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메스는 음악도 잘하고 말 솜씨도 좋은 인싸입니다. 또 예상외로 꽤 문란한 편입니다. 아버지(제우스)를 닮아서 그런지 생각보다 많은 자녀들을 두고 있습니다. 헤르메스는 헤파이스토스의 아내인 아프로디테와 불륜을 저질러 헤르마프로디토스라는 자웅동체 자녀를 낳습니다. 또 드리옵스의 딸과 목동의 신 '판'을 낳았는데, 염소와 인간이 섞인 모습을 한 판을 보고 어머니는 도망가 버렸다고 합니다.

N(iNtuition)

헤르메스의 상상력이 담긴 언변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그의 상상력 넘치는 이야기꾼으로서의 자질이 잘 드러난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그의 별명 '아르게이폰테스'에 얽힌 일화인데요.

'아르게이폰테스'는 아르고스를 벤 자'라는 뜻인데요. 이 때도 제우스가 부여한 비밀임무를 수행하던 중이었습니다. '이오'와의 바람 현장을 들킨 제우스는 이오를 암소로 변신시켰는데, 이를 눈치 챈 헤라는 제우스에게 저 암소를 선물로 달라고 합니다. 제우스는 헤르메스에게 뒷일을 맡기고, 헤라는 이오를 감시하기 위해 아르고스라는 백개의 눈을 가진 거인을 붙였습니다. 이오를 구출해내야만 하는 헤르메스는 어떻게 했을까요?

헤르메스는 언변술로 유명했기 때문에 아르고스는 헤르메스와의 대화를 기대했을 것입니다. 헤르메스는 자신의 아들 '판'이 아르테미스를 섬기던 님프 시링크스를 짝사랑하며 쫓아다녔지만, 순결을 중시했던 시링크스는 평생 판을 피해서 도망다니다 붙잡히기 전에 갈대로 변해 버렸다는 이야기를 무척 지루하게 얘기해줬습니다. 헤르메스의 언변술 정도라면 충분히 자극적이고 재밌게 풀 수 있었을텐데 말이죠.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을까요? 아르고스는 헤르메스의 재미없는 이야기와 잔잔한 연주에 결국 100개의 눈 모두를 감았고, 헤르메스는 곧바로 아르고스의 목을 베어버립니다. 말 잘하는 사람이 재미없게 말하는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겠네요.

맡은 바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던 아르고스만 불쌍하게 됐네요. 이 소식을 들은 헤라도 충직했던 아르고스를 가엾게 여겨 아르고스의 100개의 눈을 떼다 공작새의 깃털에 붙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공작새는 헤라를 상징하는 동물로 여겨지게 되었죠.

T(Thinking)

헤르메스는 기본적으로 원리 원칙을 준수하며, 부여된 임무에 충실합니다. 아르고스를 죽인 일화만 봐도 알 수 있죠?

한 번은 오르페우스가 사랑하는 와이프 에우뤼디케를 다시 찾아오기 위해 저승에 간 적이 있습니다. 오르페우스의 절절한 사연이 담긴 노래에 감복한 하데스와 페르세포네는 에우뤼디케를 데리고 다시 이승으로 올라가는 것을 허락합니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을 거는데요. 지상에 도달할 때까지 오르페우스가 뒤돌아 아내 에우뤼디케를 절대로 보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르페우스는 이 조건을 수락했고 함께 손을 잡고 지상으로 올라갑니다. 빛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고 지상으로 나오는 출구에 거의 다 왔다 느껴지자 오르페우스는 너무 기뻤습니다. 조금만 통과하면 드디어 사랑하는 와이프와 둘이 한 평생 함께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이 황홀한 기쁨을 와이프와 함께 나누기 위해 그만 하데스가 내건 조건을 잊고 뒤를 돌아 에우리뒤케를 보고 맙니다. 바로 그 순간 지하에서 헤르메스가 날아와 에우뤼디케는 다시 하계로 끌고 가게 됩니다.

