 교육을 하는 곳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공동육아의 철학보다는 아이가 편히 지낼 수 있는 기관을 찾다가 우연히 지역주민의 소개로 알게 된 곳이다.
새론(예주 엄마)
직업이 교사다 보니 신경을 써도 순간 놓치게 되는 순간들이 있어요. 분교에서 11명의 아이들과 있을 때는 몰랐는데 도시에서 40명을 맡게 되었을 때 느꼈어요. 선생님 대비 학생 수가 적은 곳이 우리 부부의 우선순위였어요.
보리(소민 엄마)
공동육아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지금 현 조합원인 달님을 통해서였어요. 아이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키우고 싶어서 들어오게 되었지요. 칠보산에 와서 무엇이든 엄마의 시선이 아닌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어요.
달님(솔이 엄마)
대안 교육과 민들레에 대해서 처음 접하게 것은 대학교 1학년 학회 세미나를 통해서 알게 되었어요. 대안학교의 구체적인 형태나 종류, 교육 목적에 대해서 대학교 생활 내내 동기 선후배들(해님도 있었어요^^)과 함께 열심히 토론한 기억이 나네요. 대안 교육이 공교육에 대한 진정한 대안이 될 수 있는가가 논의의 쟁점이 되었죠. 그때 대안 교육이 참 매력적이구나하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직접적으로 접한 것은 책에서였어요. 이미 너무 오래라 책 제목은 기억이 안 나지만, 신문사에서 특집 기사를 엮어서 만든 책이었고 주제는 '대안적 삶'에 관련한 내용이었어요. 생협, 지역 대안 화폐, 의료 협동조합, 대안 대학 등의 주류를 벗어나 대안적인 삶을 살고 있는 지역과 공동체를 소개하는 책이었는데 거기에 한 꼭지로 공동 육아가 소개되었고, 산본의 '감나무 어린이집'과 아이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었어요. 나중에 아이를 낳게 된다면 나도 꼭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고요. 그리고 기회가 와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칠보산 어린이집을 선택했답니다. 10년도 더 된 그 책에서 공동 육아의 참신하고 새로운 교육적 관점에 감탄한 기억이 있는데, 이제는 그런 공동 육아의 가치를 공교육에서 가져가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신기하기만 해요. 문득 아주 천천히 이기는 하지만 세상이 변하고 있긴 한가보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그런 올바른 변화의 방향에 우리들의 목소리가 실려 있는 것이 아닐까. 살짝 자부심을 가져 봅니다.
기타
결혼하기 한 참 전이었는데 주변에 좋은 선배라고 느낀 분들이 공동육아에 대해 많이 이야기해주었다. 그 선배들이 설립하고 참여하고 그 속에서 겪는 여러 일들에 대해 해준 이야기는 공교육이나 일반 어린이집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그렇게 살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과 '공동체'라는 말에 담긴 낭만적인 느낌은 언제 결혼할지도 모를 그때 당시의 나에게 깊이 새겨졌다. 쉬리를 만나 결혼하고 찬이를 갖게 되면서 서수원에 그런 모임들이 있다더라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다행히 나와 쉬리가 발령이 서수원으로 나게 되었고 그런 가운데 쉬리의 적극적인 정보수집과 훌륭한 판단으로 현재 터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들어가는 글
시선 공유
터전 살이
아마 이야기
칠보산에 살어리랏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