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일주일간 돌보았던 O와 작별하는 날이다. 아이는 유치원이 끝난 후 장기적으로 아이를 맡아 줄 위탁가정으로 가게 된다. 사회복지사가 오후에 아이를 픽업해 새 집으로 데리고 갈 계획이니 나는 아침에 아이를 등원시키면서 아이 짐을 유치원에 두기만 하면 된다는 내용을 전달받았지만 새 집까지 같이 따라가겠다고 했다. 지난 7일간 어르고 달래며 돌본 아이를 다음 사람에게 바통 터치 하듯 보낼 순 없었다.
오후 3시, 아이를 유치원에 픽업하러 갔더니 아이는 고개를 푹 숙인 채로 풀이 죽은 채 천천히 교실에서 걸어 나왔다. 그래도 사회복지사가 유치원에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이 남았는데 다행히 아이는 금방 다시 밝은 모습을 보이며 유치원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아이가 좋아하는 선생님 놀이를 하며 시간을 때웠다.
오후 4시, 사회복지사와 함께 택시를 타고 위탁가정집에 도착했다. 노래도 부르고 쫑알쫑알거리던 아이는 위탁가정집 앞에 도착해 현관문이 열리자마자 귀가 찢어지듯 소리를 지르며 길거리로 뛰쳐나갔다. 가고 싶지 않다고, 제발 날 보내지 말라고 울며불며 자지러졌다. 얼마나 크게 통곡을 해대는지, 주택 단지 사람들이 문을 열고 나와 무슨 일인가 쳐다보았고 그렇게 20분이 흘렀다. 어째 어째 달래고 어부바해서 같이 들어가자 하니 내 등에 업혔다.
일단 집에 발을 드리니 아이의 울음도 어느 정도 진정이 됐고, 오늘부터 아이를 돌보게 될 위탁엄마는 아이에게 가지고 놀라고 물감과 종이를 건네주었다. 이 분은 오랫동안 위탁아동을 돌본 경험이 있는 자메이카 출신 아줌마였다. 미혼모인지 이혼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집에 걸려있는 가족사진을 보니 남편은 없는 것 같았다. 아줌마는 잘 웃지도 않는 참 딱딱한 인상을 주었지만 인사를 하러 나온 딸은 참 상냥해 보였다.
아이가 있을 방엔 이미 인형과 장난감이 수두룩 했고 침대엔 어린 소녀들이 좋아할 디즈니 이불보가 입혀져 있었다. 이 집을 이미 거쳐간 위탁아동들의 흔적인지, 벽에는 크레파스로 낙서가 돼있었다.
울다 지친 아이는 내 품 안에서 새근새근 숨소리를 내며 잠이 들었다. 그러다 잠이 깬 아이는 맥도널드 치킨 너겟을 저녁으로 먹고 물감을 가지고 한참 놀다가 내게 귓속말로 수줍게 '나 화장실 가고 싶어'라고 했다. 5살 어린아이도 모르는 사람 앞에서 팬티를 내리고 오줌을 싸는 일은 부끄럽나 보다. 아줌마 말고 나랑 가야 한다고 굳이 내게 당부를 한다.
아이의 조그마한 손을 잡고 화장실로 갔다. 화장실엔 체구가 작은 어린아이들도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유아변기커버와 발받침대가 구비돼 있었다. 우리 집에서 볼일을 볼 땐 아이 엉덩이가 변기 구멍에 쑥 들어가 퐁당 빠질까 봐 내가 잡아주었어야 했는데 여기선 그럴 필요가 없었다. 아이를 돌보기엔 너무나 부족했던 우리 집이 참 부끄러웠다. 내겐 아이를 돌보고 싶다는 마음과 열정만 있었지 우리 집은 현실적으론 아이가 편하게 있기엔 참으로 모자란 곳이었다.
6시쯤 되자 손님이 찾아왔다. 아줌마 손녀가 O와 나이가 비슷하다며 같이 놀라고 부른 것이었다. 우연히도 손녀딸과 O는 같은 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교실도 서로 붙어있었다. 손녀딸은 내가 O에게 어부바해주는 것을 보자 자기도 해달라며 졸라댔다. 손녀 아이를 업고 집 한 바퀴, O를 업고 다시 한 바퀴. 이렇게 아이들과 놀아주며 O가 새 집에서 편안해질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제 막 4살인 손녀딸아이의 엄마는 16살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너무 어려 보여 아이에게 살짝 물어봤더니 아이는 자기 아빠를 본 적도 없고 이름도 모른다고 했다.
어느덧 시간은 밤 8시. 바깥은 이미 깜깜해진 지 오래였다. 이제 가봐야 한다고 사회복지사와 함께 짐을 챙겨 일어나니 O는 다시 소리를 지르며 울기 시작했다. 내 똥꼬는 이제 누가 닦아주냐며, 제발 날 떠나지 말라고. 그 작은 아이에겐 누군가에게 자기 똥꼬를 맡긴다는 건 자기 자신 전부를 맡긴다는 것과 같았는지. 반복해서 똥꼬 이야기를 하며 세상 떠나간 듯 엉엉 우는 아이를 뒤로하고 나왔던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생각하면 참 마음이 아린다.
울음은 목까지 차올랐는데 꾸역꾸역 참으며 집으로 돌아오던 그날. 나까지 울 수는 없으니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돌아오는 차 안에서 사회복지사와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가 집에 도착해 아이가 포스트잇에 그린 그림과 공원에서 주어온 조약돌들을 보곤 통곡을 하고 울었던 기억.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는 게 힘들어 글로 남기는 걸 미루고 미루다 오늘에야 적어본다.