저승을 빠져나가는 오르페우스와 에우뤼디케

헤르메스도 참... 정 없죠? 이렇게 절절한 사연이라면 한 번쯤은 봐줄 법도 했을 텐데 말이죠. 하지만 이것이 하데스가 지하 세계를 운영하는 원칙입니다. 예외가 두 번 있을 순 없죠. 헤르메스도 지하세계의 원칙을 존중하고 원칙 대로 처리하였습니다. 일 처리 하나는 제대로 하는 헤르메스!

J(Judging)

헤르메스는 태어났을 때부터 꾀돌이였습니다. 어린 나이에 치밀한 계획으로 도둑질 프로젝트를 기획하기도 했죠.

바늘도둑이 소 도둑 된다는 옛말이 있죠?

헤르메스는 태어나자마자 소 도둑이 됐습니다. 감히 아폴론의 소 50마리를 훔쳤는데요. 헤르메스가 소들의 꼬리에 나뭇가지를 묶어서 소들의 발자국을 숨기며 자기 아지트로 끌고갑니다. 어린 헤르메스가 소들의 발자국을 지울 생각을 다하다니 정말 치밀하지 않나요?

헤르메스는 소들을 필로스의 동굴로 데려가 숨겼고, 소 두 마리를 열두 신들에게 바치며 동굴의 입구에 있던 거북의 껍데기와 소의 내장으로 현악기 '리라'를 만들었습니다.

한편 아폴론은 자신의 예지력으로 도둑의 정체를 알아내고 학부형인 마이아에게 찾아가 당신 아들이 내 소를 도둑질을 했다며 항의합니다. 그러나 마이아는 당황하기는 커녕 갓난아기가 어떻게 소를 훔치냐고 도리어 화를 냈습니다. (발뺌 실력이 그 어머니의 그 아들이죠)

심증은 있는데 물증은 없어 난감한 아폴론은 아버지인 제우스에게 일렀고, 제우스는 시치미를 떼는 헤르메스에게 소를 돌려주라고 명합니다. 그러나 리라의 소리에 매료된 아폴론은 리라와 소를 교환하게 되죠. 악기 하나(아폴론 소 잡아서 만든 거)와 소 50마리를 바꾼 어린 헤르메스. 역시 '도둑의 신'은 떡잎부터 남달랐죠?

아폴론이 음악에 정신이 팔려 있는 사이에 황소를 훔치는 헤르메스

종합적으로 헤르메스는 ENTJ입니다.

ENTJ(통솔자)는 타고난 지도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카리스마와 자신감을 지니고 있으며 자신의 권한을 이용해 사람들이 공통된 목표를 위해 함께 노력하도록 이끕니다. 또한 이들은 냉철한 이성을 지닌 것으로 유명하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성취하기 위해 열정과 견단력과 날카로운 지적 능력을 활용합니다.

양치기에서 시작한 헤르메스는 자신을 계속해서 증명해가며 결국 올림포스의 비서실장까지 꿰차게 되죠. 작은 일(도둑질)을 제대로 해낼 줄 알아야 비로소 큰 일도 해낼 수 있는 법. 헤르메스는 맡은 일을 제대로 처리하면서 점점 제우스의 신임을 받게 됩니다. 제우스는 점점 적통인 아레스와 헤파이스토스보다 헤르메스에게 더 의지하게 됩니다.

실제로 제우스가 튀폰에게 힘줄이 다 끊기고 홀로 묶여 있을때, 다른 신들은 다 도망쳤지만 헤르메스만은 몰래 힘줄을 훔쳐 제우스에게 전달해주었습니다. 제우스 입장에서는 헤르메스가 얼마나 이뻤겠어요?

헤르메스와 같은 성격의 사람들은 같이 있으면 즐겁고 일도 잘하고 언제든 옆에 두고 오래오래 보고 싶은 사람입니다. 엔티제 친구들은 경영이든 장사든 뭘 해도 될 사람들인가 봅니다. 나쁜길로만 빠지지 않는다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