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움은 친절함과 함께 간다.
원더 (2017) Wonder / 113분 / 전체관람가
2017.12.27 개봉
(감독) 스티븐 크보스키
(주연) 제이콥 트렘블레이, 줄리아 로버츠, 오웬 윌슨
주의: 스포일러가 포함된 리뷰입니다.
헬멧을 쓰고 등교하는 아이, 어기(어거스트). 선천적인 장애. 홈스쿨링을 마치고 처음 가는 학교. 이 정도만 나열해도 영화를 많이 본 사람들은 어느 정도 예고편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도 처음에 이 영화를 보려 하지 않았었다. <원더>(이하 영화)의 예고편을 보면, 뻔해 보였다. 영화가 별로일 것 같단 것이 아니라, 그냥 예상한 대로의 좋은 내용일 것 같았다.
하지만 시사회 티켓이 생겨 영화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조카에게 보여주고 싶다.'란 생각이 들었다. 조카는 지난여름에 돌잔치를 치렀으니, 이 영화를 볼 수 있으려면 수년은 더 지나야 할 것이다. 그래도 나는 이 영화를 꼭 추천해주고 싶어 졌다.
왜 꼭 이 영화를 추천을 하고 싶은가. 어떤 영화를 추천하고 싶을까, 생각해보았다. 내가 보고 재밌었던 영화를 추천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스타워즈:라스트 제다이> 라거나, <강철비>, 올해 제일 '재밌었던' <스파이더맨:홈커밍> 도 있을 것이다. 감명을 받은 영화도 있다. <덩케르크> 나 <우리의 20세기>. <히든 피겨스> 나, <아이캔 스피크> 도 좋겠다. 예쁜 영화도 많았다. <더 테이블>이나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는 어떨까. 개인적으론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올 영화 중에 최고라고 뽑고 싶기도 하다. 그런데도, 나는 꼭 <원더>를 제일 먼저 조카에게 권하고 싶다.
'어기'와 노는 게 재밌어 보이니까.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게 할 수 있을 듯하다. 어기와 함께 하는 삶이 더 쿨하고 멋진 일이란 생각이 드니까. 영화에서 '할로윈 사건' 이후 '어기'와 멀어진 '잭'의 속마음 파트가 기억난다. 학교에서 제일 재미있는 아이 '어기'와 놀지 못해서 우울해진 '잭'은, '어기'의 외모를 놀리는 '줄리안' 에게 펀치를 날린다. 나는 그런 재미있는 세상에 내 조카를 초대하고 싶은 것이다. 도덕적으로 '이래야 한다'라는 말은 전하고 싶지 않다. 다만, 저곳이 더 재밌을 수 있단 말을 전해주고 싶다.
영화는 그래서 친절하단 생각이 든다. 영화는, 강요하지 않는다. 극 중, 교장선생님의 '어기의 얼굴을 바꿀 순 없으니, 우리의 시선을 바꿔야지요' 하는 훈화 말씀이 나오기는 하지만, 교조적이진 않다. 이야기가 휴머니즘적이어서? 아니다. 영화는 '이래야만 한다'라는 이야기보다는 '이러는 편이 더 즐겁다' 고 보여준다. 그래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신영복 저)이 생각났다. 책에는 신영복 선생이 조카들에게 '토끼와 거북이' 고사를 가지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알려주는 편지가 실려 있었다. 기존의 고사를 뒤집어서, 토끼를 내버려두고 가는 거북이가 되지 말라는 메시지가 실려 있었다. 좋은 메시지였지만, 이런 말이 아이들에게 와 닿을까? 잘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때문에 신영복 선생은 토끼를 깨우는 것에서 끝맺지 않고, 토끼 역시 거북이를 위한 친절함을 발휘해야 한다고 덧붙여두었던 것 같다.
친절함. 영화도 친절함을 강조한다. '친절함'에 대한 격언이 나온다. '올바름과 친절함 사이에서 친절함을 선택하라' 영화는 보여주기에 그치지 않고, 관객에게 친절하기 위해 노력한다. <스타워즈> 프랜차이즈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 '다스 시디어스' 아니 '팰퍼틴' 이란 이름도 친숙하지 않을 것이다. 굳이 그런 소재로 '어기'를 놀리는 '줄리안'을 비춘 후, 바로 '어기'의 시선에 '다스 시디어스' 이미지가 나온다. 츄바카도 마찬가지. 그런데 <스타워즈>를 좋아하는 사람인 내게도 이것이 쓸데없는 장면처럼 보이진 않는다. '친절한데, 재미도 있다.'
