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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Dec 31. 2019

9. 눈에 보이는 것이 다는 아니다.

[셀 게스트하우스의 비밀]

“그렇게 쉽게 지갑을 열면 안 돼요. 이 동네엔 이런 아이들이 정말 많거든요. 그 돈을 저 아이들이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다음엔 잘 생각해보고 지갑 열어요. 정말 감당할 수 있겠다 싶을 때.”

“아, 네. 잘 몰랐어요.”

설화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자신의 서투른 감정을 들켜버린 것 같았기 때문이다.

“좋은 곳 데려가 줄까요? 인도스럽지 않은 곳? 조금만 가면 있는데.”

설화는 강철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아, 조금 지쳐 보여서요. 인도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싫어하는 사람도 많으니까. 조금 기분전환이 필요해 보이는데.”

설화는 자신의 기분을 강철에게 완전히 들켜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숨길 필요가 없어 보였다.

“네. 좋아요.”

강철은 지나가는 릭샤를 하나 잡았다.

“코넛 플레이스”

강철의 말 한마디에 릭샤는 시동을 걸었다.

“150 루피”

“안 돼. 너무 비싸. 70루피”

“130 루피”

“비싸다니까. 80루피”

“120루피?”

“오케이. 100루피.”

“오케이”

두 사람의 흥정 모습은 꽤나 여유로워 보였다. 150루피가 몇 마디에 100루피가 되었다. 설화는 배짱 두둑한 강철이 마치 모아나에 나오는 마우이처럼 느껴졌다. 어디에서도 자신감을 잃지 않는 사람.

 


자동차가 아닌 릭샤를 타고 거리를 달리니 뜨거운 바람이 머리를 날렸다. 설화는 그 느낌이 싫지 않았다. 습기를 잔뜩 머금은 바람은 설화에게 잠시 두려운 마음을 내려놓으라고 말하는 듯했다. 옆 자리의 강철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휴대폰을 손에 들고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 어디 가는 거예요?”

“아, 지금 검색해보고 있어요. 코넛 플레이스라고 여기보다 좀 더 세련된 곳이 있어요. 그렇다고 엄청 좋은 건 아니고. 저 시내에 나가면 쇼핑몰도 많지만 난 좀 싫더라고요. 잠시만요, 아 여기 스타벅스가 있네요. 거기로 가면 되겠네요.”

 

설화는 인도에 스타벅스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자신이 머물고 있는 셀 게스트하우스의 모습, 그게 인도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드디어 릭샤가 멈췄다. 설화는 강철이 돈을 내는 모습을 쳐다보았다. 그는 기분 좋게 웃고 있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세련된 상가 건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곳이었다. 마치 명동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런 곳도 있었군요.”

“그럼요, 델리는 신기한 곳이에요.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고 있죠. 구경 좀 할래요?”

“아니요, 먼저 커피부터 마시고 싶어요.”

설화는 시멘트를 뚫고 올라오는 뜨거운 공기에 숨이 턱 막혔다. 머리를 날려주던 한 줌의 바람도 더 이상 불지 않았다.

“아, 그래요. 절 따라와요.”

 



 

스타벅스 안에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에어컨에서 차가운 바람이 나오고 있었다. 여러 외국인들과 인도 사람들이 앉아서 자신들의 일을 하고 있었다. 한쪽 테이블에서는 스터디를 하는지 책을 펼쳐 놓고 의견을 주고받는 사람들도 보였다. 설화는 인도 같지 않은 커피숍에서 왠지 모를 안도감이 들었다. 한국의 스타벅스에 조용히 앉아 각자의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던 모습이 떠올랐다.

 


설화는 퇴근 후 스타벅스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 시간을 가장 좋아했었다. 그 시간만큼은  돈을 벌기 때문에 이 정도의 커피를 사 마셔도 된다는 자아존중감이 생기곤 했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앉아있던 낯선 사람들의 모습도 그녀를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다. 아는 사람은 없지만 한 공간에서 느끼고 싶은 감정은 모두 비슷할 것이라는 유대감이 있었다.

형광등 불빛 같은 것이었다.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도 적당한 시선 안에 들어오는 사람들. 적당한 시선과 적당한 무관심은 왠지 마음을 여유롭게 만들어주었다.

 


“기분이 좀 풀렸나요? 아까는 정말 울 것처럼 보였어요.”

