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시를 짓듯, 쌀을 기르다

풀풀농장 이연진 대표와의 인터뷰

쉽고, 빠르고, 편한 것에 익숙한 시대. 이연진 풀풀농장 대표는 어렵고, 느리고, 불편함을 감수하는 사람이다. 한창 일할 때, 곧 태어날 아이를 위해 귀농을 했다. 인위(人爲)를 배제한 채 자연의 힘만으로 작물을 재배하고, 지구에 최소한의 흔적을 남기겠다는 철학을 실현하기 위해서다. 그런 그의 철학이 카카오파머를 만나 ‘농작품(農作品)’의 결실을 맺어가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 유기농 특구로 지정된 충남 홍성군. 넓게 펼쳐진 맑은 땅에 서해로부터 해풍이 불어오는 이 지역에서도 특히 홍동면은 귀농・귀촌인이 모여드는 곳이다. 여느 시골 농촌과 달리 젊은 사람들도, 아이들도 제법 눈에 띈다. 이 대표도 여기에 아이를 키우러 왔다. 명문대 국문학과를 졸업한 그는 무역회사에서 해외영업 일을 하며 중국과 미국을 오갔다. 재밌게 해온 일에 회의감이 강하게 밀려든 것은 아내가 첫아이를 가졌을 때다. “무역업자의 이익 때문에 물동량이 늘어나고, 늘어나는 물동량은 환경을 파괴하죠. 재미는 있지만 지구에 유익한 일은 아니라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이 대표는 스스로를 까다로운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까다롭기 때문에 늘 ‘사회적 영향’에 대해 깊이 생각한다. 특히 그는 꾸준히 ‘환경’ 분야에 관심을 가져왔다. 아내 남경숙 씨도 시민단체 ‘녹색연합’ 활동을 하며 만났다. “지금 같은 소비사회에서는 개개인이 환경에 미치는 파괴력이 전보다 굉장히 커졌어요. 돈을 쓰는 것만으로도요. 좀 떳떳해지고 싶더라고요. 나 스스로에게, 우리 아이들에게, 그리고 지구 생태계에도요. 누적된 고민들이 결국 ‘농사’라는 행위로 귀결됐습니다."


귀농을 결심한 뒤에는 전국귀농운동본부가 운영하는 귀농학교인 ‘생태귀농학교’에 다녔다. 농사 짓는 방법, 농사로 돈을 버는 노하우를 가르치는 귀농학교가 아니라 어떤 작물을 키워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농사를 지으면서 생태적으로 자립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하는 곳이었다. “‘전술’을 넘어, ‘전략’을 가르쳐준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농촌은 피폐해진 생활을 회복하고, 돈을 벌고 쓰기 바쁜 삶에서 적게 벌고 덜 쓰더라도 더 가치 있는 일에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는 삶으로 옮겨가기 좋은 환경이잖아요. 귀농학교에서 그런 농촌에서 살아가는 태도와 사고방식에 대한 조언을 많이 들었는데, 실제 터를 잡는 과정에서 큰 힘이 됐어요.”


이 대표는 귀농할 곳을 고를 때에도 조금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강원 평창군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고향을 택하지 않았고, 전북 남원시, 충남 공주시를 거쳐 세 번째 귀농지인 홍성에 자리 잡았다. “남원은 지리산을 끼고 있어서 농지가 마땅치 않았고, 공주는 어르신들이 많아 아이 있는 집이 거의 없더라고요.” 결국 귀농학교에 다닐 때 홍성으로 귀농한 선배 집에서 실습해본 인연을 발판 삼아 지금 동네에 자리를 잡았다. “홍성에는 농사를 열심히 짓는 젊은 사람들이 많아요. 그래서 아이들도 많고, 또 유기농 특구이기도 하고요.” 



‘환경’을 아끼는 마음에서 출발한 귀농인 만큼 이 대표는 ‘자연농법’을 택했다. 처음부터 자연농법을 고집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를 세웠었다. “내가 농사 지으면서까지 환경을 파괴할 바에야 회사 다니는 게 차라리 낫다고 생각했죠. 처음엔 ‘석유를 쓰지 말자’고 다짐했어요.” 남들은 트랙터로 갈아서 만드는 밭을 두 손과 삽으로 만들었다. 30분이면 될 일을 꼬박 일주일간 했다. 자연농법을 알게 된 건 몇 년 지나서였다.