심지어 영화는 캐릭터 하나하나에 모두 친절한 시선을 보낸다. 영화의 시선은 '어기' 만 따라가지 않고, 주변 인물의 시선도 비춰준다. 처음으로 시점이 '어기'를 떠나 '비아'(올리비아) 에게로 옮겨가는 순간, 나는 감탄식을 내뱉었었다. 게다가 '비아'를 그리는 모습조차도 친절하다. 그 나이의 삶이 부모의 관심에서 멀어졌을 때에 나타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도 따뜻하게 그려내었다. 그게 어색할 법도 한데, 자연스럽게 영화의 시선을 따라가는 것을 보며 나도 어느새 영화의 친절함에 감화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따뜻한 시선이 잘 안 느껴지는 배역이 하나 있다. '줄리안'이다.(단역인 '줄리안'의 부모는 제외하자) 아이라면 응당 그럴 수 있는 투정에서 시작해서 악의로 향하는 모습에 영화는 관심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얼핏 보면 그냥 그런 친구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런데 영화 말미에 교장실에 부모님과 동석하여 나오는 장면을 보면서, 나는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줄리안'은 부모님에게 반항하여 전학을 하고 싶어 하지 않아한다. 영화의 마지막, '어기' 가 상을 받는 졸업식에서도 등장한다. '줄리안' 은 학교를 사랑했다. 자신이 중심이 되어, 친구들과 놀 수 있었던 학교. '어기'의 무리가 재밌을수록, 자신의 입지가 줄어들어 위협도 느꼈겠지만, 어느 순간 '함께하고프단'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러기엔 너무 멀리 돌아왔었을 것이다. 선택지가 얼마 남지 않은 순간 어린아이가 택할 수 있는 행동들. 그에게 친절함이 있었다면, 더 재밌게 놀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여름 캠프에서 만난 2~3년 상급생들과 '어기'의 급우들의 싸움 장면에 '줄리안' 이 등장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상급생들은 자신이 접해보지 않은 낯선 얼굴을 한 '어기'를 놀리고, 이에 저항하는 '잭'에게 위해를 가한다. 다행히 '줄리안' 패거리라고 할 수 있는 친구들의 도움으로 상황을 빠져나올 수 있었고, 그들은 화해 아닌 화해를 한다. 그들은 '잭' 이 쓰러진 상황에서 자신보다 곱절은 커 보이는 상급생을 상대하려 한 '어기'의 의기에 탄복한다. 그들의 탄복에, '어기'는 물수제비를 하고, 눈물짓는다. 이 장면에, 줄리안이 있었다면 더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WHEN GIVEN THE CHOICE BETWEEN BEING
RIGHT OR BEING KIND, CHOOSE KIND.”
왜냐면 친절함으로 이뤄진 세상에선, 함께할 때 더 즐거울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영화는, '픽션'이다. 아마 이 보다 더한 과정을 세상의 '어기'들은 겪을 것이다. 그리고 이 보다 더 큰 '원더 wonder'들이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을 그대로 꼭, 그려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더 나은 세상에 대한 상상. 그것을 널리 퍼뜨리는 놀라운 일(wonder)이 이 작품의 의의라 생각한다. 올바름보다, 친절함을 선택하라는 영화 속 격언은, 그래서 오래 기억이 남는다.
덕분에 이제는 '왜 친절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변을 할 준비가 된 것 같다. 왜냐고? 그게 더 재밌는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닐 수도 있지만, 그럴 수도 있다는 건 얼마나 대단한 일(wonder)인가!
* 영화에는 좋은 대사가 많습니다. 인터넷에 정리된 것 중 하나의 링크를 공유드립니다.(영어)
* 본 글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는 다음 영화 <원더> 페이지에서 가져왔습니다.
* 본 리뷰는 브런치 x무비 패스를 통한 <원더> 시사회 관람 후 작성되었습니다.
* 예고편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zyzX1RCY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