“아,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감사해요. 여기 오니까 기분이 좋아졌어요.”

강철은 웃고 있었다. 설화는 자신의 표정을 읽고 있는 그의 눈빛이 마냥 싫지 않았다.

“그런데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 델리에 왜 온 거예요?”

“아, 그게.”

“이런 곳을 좋아하는 것도 아닌 것 같고, 여행을 좋아하는 타입도 아닌 것 같고. 뭔가 사연이 있어 보이는데.”


설화는 자신의 비밀을 이 남자와 공유를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강철은 셀 게스트하우스와 꽤 친해 보였고, 더욱이 자신이 바로 출판사의 그 편집자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저 사실, 설화 씨 봤었어요. 공항에서요. 같은 비행기 탔었는데, 모르셨나 봐요.”

“아, 그랬군요.”

“여자 혼자 인도에 오면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겪어보면 그렇게 위험한 동네는 아닌데 아무래도….”

“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사실, 여행이 목적은 아니에요. 다른 목적이 있어서 왔어요.”

설화는 자신을 걱정해주는 강철의 진심에 이끌리듯 말이 나와 버렸다.

“다른 목적이요? 물어봐도 되나요?”

“음…. 셀 게스트하우스가 목적이었어요. 이곳에 와서 확인하고 싶은 게 있었거든요.”

“무슨….”

“마야. 마야를 만나는 거, 그게 제 목적이에요.”

“아, 그래서 마야를 물어봤군요. 곧 온다고 하던데, 정확한 날짜를 모르겠네요. 그런데 왜?”

“자세한 건 마야를 만난 후에 말해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마야가 혼혈인지 아닌지 확인해야 하나요?”

강철의 질문에 설화는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야는…. 음…. 뭐라고 해야 할까…. 일단 만나보세요. 그게 좋겠네요.”

“네.”

설화는 더 이상 묻지 않는 강철이 고맙게 느껴졌다.

“하야꼬는 떠났어요. 남쪽으로 여행을 간다고 하더군요. 정말 용기 있는 아이예요. 그리고 지난번엔 미안했다고 전해 달래요.”

“아, 네. 제가 실수한 건데요.”

“하야꼬가 밝아 보이지만, 자신의 어둠을 감추려고 일부러 밝은 척하는 거예요.”

“친한가 봐요?”

“아니 뭐, 친하다기보다 몇 번 말해보니 알겠던데. 그런 거 있잖아요. 엄청 밝은 사람이지만 보이지 않는 어둠이 느껴진다거나, 엄청 슬퍼 보이는데 보이지 않은 빛이 느껴진다거나.

원래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니까.”

“그럼 전 어떤가요?”

“설화 씨는 후자?”

“네?”

“엄청 힘들고 슬퍼 보이는데, 빛이 느껴져요. 그 빛이 어둠을 뚫고 환하게 빛났으면 좋겠네요.”

 


 


설화와 강철이 막 셀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을 때, 입구에는 검은색 차가 한대 서 있었다. 게스트 하우스의 살만이 큰 짐을 내리고 있었다.

“살만, 누가 왔어?”

“오, 아이언. 드디어 마야가 왔어. 갑자기 왔지 뭐야.”

“아, 그래?”

강철은 옆에 서 있는 설화를 쳐다보았다. 설화는 셀 게스트하우스의 간판을 쳐다보고 있었다. 오래된 간판의 글자가 낯설게 깜빡였다. 설화는 그 간판을 오래도록 응시했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면, SHELL이라는 말이 조개가 아니고 다른 의미가 있을까?”

H가 아슬아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현관에서 화려한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손을 흔들며 걸어 나오고 있었다. 옆에 있던 강철의 손이 어깨 위로 올라가 반가운 듯 흔들리고 있었다.



오랫동안 소설을 못 썼어요.

게으른 탓도 있고, 생각을 글로 옮기는 것이 여간 힘든 게 아니더라고요. ^^

그냥 다 접을까 하다가, 어제 한 분이 셀 게스트하우스의 비밀을 구독해 주셨어요. 그래서 다시 쓰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구독과 라이킷은 큰 힘이

될뿐만 아니아 글을 계속 쓰게 만드는 마법입니다.






1편부터 다시 보기

https://brunch.co.kr/@onyouhe/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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