자연농법은 농약을 치기는커녕 땅을 갈지도 않고 거름을 넣지도 않으며, 비닐로 밭을 덮지도 않는, ‘유기농법’보다 한발 더 들어간 농업 방식이다. 시작부터 다르다. 특히 이 대표는 모종이 아닌 씨앗을 직접 심는 ‘직파’를 한다. ‘씨앗’도 생명체라는 생각 때문이다. “씨앗들에게 비와 볕, 기온 같은 자연의 흐름을 기다려 가장 알맞은 시기에 발아하는 경험과 기억을 남겨주고 싶어요. 극심한 가뭄을 견딘 고추는 지난해 경험을 바탕으로 가뭄을 견딜 수 있는 씨앗을 내요. 그런 세월이 쌓이면 기후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씨앗이 되죠. 그런 이유로 모종보다는 직파 방식으로 농사지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씨를 뿌린 뒤에는 비료를 주지 않고, 땅도 갈지 않는다. “농업에서 환경에 가장 부담을 많이 주는 게 비료입니다. 밭에 뿌린 비료를 작물이 다 먹지 못해요. 1/3은 지하로 스며들고, 1/3은 하천으로 떠내려가 바다로 간 뒤 적조와 부영양화의 원인이 되죠.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비료를 쓰는 건 ‘언 발에 오줌 누기’와 같다는 게 이 대표 생각이다. 당장은 농사가 잘되겠지만 땅에 내성이 생길뿐더러 비료로 오염된 물이 땅을 다시 오염시키기 때문이다. “진통제를 먹으면 두통이 가시겠지만 치료는 안 되잖아요. 또 두통이 오면 계속 먹어야 하고요. 같은 이치입니다.” 


트랙터로 땅을 가는 과정도 환경에 악영향을 준다. “석유를 쓰는 것도 문제지만 식물들이 광합성을 거쳐 뿌리에 저장해둔 이산화탄소가 경운 과정에서 공기 중으로 방출되거든요. 지구 온난화의 10%가 경운 때문이라고 분석한 통계도 있더라고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어떻게 농사를 지을까. 비결은 ‘풀’에 있다. “저희 밭은 지난해 자랐다가 자연스레 죽은 풀들로 온통 덮여 있어요. 밭에 자연스레 풀이 자라게 두고 그 풀이 죽어서 이듬해 농작물의 양분이 되도록 합니다. 풀이 지난해 태양을 땅속에 잡아두는 거죠.” 덕분에 이 대표의 밭에선 사시사철 풀과 꽃이 자란다. “밭이 캔버스같이 예뻐요. 그 안에 있는 것 자체만으로 행복할 정도로요. 자연농법으로 마음에 거리낌없는 농사를 짓고 있답니다.



행복한 농부에게도 고민은 있었다. 자연농법 자체를 모르는 소비자들이 아직 많은데, 키운 작물의 가격이 비싸고 출하 시기가 늦어서 판로 개척이 유독 힘들었다고 한다. “자연농법을 대중화시켜야겠다는 목표가 있었어요. 사람에게도 자연에게도 좋은 방식으로 기른 작물이라는 걸 홍보하고 싶은데 마땅한 방법이 없더라고요.” 자연농법 협동조합을 통해 판매에 힘써보기도 했고, 2014년부터는 도시형 농부 시장을 표방하는 ‘마르쉐’를 활용하기도 했다. 모두 작물 이면의 철학과 이야기를 설명할 수 있는 판매 방식이다. 


카카오파머를 만난 것도 그런 노력 덕분이다. 지난해 논농사를 함께 짓는 프로그램을 개인적으로 진행했는데, 여기서 충남도청 공무원을 만났다. “그분이 제가 농사 짓는 걸 보고 잘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셨나봐요. 카카오파머를 소개해주시면서 한번 입점해보라고 하시더라고요.”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 직접 얼굴 맞대고 물건을 파는 방식만큼 효과가 있겠나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온라인 고객들은 브랜드 스토리보다는 가격을 중점적으로 볼 것 같다는 편견도 있었다. 


그런 생각은 지난해 11월 카카오파머 담당자를 만나며 바뀌었다. “저의 농사 철학을 이해하고 지지한다는 확신, 자연농법의 가능성을 크게 보고 있다는 진심을 카카오파머가 전해줬거든요.” 온라인 마케팅을 위한 준비가 하나도 안 돼 있던 이 대표의 걱정은 카카오파머가 전부 덜어주었다. 카카오파머가 풀풀농장 브랜드의 가치를 어떻게 하면 고객들에게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지 조언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팅을 한 지 한 달 만인 지난해 12월 이 대표는 카카오파머에 입점했다. 검은팥과 백미를 팔았다. 팥은 완판을 기록했고, 백미는 높은 고객 만족도를 자랑하며 꾸준히 팔리는 중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유통 채널의 힘을 느꼈습니다. 이렇게 꾸준히 판매가 이뤄지다 보면 자연농법을 이해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언젠간 자리를 잡겠구나 싶은 희망이 생겼어요.” 카카오파머를 통해 자연농법 자체를 알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판매 품목을 늘리는 방안도 꾸준히 고민하고 있다.



카카오파머를 매개로 전해지는 고객들의 반응은 이 대표에게 큰 힘이 된다. 평소 온라인을 통한 감정 교류에 회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던 그이기에 더 의미 있는 대목이다. “직접 만나지 않고 하는 소통에는 한계가 있다고만 생각해왔는데 카카오파머를 통해 고객과 교감하고 소통할 수 있다는 게 참 뿌듯하고 고맙게 느껴지더라고요.” 이 대표는 작물이, 또 소비자가 언제나 농부에게 더 큰 보답을 해온다고 말했다. 


내가 10밖에 안 되더라도 작물은 50~60의 결과물을 보여주고, 소비자 피드백은 또 그 이상이에요. 제가 성장할 수 있는 촉진제인 셈입니다.

이 대표는 스스로가 농사를 지으며 착해진다고 느낀다. 우주와 자연에 대해 더 생각하다 보니 착해질 수밖에 없다는 거다. “농부를 농부로 만드는 건 작물과 소비자입니다.” 남은 건 카카오파머 상품 소개 페이지에 써둔 대로 ‘생명력을 온전히 섭취할 수 있는’, ‘사계절과 하늘, 땅의 기운을 오롯이 담은’ 농산물을 키워내 고객들의 기대에 부응해야겠다는 즐거운 부담감이다. “브랜드 소개 페이지에 써둔 그대로를 식탁 위에서 느끼실 수 있도록 저는 100점짜리 농산물을 내놓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겠죠.”


첫아이를 가졌을 때 농촌으로 온 이 대표는 어느덧 세 아이의 아빠가 됐다. 앞마당에서 동네 친구들이랑 뛰노는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시골에 살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농사일 때문에 바빠서 생각보다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하진 못해요. 그래도 TV, 스마트폰보다는 푸른 나뭇잎, 잘 자라는 작물들을 보며 뛰노는 아이들을 보면 훌륭한 결정이었다는 자부심이 듭니다.”


이 대표 스스로도 농촌 생활로 충만함을 느끼는 중이다. “자연과 벗하며 살 수 있다는 것, 흙을 밟을 수 있다는 것, 때론 맨발로 걸어다닐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내가 우주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그 자체가 충만한 거예요. 그건 돈으로 살 수 없죠.” 그는 우주와의 거리가 좁혀진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밭에서 땀흘려 일하다 보면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요. 하늘은 굉장히 맑고, 농부 하나가 밭 한가운데 앉아 있는 것. 스스로 생각해도 멋있고 참 좋아요. 이런 순간이 일 년에 몇 번씩 있어요. 도시 생활보다 풍족하지 못하고 어려워도 시골을 포기하기 어려운 이유죠.” 


한때 시인을 꿈꿨던 이 대표는 농사 짓는 걸 시 쓰기에 빗대었다. “농사하는 게 시 한 편 쓰는 거랑 같아요. 시 쓰기는 100%의 말에 가닿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인데, 농사가 그렇거든요. 단어를 정제하고 문장을 벼리듯, 저는 저만의 철학을 담아 밭일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꿈을 이뤘다는 생각도 들어요. 이제 시인이 되었다, 하고요.”


◼︎ 땅의 기억을 머금고 자란 풀풀농장 백미



매거진 <Partners with Kakao>의 5호는 이렇게 구성됩니다. 

<Partners with Kakao> 5호 목차

파트너를 위해 건강한 토양을 만듭니다 / Mason's talk

◼︎ Partners

천상의 목소리, 데이터의 힘을 입다 / 뉴런뮤직
7년간 사랑받은 만 원짜리 팔찌 / 크리스탈샵
엄마를 생각하는 마음, 돋보기로 전하다 / 이플루비
<신비소설 무>, 12년의 침묵을 깨다 / 문성실 작가
시를 짓듯, 쌀을 기르다 / 풀풀농장 (본 글)

우리는 모두 AI 어린이입니다 / Kakao스쿨
작가, 영감(靈感)을 공유하다 / 브런치북

◼︎ with Kakao

모두에게 성장의 기회를 / 링키지랩
같이툰, 웹툰에 가치를 더하다 / 같이가치 with Kakao
마음 듬뿍, '선물하기' / 카카오 선물하기

오프라인으로도 발간되는 <Partners with Kakao> 매거진은 카카오헤어샵 우수매장 200곳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5호의 전문은 아래에 첨부된 pdf로 받아보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